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스포츠 수집품 제조사 TOPPS는 NFT(Non-Fungible Token) 하나를 제작했다. 1952년에 발행된 뉴욕 양키스 레전드 미키 맨틀의 루키 카드였다. 해당 NFT는 마켓 플레이스 ‘Opensea’에서 47만 달러(6억원)가 넘는 경매가를 기록했다. 스포츠 NFT 시장이 얼마나 컸는지 보여주는 일화다.
그로부터 두 달 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선수 사진과 경기 명장면 등을 NFT로 제작하는 서비스 '크볼렉트'를 출시했다. 팬들은 획득한 NFT를 거래소 ‘업비트’를 통해 사고팔 수 있다. 웹 3.0 시대의 화두인 NFT가 한국 프로야구에도 상륙했다는 걸 보여준 사례다.
크볼렉트가 출시 1주년을 향해가는 사이 글로벌 NFT 시장은 하락세를 맞이했다. 2022년 4월만 해도 NFT 월 단위 구매자 수는 약 110만 명에 달했는데 이달 기준으로는 약 38만 명에 불과하다.
NFT의 인기 하락 및 부작용에도 기업들은 NFT 활용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신 이들은 NFT를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바라본다. NFT를 발행해 투자 자산으로 삼기보다 팬덤 강화, 정품 인증 등의 용도로 활용 중이다. 프로야구 역시 마찬가지다.
NFT를 통한 팬 등급화
NFT 소유자들끼리는 커뮤니티가 형성되기 쉽다. 대다수의 NFT가 한정 수량으로 판매되기 때문이다. 일부 연예인들은 NFT를 발행해 특별한 상위 팬덤을 구축하기도 한다. 선미의 ‘선미야 클럽’, 싸이의 ‘싸이거’ NFT가 대표 사례다.
같은 팬덤 문화에 기반을 두는 야구단 역시 이를 벤치마킹할 수 있다. 한화 이글스는 마스코트 ‘수리’로 NFT를 만들어 ‘수리 크루십’이라는 멤버십을 신설했다. 구매자들은 선입장, 매장 식음료 할인, 이벤트 투표권 등의 혜택을 받는다.
수리 크루십은 의미 있는 시도였지만, 보완점도 남겼다. 일단 기존 멤버십과 혜택 정리가 부족했다. 현재 한화 멤버십은 수리크루십을 포함해 4가지가 있는데, 멤버십별로 이름·혜택·가입 방법이 다 달라 혼동을 일으킨다. 통일된 네이밍 체계, 누적식 혜택으로 멤버십을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해 보인다.
디자인도 아쉽다. 일반적으로 NFT는 눈코입, 옷, 오브젝트 등을 여러 개 모델링한 다음 무작위로 조합해 만든다. 따라서 적절한 필터링을 거치지 않을 경우 괴이한 NFT가 등장하기도 한다. 수리 크루십도 마찬가지였는데, 한화는 이를 ‘망한 수리 대회’ 이벤트를 개최해 유쾌하게 풀어냈다. 그래도 통상 디자인은 아름다울 때 소비자의 구매 의욕을 올리는 법이다. 다수의 전문가들도 선미 NFT의 ‘1초 완판’ 비결로 디자인을 꼽았다. 두 요소만 개선된다면 NFT는 선망 요소를 바탕으로 야구단의 강력한 팬덤을 구축하는 데 더없이 좋은 수단이다.
NFT가 불러온 생산 시스템 변화
NFT를 활용해 생산 시스템을 새로 정립하는 기업도 많아지고 있다. 전통적 생산 방식은 예상 판매량을 도출한 후 제품을 찍어냈다. 판매량이 예상치를 크게 밑돌면 이는 고스란히 재고가 됐다.
이제 몇몇 기업은 상품 출시 전 NFT를 선판매한다. 그리고 NFT 판매량에 맞춰 실제 제품을 후생산한다. 선판매를 활용하면 기업은 재고를 최소화할 수 있다. 선결제가 이뤄지기에 자금 조달도 빨라진다.
일례로 국내 한 가방 브랜드는 서류 가방 재판매에 앞서 NFT를 발행했다.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이 가방을 들고나오며 제품이 완판된 탓이다. 이 업체는 국내 NFT 마켓 플레이스 ‘메타파이’와 손을 잡고 가방 구매권을 판매했다. 이처럼 NFT 선판매는 품절 상품을 재입고할 때, 재고 위험으로 인해 대량 생산이 어려울 때, 원재료 공급에 시간이 걸릴 때 도움을 줄 수 있다.
프로야구단 굿즈 판매에도 적용 가능하다. 프로야구단 상품에는 양극화가 심하다.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거나 인기 브랜드와 콜라보한 굿즈는 일찌감치 완판된다. SSG 랜더스의 스타벅스 유니폼과 KIA 타이거즈의 무직 타이거 콜라보 굿즈가 대표적이다.
반대로 지난 시즌 미처 다 판매하지 못한 유니폼과 어센틱 의류는 사정이 다르다. 구단은 대규모 할인을 통해 이 재고를 처리해 왔다. NFT 선판매 방식이 도입된다면 수요와 공급을 맞추기 쉬워진다. 이를 통해 이익 극대화 및 재고 최소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물론 소비자가 긴 배송 기간을 감내할 수 있다는 가정 하에서다.
피지털(Phygital) NFT의 등장
이러니저러니 해도 NFT의 핵심 가치는 소유다. 최근에는 한층 더 몰입된 소유감을 동반하는 ‘피지털(Physical+Digital) NFT’가 주목받고 있다. 이는 무형의 IP를 실물 상품으로 만들어낸 자산을 뜻한다. 일례로 미국프로농구(NBA) 하이라이트 장면 기반 NFT인 NBA 탑 샷은 ‘인피니티 오브젝트’라는 액자를 출시했다. 액자 안의 스크린에서는 본인이 소유한 NFT의 장면이 재생된다.
한화 이글스의 수리 NFT도 실물로 제작하면 어떨까? 마이애미 말린스 홈구장에는 ‘버블헤드 박물관’이 명소로 꼽힌다. 이곳에는 약 1000개의 선수 버블헤드가 진열되어 있다. 이처럼 베이스볼 드림파크에 수리 NFT 모형을 전시할 수도 있다. ‘독수리 둥지’같은 이름을 붙이고 한화 홈구장의 명소로 홍보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NFT의 실물화가 이루어진다면 팬들에게 시각적인 즐거움을 제공한다. 이 과정에서 NFT의 인지도가 동반 상승할 가능성도 있다.
크볼렉트가 출시됐을 때 KBO는 NFT를 오직 자산으로만 여겼다. 최근에는 NFT 활용 영역이 기념물까지 확장되고 있다. 롯데 자이언츠는 이대호의 은퇴를 앞두고 포토카드형 NFT를 한정 발행했다. KT 위즈와 SSG 랜더스는 우승 기념 NFT를 제작했다.
사고파는 거래 대상을 넘어 블록체인 기술의 집약체로 NFT를 바라보면 훨씬 다양한 가능성이 열린다. 팬덤 등급화, 굿즈 생산 모델 재정립, 홈구장 명소와 같은 아이디어는 일부일 뿐이다. 앞으로 프로야구단이 NFT 활용에 적극적으로 나서 팬들에게 즐거움을 제공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