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든 와델(두산 베어스)이 흔들렸다. 그런데 실점이 없다. '마구' 슬라이더가 춤을 추며 철벽투를 완성해준 덕분이다.
브랜든은 25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3 KBO리그 정규시즌 롯데 자이언츠와 정규시즌 경기에 선발 등판해 5이닝 5피안타 1볼넷 1사구 9탈삼진 무실점 호투를 펼쳤다. 제구가 흔들리면서 긴 이닝 소화에는 실패했지만, 주자가 쌓인 위기 때마다 그의 '신무기'이자 '마구'인 슬라이더를 꺼내 탈출했다. 타선의 득점 지원도 4점이나 받은 그는 4-0으로 앞서 시즌 3승 요건을 갖춘 6회 투구를 마치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지난해에도 두산에서 대체 외인으로 뛰었던 브랜든은 대만 프로야구에서 뛰다 지난 6월 KBO리그로 돌아왔다. 당초 두산은 지난해 브랜든의 모습이면 충분하다 생각하고 재영입했다. 그는 삼진은 적어도 매 경기 최소 5이닝 이상, 3실점 이하를 기록할 수 있는 자원이었다.
그런데 지난 겨울 훈련을 통해 달아온 신무기가 그를 180도 바꿨다. 지난해에는 각이 작은 커터성 슬라이더로 헛스윙 대신 인플레이 타구를 유도했는데, 올해는 각이 크고 느린 슬라이더를 통해 타자들의 헛스윙을 적극 유도하는 중이다.
슬라이더 위력은 25일 경기에서도 돋보였다. 이날 컨디션은 다소 좋지 못했다. 총 95구를 던지는 동안 스트라이크가 56구에 불과했다. 타석마다 카운트가 몰리기 일쑤였고, 이전까지 6이닝 이상을 가볍게 소화해 온 브랜든답지 않게 매 이닝을 어렵게 갔다.
하지만 결과는 무실점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위기마다 슬라이더가 제 몫을 했다. 1회 유격수 실책이 나온 후 후속 타자 전준우에게 커터로 첫 삼진을 뽑은 브랜든의 삼진쇼는 2회부터 본격 가동됐다.
2회 마운드에 오른 브랜든은 선두 타자 안치홍에게 먼저 2루타를 허용했고 한동희의 진루타로 1사 3루 위기에 놓였다. 인플레이 타구 자체를 내주면 안 됐는데, 슬라이더가 그걸 해냈다. 브랜든은 노진혁을 상대로 5구 중 슬라이더 4구(1구 커터)를 던져 두번째 아웃 카운트를 얻었다. 이어 신윤후에게 사구를 내줬으나 김민석에게 헛스윙 삼진을 다시 뽑아 위기에서 탈출했다. 이번엔 슬라이더가 1구 뿐이었지만, 2볼 1스트라이크 불리한 카운트에서 스트라이크를 벌어준 '열쇠' 역할을 했다.
3회 2피안타에도 마지막 카운트 삼진으로 위기에서 탈출한 브랜든은 4회에만 삼진 3개를 추가했다. 선두 타자 한동희에게 좌전 안타를 내준 브랜든은 앞서 삼진을 뽑은 노진혁을 상대로 풀카운트 후 좌타자 바깥쪽에 정확히 꽂히는 슬라이더로 루킹 삼진을 더했다. 이어 신윤후는 3구, 김민석은 4구 만에 헛스윙 삼진을 당하고 돌아섰다. 모두 결정구가 슬라이더였다.
5회에도 마운드에 오른 브랜든은 이번에도 슬라이더로 롯데 타선을 요리했다. 앞선 이닝들처럼 멀티 출루(1안타 1볼넷)로 위기에 놓였지만, 슬라이더가 있어 걱정 없었다. 롯데의 새 외국인 타자 니코 구드럼을 커터로 삼진 잡은 브랜든은 유강남에게도 슬라이더로 삼진을 잡았다. 결국 허무하게 카운트를 내준 롯데는 2사 1·2루 상황에서 안치홍의 우전 안타성 타구가 호세 로하스의 호수비에 잡히고 기회를 끝내야 했다.
비록 5이닝이지만, 든든한 득점 지원 속에 시즌 3승 기회는 갖췄다. 두산 타선은 3회 허경민의 적시 2루타로 선취점을 뽑은 후 김재환의 투런포로 그에게 먼저 석 점을 안겼다. 이어 브랜든이 마운드를 내려가기 직전인 5회 말, 롯데 선발 나균안과 불펜 진승현을 공략해 두 점을 추가해 6-0 여유있는 리드를 완성했다. 넉넉한 득점을 받은 브랜든은 6회 마운드를 이영하에게 넘기며 이날 등판을 마무리했다. 등판 전 1.04였던 그의 평균자책점은 이날 무실점으로 0.87까지 떨어졌다. 비록 단기간 기록이지만, '브동열'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성적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