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컵을 주관하는 대한축구협회(KFA)를 향해 각 구단과 팬들의 분노가 이어지고 있다. 앞서 인천 유나이티드가 전북 현대와의 FA컵 4강전 연기에 대해 “일방적인 통보였다”고 불만을 드러낸 데 이어, 이번엔 포항이 제주 유나이티드 원정에서 킥오프 직전 돌연 연기를 결정한 KFA와 제주도를 향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상황은 이랬다. 포항은 지난 9일 오후 7시 30분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제주와 FA컵 4강전을 치를 예정이었다. 그런데 경기 시작을 1시간도 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돌연 ‘경기 연기’가 결정됐다. 이미 포항과 제주 모두 선발 라인업까지 공개된 시점에 갑작스레 이뤄진 결정이었다.
연기 사유는 태풍 카눈 북상에 따른 ‘우려’였다. KFA도 이날 “제주-포항 경기는 태풍과 안전사고 우려로 취소 및 연기됐다. 태풍 카눈이 북상 중인 가운데 경기 강행 시 선수 및 관중의 안전사고가 우려돼 경기감독관 판단 하에 연기로 확정됐다”고 공지했다. ‘악천후, 천재지변 등 불가항력에 의해 경기 개최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 경기감독관이 대회 본부와 협의하에 경기 개최 취소, 중지를 결정할 수 있다’고 명시된 대회 규정에 따른 결정이었다.
문제는 당장 경기를 연기할 정도, 안전을 우려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구단 및 현장 관계자들에 따르면 경기 연기가 결정될 당시 현장은 엄청난 비가 쏟아진 것도, 거센 바람이 몰아친 것도 아니었다. 실제 선수와 관중 안전에 우려가 있는 상황이었다면 경기를 연기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정상적으로 축구를 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경기가 돌연 연기된 건 쉽게 납득하기 어려웠다.
더구나 이미 앞서 경기 감독관조차 정상 개최를 결정한 상태였다. 홈팀인 제주 구단도 “경기 감독관과 대회본부(KFA)의 논의 끝에 정상 진행하는 것으로 결정됐다”고 팬들에게 알렸을 정도다. 우선 정상적으로 개최하되, 경기 도중 날씨 상황에 따라 중단할 수 있다는 규정도 두 구단에 통보됐다. 포항 구단 관계자는 “경기 감독관이 경기를 할 수 있겠다는 판단을 분명히 하셨다. 대신 만약 경기를 치르다 비바람이 너무 거세져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즉시 중단하고 순연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알고 준비하고 있었다”고 돌아봤다.
돌연 경기가 연기된 건 제주도의 공문이 시작이었다. 이날 제주도는 경기 1시간 30분여 전 KFA와 구단들에 경기 연기 요청 공문을 보냈다. ‘국가적으로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는 가운데, 축구경기가 열리면 안전불감증을 조장할 수 있다’는 게 제주도가 보낸 공문의 요지였다. 경기 강행 또는 연기 결정권을 가진 경기 감독관과 KFA는 결국 이 공문에 따라 경기 연기를 결정했다. 경기를 준비하던 선수단과 홈·원정 팬들은 킥오프 1시간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황당한 결정을 통보받았다.
특히 원정길에 오른 포항의 분노가 컸다. 제주도의 공문 통보 시점과 공문 내용, 그리고 구단과 협의가 아닌 제주도의 요청에만 따라 경기 연기를 최종적으로 결정한 KFA 모두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미 경기를 준비하던 선수단, 제주 원정 응원길에 오른 포항 원정 팬들에 대한 존중이 없는 것에 아쉬움이 컸다.
포항 관계자는 “제주도에서 보낸 공문 때문에 경기 시작 1시간도 채 남겨놓지 않고 경기가 연기됐다. 공문엔 ‘안전불감증을 조장한다’고 적혔다. 안전불감증 단어 하나로 우리는 안전을 신경 쓰지 않고 대회를 치르려는 몰지각한 구단으로 몰아간 셈이 됐다. 정말 안전이 걱정됐다면, 당연히 하루 전에는 공문을 보내 연기를 협의했어야 했다. 결국 이날 태풍을 뚫고 원정 팬 100여명이 오셨다. 다들 너무 화가 많이 났고, 납득도 쉽게 가지 않는다”고 울분을 토해냈다.
이어 “공문을 보낸 제주도도 이해가 안 되지만 KFA의 대처도 문제라고 본다. ‘공문을 받았으니 연기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인데, 공문 내용이 불합리하다면 ‘모든 상황을 주시하고 있고, 문제가 생기면 순연을 할 거다. 이런 대책들을 세우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설득하는 게 주최 측인 KFA의 자세라고 본다. 경기 직전 공문을 보낸 제주도도, 공문을 받았으니 경기를 연기한 KFA도 모두 각자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고 본다”고 비판했다.
공교롭게도 경기가 취소된 뒤 포항 선수들은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정상적으로 훈련까지 진행했다. 우선 경기를 진행하고, 상황을 지켜보는 지극히 정상적인 절차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는 뜻이다. 관계자는 “(연기 결정과 관련된 협의는) 전혀 없었다. 우리는 경기를 하고 싶었다. 결과론이지만 경기 시간대 제주도에 비도 많이 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경기 연기에 따른 피해를 고스란히 구단과 팬들이 떠안아야 한다는 점이다. 포항 선수단은 태풍에 대비해 지난 7일(월요일) 입도했다. 차라리 경기 연기 결정이라도 더 빨랐다면 일찍 포항 복귀 길을 찾을 수 있었다. 팬들 역시도 굳이 제주 원정까지 향할 이유가 없었다. 경기를 정상적으로 진행하는 듯했다가 1시간 전 돌연 취소해 버리니 선수단도, 팬들도 발이 묶였다. 포항 관계자는 “선수단은 금요일(11일)에나 돌아간다. 5일 간 선수단 체류비용은 물론, 사전에 연기를 결정했다면 오지 않으셨을 100여명의 팬분들의 비용 등 경제적 손실은 대체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도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연기된 경기 일정을 다시 잡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특히 포항은 이달 말 가뜩이나 강원, 인천으로 이어지는 죽음의 원정 2연전이 예정돼 있다. 만약 8월 29~30일에 제주 원정이 잡히기라도 하면, 포항은 강릉, 제주, 인천으로 이어지는 강행군을 이어가야 할 수도 있다. 당장 일정만큼 꼬여버린 선수들의 컨디션도 다시 조절해 오는 13일 광주FC와 홈경기에 대비해야 한다. 제주도와 KFA를 향해 분통을 터뜨릴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FA컵 4강전에서 일정과 관련해 KFA 행정에 아쉬움을 드러낸 건 비단 포항만이 아니다. 앞서 인천 구단은 이례적으로 구단 입장문을 통해 공개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당초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릴 예정이던 FA컵 4강이 잼버리 콘서트 여파로 열리지 못하게 되자, KFA가 다른 경기장 개최도 아닌 두 팀의 경기 연기를 결정해 통보한 탓이다.
인천 측은 전북이 홈경기 개최를 포기한 만큼 대회 규정에 따라 인천 홈에서 열려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게 아니라면 전북이 제안한 제3구장(대전) 경기라도 응할 계획이었다. 이미 제3구장 개최는 전북과 인천 모두 합의했다. KFA는 그러나 국가적 행사라는 외적 변수가 작용한 만큼 전북이 홈경기 개최를 포기했다고 보기는 어렵고, 제3구장 개최는 대회 규정상 홈·원정팀 모두 경기 개최가 불가능한 경우에 적용되는 만큼 허가하지 않았다. 인천 홈에서도, 제3구장에서도 경기가 열리지 않고 연기된 배경이다.
인천 구단은 연기 결정 과정에서 KFA로부터 뚜렷한 설명조차 듣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곧장 입장문을 내고 “일방적으로 경기 일정 변경에 대한 공문을 전달받았다. 일방적으로 일정이 변경된 점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며 KFA의 결정에 대해 공개적으로 불만을 드러냈을 정도다. 전달수 대표이사를 비롯한 구단 관계자 누구도 일정 연기에 동의한 적이 없다는 게 구단 측 설명이다. ‘일방적인 변경’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이유다.
KFA 측은 그러나 “인천 구단과 충분히 소통했고, 경기 연기를 결정한 근거는 대회 규정 제13조(경기 개시) 3항 ‘경기 개시 일자 및 시간은 TV 중계·대회 흥행 및 기타 사유에 따라 조정될 수 있다’에 따른 것”이라고 반박했다. 다만 이 조항이 이번 사례처럼 이미 예정됐던 경기를 KFA가 임의로 연기할 수 있다는 규정으로 해석할 수 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FA컵 4강과 무관한 한 축구계 관계자는 “인천과 포항의 불만 모두 이해가 된다. 잼버리나 태풍 모두 예기치 못한 변수였겠지만, 그런 변수들 속에서 상황을 정리하지 못한 건 결국 KFA의 책임이라고 본다. 같은 결론이 나왔더라도, 그전에 구단 목소리에 충분히 귀만 기울이고 구단에 충분한 설명만 했다면 이 정도 불만은 안 나왔을 것이다. KFA 스스로도 분명 돌아봐야 할 문제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