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단단히 땅에서 받치면 다른 한 사람이 마음껏 날아오른다. ‘잠’이 벌써 네 번째 호흡인 이선균과 정유미. 두 사람은 마치 연날리기를 하는 것 같은 연기 합으로 94분의 러닝타임을 홀린다.
‘잠’은 행복한 신혼부부 현수(이선균)와 수진(정유미)을 악몽처럼 덮친 남편 현수의 수면 중 이상행동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잠드는 순간 시작되는 끔찍한 공포의 비밀을 풀기 위해 애쓰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그린다.
“재미있는 장르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던 유재선 감독의 말처럼 ‘잠’은 장르물의 미덕에 충실하다. 관객들에게 끝까지 궁금증을 던지고 이를 때로는 심각하게, 때로는 공포스럽게 풀어나간다.
현수의 이상행동은 영화가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바로 펼쳐진다.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찾아오는 공포야 말로 진짜 사람을 무섭게 하는 법이다. 하지만 수진에게 현수는 자신이 사랑하고 믿는 남편. 자신을 안심시켜주는 존재가 또한 공포를 불어넣을 때의 감정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생활연기로 유명한 정유미는 이 부분에서 자신의 진가를 발휘한다. 놀랐으면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려는 태도. 그 두 가지 감정선을 오가는 게 어색하지가 않다.
영화가 진행되며 점차 수진의 공포도 커진다. 그저 평범한 잠꼬대 같은 거라고 생각했던 몽유병 증세가 시간이 지나도 낫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강도를 더해가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 현수의 이상행동이 위협적일 정도로 기괴하게 변해가자 수진은 신경쇠약이 걸릴 정도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지난밤 현수가 남긴 흔적들을 보는 게 점차 두려워졌기 때문. 이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 한 수진은 판단력도 잃어갈 정도로 쇠약해진다.
정유미는 수진의 이런 변화를 점진적으로 설득력 있게 풀어나간다. 부부는 문제를 함께 극복해나가는 거라며 희망을 그리다가도 막상 남편의 이상행동이 시작되면 위협감에 분노까지 느끼는 극단적인 감정의 진폭. 자칫 정신 나간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을 수진은 현실적인 정유미라는 얼굴과 만나 설득력을 높인다.
‘잠’이 미스터리한 공포를 이야기하면서도 현실감을 잃지 않을 수 있는 데는 이선균의 든든한 뒷받침도 크다. 이선균이 연기한 현수는 수면 중 이상행동만 아니라면 지극히 상식적인 캐릭터. 자신의 기행에도 좌절하지 않고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으려 하고, 그런 와중 쇠약해져가는 수진의 마음까지 보듬는다. 이선균은 튀지 않는 연기로 현수 역을 묵묵히 소화하며 정유미와 기가 막힌 밸런스를 이뤄냈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에서 연출부로 일한 유재선 감독의 장편 데뷔작. 배우들의 호연이 돋보이는 미스터리 스릴러 ‘잠’은 내달 6일 개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