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 하다가 벼랑 끝에 몰렸다. 과거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이상민(23·성남FC)을 2023 항저우 아시안게임 최종 명단에서 빼라는 목소리가 컸지만, 나흘 뒤에야 제외 소식을 알렸다. 후폭풍을 감당하는 몫은 대한축구협회(KFA)의 몫이다.
KFA는 18일 “2023 항저우 아시안게임 축구대표팀에서 이상민을 제외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14일 황선홍 감독이 뽑은 최종 엔트리(22명)를 공개한 지 나흘 만의 일이다. 느지막이 결정을 내린 탓에 크나큰 손해를 감수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는 지난 15일 최종 엔트리 제출을 마감했다. 최종 명단 변경은 부상 혹은 의학적 사유가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알려졌다. 과거 음주운전 탓에 명단에서 갑작스레 빠진 이상민의 경우는 해당하지 않는 것이다.
황선홍 감독이 이끄는 아시안게임 대표팀은 21명으로 대회에 나서야 할 처지에 놓였다. 아시안게임 3연패를 노리는 한국에 대형 악재다. 아시안게임은 적은 인원으로 빠듯한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결승전까지 바라보는 한국 입장에서 가용 인원이 준 것은 매우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대부분의 선수가 시즌 중 대회를 치르기도 하고, 일정도 빡빡해 부상을 당하기 쉬운 상황이다. 1명의 존재가 매우 큰 셈이다. 그러나 KFA의 ‘이상한 결정’으로 귀중한 한 자리를 잃을 위기에 놓였다.
이상민은 충남아산 소속이던 지난 2020년 음주 상태에서 운전하다 경찰 단속에 적발됐다. 그는 이 사실을 구단에 알리지 않고 3경기를 몰래 출전했다. 뒤늦게 구단에 알려 은폐 논란도 일었다. 당시 상벌위원회를 연 프로축구연맹은 이상민에게 15경기 출장 정지와 제재금 400만원의 징계를 내렸다.
이상민의 과오를 잘 아는 팬들은 최종 명단이 발표된 후 ‘퇴출’을 외쳤다. 심지어 이상민의 항저우행이 옳은가에 관한 기사도 쏟아졌다. 명단 발표 직후 비판 여론이 있었기에 KFA 입장에서는 선수를 교체할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나 KFA의 너무 늦은 대응 탓에 불리함을 안고 싸울 가능성이 커졌다.
태극 마크를 달고 아시안게임을 누비는 게 ‘꿈’이었던 선수들도 피해를 봤다. 출전에 연령 제한이 있는 아시안게임 특성상, 대부분의 선수가 이 대회에 나갈 기회는 한 번이다. 특히 이번 세대는 이강인(파리 생제르맹)을 비롯해 한국 축구의 미래를 이끌 자원이 즐비한 탓에 유독 경쟁이 치열했다. 그 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는데, 이제는 누구도 그 자리를 차지 못할 공산이 커졌다. 이상민 제외를 뒤늦게 결정한 것에 팬들의 분노가 매우 큰 이유 중 하나다.
KFA의 ‘축구국가대표팀 운영규정’ 제17조에는 ‘음주운전 등과 관련한 행위로 5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이 선고되고, 그 형이 확정된 지 3년이 지나지 않은 자는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이상민은 명시된 3년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그간 꾸준히 황선홍호의 주축 멤버로 뛰었다.
KFA는 “규정상 이 선수는 2023년 8월 4일까지는 국가대표로 선발될 수 없다”면서도 “해당 선수의 경우 2020년부터 지금까지 K리그2 소속으로 뛰며 음주운전으로 프로축구연맹 징계를 받은 사실이 있고 이후 연령별 대표팀에 선발되었는데, K리그1이나 A대표팀 선수 등과 비교하면 리그 소식도 선수 관련 정보도 상대적으로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기에 2021년 첫 선발 당시 해당 사실과 연관되어 관련 규정을 제대로 검토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현 상황만 보면, 황선홍호는 센터백인 이상민이 빠지면서 이한범(FC서울) 이재익(서울 이랜드) 와일드카드인 박진섭(전북 현대) 등 셋으로 중앙 수비 라인을 구축해야 한다. 선수 1명의 이탈로 애초 짰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KFA의 헛발질이 아시안게임 성적에 영향을 미친다면, 이상민을 뒤늦게 제외한 것은 그야말로 최악의 선택이 될 것으로 보인다.
▲ 항저우 AG 축구대표팀 명단(21명) -골키퍼: 이광연(강원) 민성준(인천) 김정훈(전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