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복 신을 찍는데 너무 쑥스러워서 자세를 안 바꿨더니 담이 오더라고요. 그래도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보여드릴 수 있어 만족스러워요.”
배우 전혜진이 이제껏 본 적 없는 캐릭터로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그는 지니TV 오리지널 월화드라마 ‘남남’에서 전작들의 강직한 인물들과 달리, 한없이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엄마 은미를 연기하며 작품의 흥행을 가장 앞에서 이끌었다. 무엇보다 ‘남남’은 기존 드라마와 영화에서 답습한 모성애가 아닌 무척 쿨한 엄마의 모습, 그리고 이에 못지 않은 딸을 그려내며 새로운 모녀상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혜진은 색다른 엄마를 연기하며, 이 같은 호평을 만들어내는 데 큰 힘을 보탰다. 전혜진은 ‘남남’ 종영일인 22일 일간스포츠를 만나 “드라마를 좋아해주셔서 감사하다. 필모그래피 중에 너무 좋아하는 작품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남남’은 철부지 엄마 김은미(전혜진)와 쿨한 딸 김진희(최수영)의 남남 같은 한 집 살이와 그들의 썸과 사랑을 그리는 내용으로 지난달 17일 첫 발을 내디뎠다. 드라마는 시청률 1.3%(닐슨코리아 전국 유료가구 기준)로 시작해 3회만에 2%대, 6회에선 3%대로 상승하더니 9회는 4.5%를, 최종회는 5.5%를 기록했다. 이는 신드롬을 일으킨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이후 ENA 최고 시청률이다.
먼저 전혜진은 ‘남남’에 대한 호평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시청률이 높아서 좋기도 하지만 이번 작품은 다른 결로 좋은 얘기를 많이 들었다”며 “주위에서도 ’드라마 잘 봤어’가 아니라 모녀 얘기 등 작품이 지닌 독특한 지점을 집어서 좋은 평가를 해주는 게 너무 뿌듯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대본을 봤을 때 시청자들이 좋아해줄 거라고 믿는 구석이 있긴 했어요. 단지 여성들 또는 모녀 이야기가 아니라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인데도 은미가 엄마로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방식이 독특했죠. 이젠 어른이 된 딸이 있는데도 성장해 나가는 모습이 좋았어요. 은미가 어렸을 때부터 결핍을 지니고 있는데 그래서 강해질 수밖에 없고, 이 성격이 딸을 독립체로 바라보는 것으로 이어지는 서사가 좋았죠.”
‘남남’은 1 ,2화를 19세관람등급으로 파격 편성했는데 은미가 자위하는 모습을 딸 진희에게 들키거나, 미혼모인 은미가 수영복을 입고 지나가는 남성들과 은밀하게 눈맞춤을 하며 쉼없이 연애를 이어가는 모습이 담겼다. 전혜진 또한 이러한 연기가 쉽지 않았다고 웃으면서도 “그동안 카리스마 있는 캐릭터들을 자주 연기하다 보니 은미 같은 캐릭터를 하고 싶은 목마름이 있었다”라며 “아무래도 수위가 높은 장면들도 있다 보니 염려가 되면서도 재밌게 할 수 있겠다 싶더라”라고 전했다.
“자위 장면은 ‘연기를 어떻게 하지’ 고민한 시간이 길었던 것 같아요. 감독님에게 ‘이 장면을 어떻게 찍을 거냐’고 묻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막상 연기하니까 욕심이 나더라고요.(웃음) 연기하기 전엔 다소 부담감을 느꼈지만 은미라면 했을 행동들이라 생각하니까 쑥스러운 장면도 하게 되더라고요. 이 장면뿐 아니라 과한 애정행각도 그랬죠.”
다만 드라마 첫 촬영에서 수영복 신을 연기한 것은 무척 부끄러웠다고 털어놨다. “스태프들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수영복을 입고 연기하는 게 괜히 창피했다”라며 “비슷한 자세를 계속 하고 있거나 감독님이 컷을 했는데도 그 포즈를 유지해서 담이 걸렸다”라고 웃었다.
은미는 솔직하고 거침이 없는 인물이자, 엄마 역할과 별개로 자신의 인생을 사는 캐릭터다. 그런데도 딸을 사랑하지 않는다든가, 딸에게 무책임하지 않다. 딸을 독립된 개체로 여기며, 적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전혜진은 실제 배우 이선균과 지난 2009년 결혼해 슬하에 두 아들을 두고 있는데 은미를 연기하며 남다르게 느낀 지점을 밝혔다.
“엄마와 자녀가 서로 존중하면 좋겠지만 쉽지 않잖아요. 엄마도 사랑해서 그러는 건데 자녀가 이를 알아차려주지 않고, 자녀도 엄마에게 서운한 점이 있고요. 서로에게 부족한 점을 지적하는 게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게 중요하다고 느껴요. 저 또한 어렵지만 엄마인 경우엔 자녀를 한 명의 인격체로 봐주고 갈등이 발생하면 ‘남남’의 은미와 진희처럼 풀어나가도 되고요.”
전혜진은 지난 1998년 영화 ‘죽이는 이야기’로 데뷔한 후 영화 ‘더 테러 라이브’,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비밀의 숲2’ 등에서 강인한 인물들을 연기해왔다. 그 중에서도 주체적이고 카리스마 있는 캐릭터로 큰 사랑을 받았다. ‘남남’에서도 엄마도 성적 욕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의미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이 같은 작품과 캐릭터 선택 기준에는 전혜진의 고민이 녹아 있었다.
“언제부턴가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가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예전엔 ‘배우는 배우일 뿐 공익사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여겼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적 영향력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배우로서 어떤 작품에서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는 저의 삶의 가치관, 태도 등이 녹아 있기 마련이니까 스스로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나이’라는 말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어떻게 삶을 나아갈지 고민하고 있고 그 답은 ‘배움’ 같아요. 계속 새롭게 도전하고, 그만큼 배울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