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 21승, 두 번의 상금왕(2015, 2016). 역대 일본 골프투어 최초 상금 2억엔 고지. 일본에서 성공적인 골프 커리어를 쌓은 이보미(34)가 일본에서의 성공 비결을 소개하고 자신을 보고 일본 진출의 꿈을 키우는 ‘보미 키즈’에게 조언을 건넸다.
이보미는 지난 6일 서울 중구 순화동 KG타워 지하 1층 하모니홀에서 열린 ‘2023 IS 스포츠 마케팅 써밋 아카데미’에 강연자로 나서 자신의 골프 인생을 돌아봤다. 그는 “열한살에 박세리(45)의 맨발 투혼을 보고 골프를 시작한 ‘세리 키즈’”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 “골프의 매력과 가족들의 응원, 후원사들의 아낌없는 지원을 원동력 삼아 골프 인생을 걸어왔다”라고 말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통산 4승, 2010년 상금왕에 오른 이보미는 곧 일본 무대를 두드렸다. 미국이 아닌 일본 무대를 택한 이유에 대해 그는 “US오픈 등 미국 투어를 경험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시차 적응 문제도 있었고, 키 큰 선수들과 함께하니 위축이 되더라. 영어를 못하니 악순환이 계속됐다. 그러던 중 일본 무대를 추천받아 눈을 돌렸다”라고 전했다.
일본 무대도 만만치는 않았다. 2010년 겨울에 참가한 JLPGA 3차 퀄리파잉(Q) 스쿨 3차전에서 첫날 80타를 치며 부진했다. 낯선 환경에서 심리적 위축도 계속됐다. 일본 선수의 ‘걸리적거리니 나오라’는 제스처 하나에 얼어붙기도 했다. 외할머니가 아파 정신적 지주였던 엄마도 심적으로 힘든 상황이었다. 이보미는 “이 상황에서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는 건 빨리 Q스쿨에 통과하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해 집중해서 겨우 통과했다”라며 당시를 돌아봤다.
Q스쿨을 통과한 이보미는 빠르게 일본 무대에 적응했다. 가족과 후원사(노부타 그룹)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다. 본인의 피나는 노력도 있었다. 이보미는 KLPGA 투어를 병행하는 강행군 속에서도 낯선 환경의 일본 골프장 코스를 전부 외우며 적응에 힘썼다. 일본어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보미는 2012년 3승으로 일본 무대에 적응하기 시작하더니 2015년 7승과 상금왕에 오르며 일본 무대 정점에 섰다.
2016년 JLPGA 상금왕에 한 차례 더 오른 이보미는 8시즌을 더 일본 무대를 누비며 골프 인생을 이어가고 있다. 사실 이보미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때 은퇴를 고려했다. 한국을 오가면서 계속되는 격리 생활에 훈련은 물론 가족들을 제대로 만나지도 못하는 힘든 시간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팬들의 목소리가 이보미를 움직였다. “필드에서 더 보고 싶다”며 울먹이는 팬 앞에서 이보미는 마음을 다잡았다.
이보미는 “팬들의 응원 소리와 가족과 후원사의 지원, 그리고 ‘우승의 추억’으로 골프 생활을 이어왔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우승했던 기억들이 너무 좋았고, 우승했을 때 좋아했던 팬들과 가족들 기억이 행복해서 지금까지 골프를 할 수 있었다”라면서 “내 머릿속의 90%는 골프로 가득 차 있다. 내게 골프는 ‘반쪽’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라며 골프를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약 25년을 필드 위에서 쉴 새 없이 달려온 이보미는 올 시즌을 마치고 은퇴한다. 이보미는 “지금까지 늘 골프만 생각하면서 살았다.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냈고, 남들보다 좋은 결과를 가졌던 선수다”라면서 “행복했지만 이젠 골프(선수)에서 벗어나서 또 다른 재미를 찾을 때가 된 것 같다. 쉼 없이 달려온 내게 휴식을 주자는 생각으로 은퇴를 결심했다”고 이야기했다.
‘세리 키즈’로 골프를 시작한 이보미는 이젠 ‘보미 키즈’를 바라보는 시기를 맞았다. 자신을 따라 일본 무대를 두드리는 젊은 선수들이 많아졌다. 그런 그들에게 이보미는 “일본 무대가 만만치 않다. 선수들의 실력도 점점 더 좋아지고 있고 투어 일정도 많아 힘들다”라면서 “언어적인 면을 빨리 해결해야 한다. 통역도 있지만, 언어를 배운다는 의지만 보여준다면 금장 친화력이 생길 것이다”라며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