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선 '프리저(Freezer)'라고 불렸다. 일본 무대에선 "헝그리 정신이 무기"라는 기대를 받기도 했다. 롯데 새 외국인 투수 애런 윌커슨(34)의 이력은 이렇게 독특하다.
롯데는 댄 스트레일리를 방출하고, 윌커슨을 영입했다고 지난 18일 발표했다. 인센티브 10만 달러 포함, 총액 35만 달러(4억4000만원)의 조건이다.
윌커슨은 2017년 9월 16일 밀워키 브루어스 소속으로 마이애미 말린스전에서 감격스러운 빅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당시로부터 5년 전만 하더라도 윌커슨은 미국 텍사스주 와코의 식료품점에서 평범한 직원으로 근무했다. 대학 시절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고 2년간 야구를 하지 못한 탓에 2012년 미 컴벌랜드 대학 졸업 때 프로 구단의 지명을 받지 못한 터였다.
일자리가 필요했던 윌커슨은 식료품점에서 3교대 근무를 했다. 트럭에서 물건을 내리고 싣는가 하면 냉동식품을 진열하는 등 냉동 창고에서 일했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닷컴에 따르면 윌커슨은 부서 관리자로 승진 제안까지 받았다고 한다. 윌커슨도 이 인터뷰에서 "냉동 식품을 진열하는 일을 계속할 수도 있었다. 아마도 괜찮은 수입을 올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야구의 꿈을 놓지 않았다. 독립리그 개리 사우스쇼어 레일캣츠에서 공을 던지기 시작하더니, 2014년 7월 보스턴 레드삭스에 입단했다. 2016년 7월 밀워키로 트레이드된 윌커슨은 빅리그 데뷔전에서 1이닝 무실점을 기록한 뒤 10월 2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전에 선발 등판해 7이닝 2피안타 1실점으로 호투했다.
가능성을 인정 받은 그는 이후 MLB(14경기 1승 1패 평균자책점 6.88)와 마이너리그(158경기 58승 31패 평균자책점 3.42)를 오갔다. 2021년에는 대만프로야구 라쿠텐 몽키스와 계약했지만, 아내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뛰지 못했다.
결국 LA 다저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은 윌커슨은 2022년 일본 한신 타이거스와 68만 달러(8억 6000만원, 추정 연봉)에 계약했다. 외국인 선수 보유 한도에 제한이 없는 일본 리그에서는 사실상의 '보험용 계약'에 가까웠다. 당시 일본 언론은 "헝그리 정신이 무기"라고 주목했다.
윌커슨은 대체 선발로 나서 월간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되는 등 5월까지 7경기 4승 2패 평균자책점 1.45로 호투했다. 그러나 6월 이후 부진에 빠진 끝에 14경기 5승 5패, 평균자책점 4.08을 기록한 뒤 재계약에 실패했다. 한신 구단이 분위기 전환 차원에서 외국인 선수 대거 교체를 결정한 영향도 컸다. 올 시즌 두산 베어스에서 승승장구 중인 라울 알칸타라도 지난해 1승 3패 17홀드 평균자책점 4.70을 기록한 뒤 재계약에 실패, KBO리그로 복귀했다.
롯데는 윌커슨의 야구 열정과 간절함, 그리고 일본 무대 경험을 높이 평가했다. 힘겨운 5강 경쟁 속에서 윌커슨을 '구원 투수'로 택한 이유다. 윌커슨은 부산 사직구장에 적합한 '뜬공형 투수'로 시속 140㎞ 중후반의 빠른 공을 던진다. 마이너리그 통산 9이닝당 삼진은 9.3개, 볼넷은 2.5개다. 구위와 안정적인 제구력을 함께 갖췄다는 평가다.
롯데 구단은 "윌커슨은 패스트볼 움직임이 뛰어나며 변화구 제구가 강점"이라고 소개했다. 윌커슨은 "일본에서 아시아 문화를 경험했기 때문에 한국 야구도 기대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