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당거래’, ‘신세계’, ‘마녀’ 시리즈의 박훈정 감독이 ‘귀공자’로 돌아왔다. 지난달 21일 개봉한 ‘귀공자’는 필리핀 불법 경기장을 전전하는 복싱 선수 마르코(강태주) 앞에 정체불명의 귀공자(김선호)를 비롯해 각각 다른 목적을 지닌 세력이 나타나 펼쳐지는 추격을 펼치는 이야기다. 박훈정 감독은 인터뷰가 진행되는 내내 배우들을 향한 신뢰를 드러냈다.
“반응은 잘 안 봐요. 전 상업 영화 감독이고 흥행에서 제대로 평가를 못 받았으면 그건 냉정하게 실패라고 생각해요. 동시기에 개봉한 다른 영화에 비해 매력이 덜 했으니 선택을 덜 받은 게 아닐까요. 이제 뭐가 문제였을까 고민해야죠.(웃음)”
‘귀공자’는 우여곡절이 많은 영화다. 제목도 ‘슬픈 열대’였으나 여러 번의 수정을 거쳐 ‘귀공자’로 바뀌게 됐다. 촬영 시기 코로나19가 탓에 많은 제약이 뒤따랐다며 “당시만 해도 제때 개봉이 가능할지 생각도 했었다. 지금까지 많은 작품을 해왔지만, 그전 작품들과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고 남다른 소감을 밝혔다.
캐스팅도 우여곡절 중 하나였다. 일찌감치 주연으로 낙점했던 배우 김선호가 사생활 문제에 휩싸였기 때문. 하지만 박훈정 감독은 김선호를 하차시키지 않고 품고 가는 쪽을 선택했다. 김선호는 이런 박 감독의 믿음에 부응했고, 귀공자 역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캐스팅할 때 뜸을 들이는 편이에요. 시나리오 쓸 때도 특정 배우를 염두하고 쓰진 않고 나중에 찾는 편이죠. 또 일단 1순위를 캐스팅하고 나면 그다음 후보를 정해두지 않는데 이번에도 그랬어요. 김선호를 캐스팅한 후 그 문제가 터졌는데 다른 데서는 하차를 한다고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그런데 다른 배우를 아무리 찾아도 다른 대안이 없었어요. 또 귀공자 캐릭터를 이미 김선호에게 다 맞춰놨던 상태였고요. 어떻게 될지 모르니 지켜보자는 입장이었죠.”
박훈정 감독은 김선호를 캐스팅한 것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는 “흥행을 떠나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선호는 영화를 안 해본 친구다. 연극은 했지만, 드라마도 주연으로 한 게 tvN ‘갯마을 차차차’다. 그전까지 비중 있는 조연으로 출연했는데, 그 작품들도 내가 볼 땐 주연보다 더 잘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의 주연은 스크린을 장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상으로 잘해줬다. 처음엔 본인도 영화에 대한 동경, 두려움이 있었을 거다. 그런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면 영화 몇 편한 친구처럼 노련하게 잘해줬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선호의 전작을 봤느냐는 질문에는 “캐스팅 과정에서 후보 배우들이 추려지면 그분들의 전작들을 쭉 본다. 그때 다 봤다. 김선호의 전작들을 보면서 재밌을 것 같고 괜찮을 것 같았다. 전작에서도 (귀공자의) 얼굴과 느낌이 있는데 다른 사람은 아직 못 본 게 아닌가. 먼저 써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박훈정 감독은 신예를 발굴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마녀’ 시리즈에서는 주인공 김다미와 함께 최우식의 새 얼굴을 끄집어냈고 ‘마녀2’에서도 신시아라는 가능성 있는 배우를 대중 앞에 공개했다. ‘귀공자’에서는 마르코 역의 강태주를 관객에 알려 재미와 신선함을 선사했다. 특히 강태주는 1980대1의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합류했다고 알려져 모두를 놀라게 했다.
“오디션 진행할 때마다 ‘다음부터는 오디션으로 절대 뽑지 않겠다’고 늘 말해요. 그런데 뽑고 그 신예가 만들어져 가는 과정을 보면 기분이 좋아요. ‘또 하나 건졌구나’ 싶거든요. 물론 기존의 배우들 중에 제가 원하는 캐릭터와 맞는 느낌의 배우가 있다면 굳이 오디션 보지는 않아요. 근데 그렇지 않으면 오디션을 봐서라도 뽑아야 하잖아요. 뽑는 과정 너무 힘들어요.(웃음)”
박훈정 감독이 강태주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평소 홍콩 영화를 좋아한다는 박 감독은 강태주에게서 홍콩 배우의 느낌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종적으로 몇 명의 후보를 두고 오디션을 다시 진행했다. 강태주는 내가 원하는 비주얼적인 부분도 충족하지만 에너지가 제일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연기에 대한 갈증이 있더라. 보면 알겠지만, 눈빛도 너무 좋다”며 “또 영어를 잘하는데 내가 외국어 잘하는 사람을 부러워한다. 홍콩 영화를 좋아하는 영향도 끼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박훈정 감독은 다음 작품인 ‘폭군’에 김선호와 김강우를 합류시켰다. 이에 대해서는 “내가 봤을 때 좋은 배우라 생각이 들면 계속하고 싶다. 그런데 난 한 작품씩만 하는데 배우들은 바쁘지 않나. 이번 경우에는 ‘귀공자’ 촬영 도중에 다음 작품 이야기를 하게 됐는데 마침 스케줄도 맞고, 본인들도 하고 싶어 해서 자연스럽게 연결됐다”고 설명했다.
또 ‘폭군’에 대해 “국가 조직 간의 이야기다. 아직 편집도 안 끝나서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도 “‘마녀’ 시리즈와 세계관을 공유하는 이야기다. ‘귀공자’랑 많이 다를 것”이라고 기대를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