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오래 전 이야기이다. 뱁새 김용준 프로는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 있는 ‘다마이 인다 컨트리클럽’에서 라운드를 했다. 뙤약볕에 땀을 한 바가지도 넘게 흘린 뱁새 김 프로는 서둘러 사우나에 들어갔다. 뱁새 김 프로 혼자였던 온탕 속으로 오랑 인도네시아(Orang Indonesia, 인도네시아어로 인도네시아 사람이라는 뜻) 한 명이 들어왔다. 그는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잠시 후 한 사람이 더 들어왔다. 역시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이어 두 어 사람이 더 반바지 차림으로 몸을 담갔다. 그제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잠시 후 뱁새와 함께 라운드를 한 지인이 들어왔다. 역시 반바지를 걸쳤다. 그가 뱁새를 보고 '씨익' 웃었다. "사우나 입구에 가면 반바지가 있으니 가서 입고 오라"고 말하면서.
식사를 하면서 설명을 듣고서야 알게 되었다. 인도네시아 골프장에서는 탕에 몸을 담글 때 모두 반바지를 입는다는 사실을. 발가벗고 탕에 '큰 대(大)' 자로 누운 뱁새를 보고 인도네시아 사람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랬다. '욕탕 속 반바지'는 인도네시아 골프장에서 '드레스 코드(Dress Code)' 인 것이다. 한국이라면? 반바지를 입고 온탕에 들어온 사람을 오히려 이상하게 여길 터인데. .
드레스 코드. 어떤 행사나 장소에 맞는 복장을 맞추는 것을 말한다. 골프장에서는 클럽하우스에 입장할 때나 라운드 할 때 복장을 정하는 것을 말하고. 독자는 혹시 골프장 클럽하우스에 재킷을 입지 않고 입장하다가 제지 당한 경험이 있는가? 만약 그런 경험이 있다면 진짜 산전수전 다 겪은 골퍼이다.
겪어본 사람은 안다. 골프장 직원이 갖다 주는 재킷을 입고 클럽하우스에 들어가야 할 때 느끼는 민망함이란! 클럽하우스 입장할 때 반드시 재킷을 착용하는 것. 꽤 오래 전 드레스 코드이다. 골프장이 늘어나면서 서로 더 명문이라고 자부하던 시절에 있던. 드레스 코드가 더 엄격할수록 더 명문이라는 생각인 것 같은데 과연 그럴까? 지금 이런 골프장은 없다. 혹시 아직도 있다면 귀띔해주기 바란다.
'클럽하우스 식당에서 꼭 모자를 벗어야 한다'거나 '셔츠는 꼭 바지 속에 넣어 입어야 한다'는 드레스 코드라면 기꺼이 따르라고 독자에게 권하고 싶다. 슬리퍼나 슬리퍼 비슷한 신발을 신고 클럽하우스에 들어오는 것을 금지하는 경우도 많다. 이것 또한 충분히 지킬만한 드레스 코드라고 뱁새는 생각한다.
문제는 반바지다. 가장 찬반이 엇갈리는 드레스 코드다. 여름에도 라운드 때 반바지를 입지 못하게 하는 골프장이 제법 있다. 명문 회원제 골프장 가운데 일부가 그렇다. 물론 그 숫자가 많이 줄었다. 반바지를 허용하기로 드레스 코드를 바꾸고도 '반바지를 입으려면 긴 양말을 신어야 한다'고 정한 곳도 있다. 보수적 전통을 다 포기하지 않는 골프장이다. 회원제(membership) 골프장 드레스 코드는 회원끼리 상의해서 정한 것이다. 비회원이라도 그 골프장에 간다면 드레스 코드를 존중해야 한다고 뱁새는 생각한다. 드레스 코드를 지키기 싫다면? 그 골프장에 가지 않으면 된다.
물론 '골프를 즐기는데 그렇게까지 형식을 갖춰야 하느냐'는 목소리도 많다. 반바지를 입고 치든 라운드 티를 입고 치든 뭐가 문제냐는 주장 말이다. 일리 있다. 불필요한 형식을 깨야 골프 저변이 넓어질 수 있다고 뱁새도 생각한다. 생각만 바꾸면 얼마든지 내려놓을 수 있는 드레스 코드가 골프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면? 바꾸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다만 드레스 코드를 정한, '‘정할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생각해 봐야 한다. 조금만 타인을 존중한다면 골프장은 훨씬 즐거운 곳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멋대로 행동해서 다른 사람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사람도 드물지 않다. 이런 사람을 걸러내는 데 드레스 코드만한 것은 없다. 작은 규칙을 따르게 해서 더 큰 규칙을 지키게 할 더 좋은 꾀가 있다면 알려주기 바란다. 드레스 코드는 미리 확인하는 것이 지혜롭다. 반바지만 입고 갔다가 울며 겨자 먹기로 골프장 프로샵에서 긴 바지를 사지 않으려면 말이다. 회원제라면 회원에게 드레스 코드가 있느냐고 물어보면 된다. 골프장에 전화를 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