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적 의미로 보자면 누군가를 보호할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이다. 누군가를 보호한다는 건 일종의 과제이자 의무다. 완수하지 못하면 갈등이 생긴다. 그동안 숱한 영화와 드라마에서 이 보호자라는 인물이 가진 특성과 갈등을 소재로 활용해온 이유다. 납치된 딸을 구하는 아빠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테이큰’이 대표적이고 국내에서도 ‘아저씨’, ‘실종’, ‘더 킬러: 죽어도 되는 아이’ 등 비슷한 예를 많이 찾을 수 있다.
보호해야 할 대상이 납치되거나 위험에 빠지고 보호자가 그 상황을 타개한다는 플롯. 스토리만 보자면 진부하기 그지없지만, 정우성 감독의 영화 ‘보호자’는 결이 다소 다르다. ‘누군가를 구해내야 한다’는 명분 아래 더욱 무자비한 폭력이 자행되는 여느 작품들과 다르게 ‘보호자’는 ‘보호한다’는 선을 철저하게 지킨다. ‘보호’를 ‘폭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감독은 영화의 정체성을 러닝타임 초반부터 친절하게 알려준다. 10년간 감옥 생활을 했던 수혁(정우성)은 이제 그만 자신이 몸담고 있던 폭력의 세계를 떠나고자 한다. 그때 마침 사랑하는 여자가 나타나 수혁에게 딸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그 딸을 위해서라도 수혁은 조직에서 벗어나 평범한 삶을 살아보고자 한다. 이 결심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수혁은 조직 생활을 그만두겠다고 보스인 응국(박성웅)을 찾아간 자리에서 2인자 성준(김준한)이 어처구니 없는 일로 자신에게 주먹질을 할 때도 묵묵히 맞고만 있는 것으로 각오를 대변한다.
때문에 ‘보호자’를 주인공의 손에 의해 빌런들이 시원스럽게 나뒹구는 여느 액션 영화로 생각하면 실망할 공산이 크다. 그보다 ‘보호자’는 다소 뻔할 수 있는 플롯 안에서 ‘보호’와 ‘폭력’을 탐구하는 예술 영화로 봐야 한다. 물론 ‘액션 장인’이라 불리는 배우 정우성이 연출한 작품답게 신선하고 재미있는 액션 장면들이 왕왕 등장하지만, 그것이 주라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액션 장면에서도 함의를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수혁의 과거를 보여주는 장면에선 그가 손에 손전등을 쥐고 일대다로 싸움을 벌이는데, 어둠과 빛의 대비라는 기준에서 보면 색다르다. 무자비한 폭력이 자행되고 있는 현장에서 반짝이는 손전등의 불빛은 너무나 작지만, 그럼에도 환하게 빛나 시선을 독차지한다. 또 수혁이 응국이 보낸 일당들에 의해 쫓길 때도 웬만하면 차 밖으로 나오지 않고 그 상황을 해결하려 한다는 점 역시 눈여겨 볼만하다. 그것은 자신을 향하는 폭력에 수혁이 똑같이 맞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방어하고 회피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미장센 역시 돋보인다. 영화에서 수혁은 줄곧 오른쪽으로 걸어 나가는데, 이는 수혁이 옳은 길을 선택해서 나아가고자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등장인물이 오른쪽으로 향하는가 왼쪽으로 향하는가는 그 인물의 심리나 앞으로 펼쳐질 상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표식이다. 또 하늘 위에서 수직으로 내리꽂는 것 같은 촬영 기법이나 폭탄 사이를 질주하는 매끄러운 드라이빙 장면 등이 볼거리다. 여기에 폭력을 우습게 만들어버리는 블랙코미디적 유머도 곳곳에 삽입돼 있어 이따금씩 실소를 터뜨리게도 한다.
영화는 더할나위없이 담백하고 우아하다. 배우 정우성은 ‘보호자’를 통해 자신이 가능성이 충만한 연출가임을 입증했다. 군더더기가 없는 97분의 러닝타임은 뻔한 플롯이 가진 한계를 명확히 뛰어넘었다. 15일 개봉. 15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