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현석은 8일 LA 다저스와 계약금 90만 달러(11억 8000만원)에 계약했다고 발표했다. 올해 초 피츠버그 파이리츠와 계약한 심준석(80만 달러·10억 5000만원)보다 조금 더 높은 액수다. MLB 구단들은 매년 초 보너스 풀(유망주 스카우트에 사용할 수 있는 돈)이 리셋된 후 해외 유망주들을 영입하는 편인데, 다저스는 시카고 화이트삭스에 유망주를 내준 후 보너스 풀을 넘겨받아 즉각 장현석을 영입했다.
그만큼 다저스에 장현석이 필요했다. 다저스는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 연속 포스트시즌(PS)에 진출한 강팀이다. 올 시즌 역시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1위로 PS 진출이 거의 확정적이다. 성적이 좋은 만큼 드래프트 순위는 낮다. FA(자유계약선수) 영입이나 사치세 기준선 초과로 상위 지명 순번도 밀린다.
지명 당시부터 대형 투수를 뽑은 전례가 아주 드물다. 워커 뷸러가 대표적이다. 지명 당시 22세였던 뷸러는 반더빌트대 재학 시절 지명 후보 랭킹 11위에 오르고도 24순위로 다저스에 입단했다. 당시 최고 154㎞/h의 강속구를 던졌지만, 팔꿈치 통증이 있어서 순번이 밀렸다. 실제로 뷸러는 입단 직후 토미존 서저리(팔꿈치 인대접합 수술)를 받았다. 뷸러가 고교 3학년 때 던진 최고 구속은 151㎞/h 안팎이었다.
올 시즌 데뷔한 바비 밀러 역시 대학 시절 선발로 최고 스피드가 154㎞/h에 그쳤고, 선발로 뛸 역량은 당장 아니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뷸러와 밀러는 다저스 마이너리그 팀에서 최고 163㎞/h를 던지는 최상위 유망주가 됐고, 빅리그 주축 선발로 성장했다.
장현석은 고교 시절 최고 스피드 158㎞/h를 기록했다. 게다가 스위퍼를 장착하는 등 변화구 구사도 수준급이다. 보너스 풀 제도 시행 이후 다저스에도 장현석보다 많은 계약금을 받고 입단한 다른 포지션의 국제 유망주들은 몇몇 있다. 그러나 장현석 같은 '스펙'을 가진 투수는 없다.
장현석은 다저스의 '성장 환경'을 중시한 거로 보인다. 다저스는 최근 투수 유망주들을 급격하게 성장시킨 '핫 플레이스'로 이목을 끌었다. LA 타임스와 베이스볼 아메리카 등은 다저스 산하 더블A팀 선발진의 평균 구속이 153㎞/h(5월 초 기준)를 마크했다고 전했다. MLB 전 구단을 포함해 공동 1위(마이애미 말린스와 동일) 기록이다.
이는 최상위 지명 유망주의 퍼포먼스가 아니다. 완성도가 떨어져 중위 순번에 지명받거나 트레이드를 통해 영입한 '원석형 선수'들을 계발해서 만든 결과다. LA 타임스는 이들이 구단이 개설한 정식 강좌를 통해 근육 증량, 신체 가동법, 근력을 투구 딜리버리(동작)에 활용하는 법을 두루 배웠다고 소개했다.
데이터 분석을 통한 육성 시스템은 MLB에서 드물지 않다. 다저스가 돋보이는 건 멘털 케어다. LA 타임스는 "다저스 선수들은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다. 야구에는 자신감이 필요한데 그들이 그걸 보여준다. 자신의 장점을 알고 자신 안에 더 많은 것(역량)이 담겨 있다는 걸 안다"고 전했다. 더블A 유망주 멤버 중 한 명이이었던 닉 나스트리니(현 화이트삭스)는 "학창 시절까지 다른 구단은 날 믿어주지 않았다. 다저스가 유일했다"며 "이곳에 와서 내가 해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떠올렸다.
물론 경쟁이 만만치 않다. 빅리그 로스터가 탄탄한 다저스는 유망주 콜업이 늦은 편이다. 국내 남았다면 1차 지명이 유력했을 최현일(23)은 직구 평균 구속이 148㎞/h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다. 그러나 아직 다저스의 상위 싱글A에 머물고 있다. MLB 승격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다저스 입단은 도박일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시즌 중 계약금을 끌어모아 계약했을 정도로 다저스는 장현석을 높게 평가했다. 성과만 보여준다면, 장현석에게 줄 기회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