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야구 선수 김라경(22)은 한국 여자야구에서 독보적인 존재다. 2017년 만 16세의 어린 나이에 국가대표에 발탁돼 일찌감치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18세인 2019년엔 국제무대(LG배 국제여자야구대회)에서 최고 115㎞/h의 공을 던지며 국가대표 에이스로 성장했다.
김라경은 운동장 안팎에서 ‘최초’의 업적을 여럿 세웠다. 여자 선수 최초로 리틀야구에서 홈런을 쏘아 올렸고, 여자 선수의 리틀야구 나이 제한을 중학교 1학년에서 3학년으로 연장하는 ‘김라경 특별법’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성인이 된 후에는 여자야구 최초로 남자 사회인 구단과 경기하는 ‘JDB(Just Do Baseball)’를 창설했다.
김라경의 발걸음은 후배들의 도전 의식을 자극하고 있다. 지난 11일 경기도 부천 원종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자신의 도전기를 소개한 김라경은 강연 후 학생들의 수많은 질문을 받았다.
“실패한 뒤엔 마음을 어떤 식으로 다잡죠?”라는 질문에 그는 “실패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실패를 많이 해봐야 (해답을) 알 수 있고, 실패를 딛고 성공한다면 더 큰 믿음이 생긴다. 지금은 더 많이 실패해 보는 게 앞으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라고 답했다.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이었다.
김라경은 학생들에게 ‘코이의 법칙’을 소개했다. 그는 “비단잉어 코이는 어항의 크기나 환경에 따라 성장하는 크기가 달라진다. 물고기는 환경을 선택할 수 없지만, 우리는 할 수 있다”라면서 “한계에 부딪혔을 때 어항 속에 나를 가두는 건지, 내가 더 클 수 있는데 안주하는 건지 고민해 봐야 한다. 어항을 깨고 강물을 찾아 끊임없이 노력했으면 한다”라고 학생들을 격려했다.
김라경은 말보다 행동으로 자신의 도전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여자야구가 ‘취미’에 그치지 않고 ‘직업’이 되게 하기 위해 그는 어린 나이부터 차근차근 준비해왔다. 김라경이 서울대(체육교육과)에 진학한 이유도, JDB를 창설한 이유도, 일본 무대에 도전한 이유도 모두 여자야구 활성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좌절도 많이 겪었다. JDB 1기를 이끌며 운영과 리더십 면에서 한계에 부딪히기도 했고, 우여곡절 끝에 진출한 일본 리그에선 첫 경기 만에 부상을 당했다. 여자야구 선수 최초로 토미존(팔꿈치 인대접합) 수술까지 받았다. 오빠 김병근(전 한화 이글스)에 이어 딸까지 수술대에 오르는 모습에 ‘그렇게까지 야구를 해야겠냐’는 가족들의 걱정도 있었다. 그러나 김라경은 버티고 또 버텼다. 지루한 재활 훈련을 이겨내며 다음 도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토미존 수술을 받은 김라경은 이제 깁스를 풀고 야구공을 잡았다. 내년 복귀를 목표로 공을 다시 던지기 시작했다. 김라경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올해 잘 준비해서 내년에 건강한 모습으로 공을 던지는 모습을 꼭 보여드리겠다”라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