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들은 눈 감았고, 대한축구협회(KFA)는 귀를 닫았다. 자질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판정 수준에 노골적인 제 식구 감싸기까지, 한국축구의 심판 수준도 그만큼 후퇴하고 있다.
K리그에 또다시 대형 오심 논란이 불거졌다. 이번엔 상대 선수를 고의적으로 때렸는데도 주심도, VAR 심판도 이 장면을 외면했다. 축구계 거센 공분 속 KFA마저 황당한 해명과 무징계로 답했다. 상대 선수에게 폭행을 가한 선수도, 해당 장면을 그냥 넘어간 심판도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셈이다.
상황은 이랬다. 지난 12일 울산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울산 현대와 인천 유나이티드의 경기, 후반 3분 이규성(울산)이 오른팔을 휘둘러 문지환을 가격해 쓰러뜨렸다. 볼 경합 상황에서 나오는 불가피한 장면은 아니었다. 이규성은 문지환의 얼굴을 정확하게 쳐다본 뒤 신경질적으로 오른팔을 휘둘렀다. 문지환도 그대로 쓰러져 고통을 호소했다.
주심의 휘슬은 침묵했다. 공과 멀지 않은 위치였고, 시야가 가려진 상황도 아니었다. 장면을 아예 못 봤어도, 보고도 휘슬을 불지 않았어도 심판 자질에 대한 의문이 남을 장면이었다.
이를 잡아냈어야 할 VAR 심판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이 장면은 느린 화면을 통해 고스란히 전파를 탔다. 퇴장 판정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VAR이 가동될 수 있다. 그러나 주심이 직접 영상을 보고 확인하는, 온 필드 리뷰는 없었다. VAR 심판실이 권고조차 안 했거나, 주심이 권고받고도 그냥 넘긴 셈이다.
프로축구연맹 차원에서도 분명 문제의 소지가 있는 판정으로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K리그를 포함해 모든 심판 관련 업무가 KFA로 넘어간 상황이라 의견을 전달하는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시선은 KFA 심판평가위원회에 쏠렸다.
KFA는 ‘황당한 해명’과 함께 해당 사안을 그냥 넘겨버렸다. 팔을 휘두른 각도나 속도 등을 감안할 때 ‘밀치는 행위’라는 게 심판위 설명이다. 공중볼 경합 상황 등 불가피한 장면도 아니고, 가격이든 밀치는 행위든 의도성으로 가지고 폭력을 행사한 장면인데도 들끓는 여론에 귀를 닫고 이를 외면한 것이다.
축구계 비웃음이 KFA를 향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한 구단 관계자는 “공과 상관없이 의도적으로 폭행을 가한 장면이다. 행동 자체를 봐야 하는데 밀쳤다느니, 주먹이 아니라느니 하는 설명이 그저 우스울 뿐이다. 선수들에게 ‘이 정도 폭행은 이제 괜찮다’고 해줘야 하는 건가 싶다”고 꼬집었다.
더 큰 문제는 심판의 자질 문제, 그리고 심판들을 관리하는 KFA의 문제가 이번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당장 올해만 하더라도 결정적인 오심 때문에 논란이 된 사례가 적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 슬그머니 넘어가고 있다. 그나마 지난 강원-서울전 대형 오심으로 징계를 받았던 심판은 불과 한 달 만에 돌아온 상태다.
한때 KFA가 직접 공개하던 심판평가위 결과는 어느샌가 자취를 감췄다. 논란의 장면이 오심인지, 왜 정심인지를 이제 확인할 길이 없다. 심지어 기존 심판위원장은 비위 행위로 조사를 받고 있고, 공석이던 위원장 자리에는 외부 인사가 아니라 기존 부위원장이 앉았다. 한국인 심판이 월드컵 무대에 나선 건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이 마지막(부심 1명)이다. 끊이지 않는 판정 논란과 심판 자질 문제, 이와 관련된 KFA의 심판 관련 행정까지. 그럴 만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