지난 21일 오전 8시 서울 서초구 잠원공원. 일요일 아침부터 쩌렁쩌렁한 구호가 울렸다. 다만 구호에 맞춰 움직이는 이들의 동작도, 복장도, 내용도 전문 선수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들은 고려대학교 여자 라크로스 동아리 'KULAX'다. 지난 2013년 만들어진 이 모임은 여느 체육 전문 동아리와 달랐다. 미국 유학 경험이 있거나 외국 교환학생들이 함께하는 곳도 있지만, KULAX는 한국 학생과 초심자 비율이 높다. 훈련을 지도해 주는 이도 전담 코치가 아니다. 지난해 세계선수권 대표팀 코치를 맡았던 노영동 코치가 재능 기부로 이들을 돌봐준다. 엘리트 스포츠 경력자들이 아니기 때문에 훈련도 어딘가 어설프다. 걷고 뛰는 법부터 다시 배운다. 패스와 캐치도 지켜보고 있자니 불안하다. 말 그대로 '생활' 체육인이다.
대신 그만큼 분위기가 밝다. 일요일 아침 8시에 나온 것도 모두 자원해서다. 무엇이 이들을 이끌었을까. 운동을 하게 된 계기는 모두 비슷했다. 나영주(24) 씨는 "운동으로 체력을 키우고 싶었는데, 혼자 하는 운동이 정말 성격에 맞지 않았다. 헬스도, 홈트레이닝도 해봤지만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것 같았다. 팀 스포츠를 통해 소통도 하고 싶었고, 재밌는 걸 찾고 싶어 라크로스를 선택했다"고 전했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운동할 일이 정말 드물었다고 떠올린 신입생 서민주(20) 씨는 "대학 입학 후 운동 동아리를 찾다가 초등학교 때 잠깐 해본 라크로스를 선택했다. 그때 선택하길 정말 잘했다"고 말했다. 졸업생으로 동아리를 찾게 된 곽지우(25) 씨는 "원래 구기 종목을 못 했는데, 라크로스에 입문 후 패스와 캐치를 배우면서 '할 수 있다'는 성취감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주장 김서연(22) 씨는 "필라테스도, 헬스도 재밌을 수 있다. 그런 건 보통 혼자만의 싸움이고, 중량이나 체중 등 목표가 중심"이라며 "반면 생활 체육에는 팀플레이가 있다. 함께 목표를 이루고, 새로운 동료들과 손발을 맞추는 재미가 있다"고 소개했다.
운동을 시작하는 이들에게는 라크로스라는 종목 자체도 낯설었다. 이승빈(25) 씨는 "스틱을 이용하는 운동이다 보니 처음에는 공을 주고받는 걸 익히는 데에도 오래 걸린다. 크래들링(스틱 헤드를 회전시켜 공을 고정하는 기술)도, 패스와 캐치도 하는 만큼 는다. 그래서 처음 훈련이 정말 지루하고, 중간에 그만두는 이들도 많다"고 했다.
낯섦을 딛게 된 계기는 실전과 성취에서 온 재미였다. 이 씨는 "그런 부원들도 경기를 한번 뛰어보면 재미가 붙고, 안 나가게 된다"며 "나도 처음엔 그랬다. 그런데 언니들이 무작정 나를 데리고 대회에 투입했다. 그날 정말 못 했는데도 너무 재밌더라. 한 번 해보니 더 잘하고 싶어졌다"고 설명했다. 김서연 씨는 "이기지 못했을 때 아쉬움을 느낄 수도 있지만, 그 감정까지도 재미의 한 가지"라며 "경기가 끝나고 나면 부원들이 숨도 못 쉴 정도로 힘들어하면서도 행복하다며 웃는다"고 전했다.
김서연 씨는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놓지 않은 '운동광'이다. 그는 "운동을 시작한 후 사람을 만나는 게 정말 좋아졌고 소통하는 능력도 달라졌다. 성격도 활발해지고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도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최근에는 '리바운드' '슬램덩크' 같은 스포츠 영화가 흥행하면서 주위에서도 직접 운동해 보려는 여자분들이 늘었다. 운동에 관심이 생겼다며 나한테 많이 묻는다. 그러면 난 언제나 '일단 해보자, 정말 재밌다'고 추천한다”고 했다.
20대의 체육은 30대로도 이어진다. 동아리를 떠난 이들이 졸업생(OB) 팀을 꾸려 운동을 이어가기도 한다. 아직 OB 팀이 없는 KULAX 부원들의 목표도 같다. 김 씨는 "30대가 되더라도 몸과 시간이 허락할 때까지 운동을 계속하고 싶다"고 했다. 이 씨도 "우리는 아직 졸업생 팀이 없다. 라크로스를 계속하는 졸업생들을 설득해서 OB 팀을 만들겠다"고 포부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