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브의 달인' 애덤 웨인라이트(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도 리치 힐(샌디에이고 파드리스)도 아니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MLB)에서 커브 움직임이 가장 인상적인 건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36·토론토 블루제이스)이다.
MLB 통계 사이트 베이스볼서번트에 따르면, 류현진의 2023시즌 커브 수직 무브먼트(Vertical Movement)는 70.6인치(179.3㎝)다. 커브를 최소 50구 이상 던진 225명의 투수 중 1위. 유일하게 수직 무브먼트 값이 70인치를 넘는다. 백스핀(backspin·역회전)이 걸리는 패스트볼과 달리 커브는 톱스핀(topspin)의 영향을 받는다. 날아가면서 공이 가라앉는데 수직 무브먼트가 크다는 건 그만큼 정점과 낙점의 차이가 크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2020년 3월 MLB 공식 홈페이지 MLB닷컴은 빅리그에서 가장 위력적인 커브 5개를 소개하며 클레이턴 커쇼(LA 다저스)를 첫 번째로 꼽았다. 기사를 작성한 앤드류 사이먼은 '커쇼의 커브가 68인치(172.7㎝) 떨어진다'고 평했다. 커쇼는 사이영상 3회, 올스타 선정 10회에 빛나는 MLB 슈퍼스타. 낙차 큰 커브가 주 무기인데 그의 커브만큼 움직임이 크다는 건 류현진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올 시즌 류현진의 커브 피안타율은 0.111, 피장타율도 0.111로 낮다. 패스트볼(직구)이 빠르지 않은데 순항하는 비결 중 하나가 '허를 찌르는' 커브. 타자들이 타석에서 진땀을 뺀다.
4년 전의 위력을 되찾았다. 류현진의 2019년 커브 피안타율은 0.193. 전체 구종의 12.2%인 커브가 효과적으로 꽂히면서 성적(14승 5패 평균자책점 2.32)이 크게 향상했다. 내셔널리그(NL) 사이영상 투표 2위에 오른 '비밀 무기'였다. 그해 류현진의 커브 수직 무브먼트 값은 66.1인치(167.9㎝)였다. 최근 몇 년 커브 주목도가 떨어졌는데 올해는 다르다. 컷 패스트볼(커터) 구사를 줄이면서 커브 비율을 18.6%까지 끌어올렸다.
MLB 전문가인 송재우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류현진의) 커브 구속은 이전보다 느려졌지만, 대신 각이 좋아졌다"며 "부상을 당하기 전에는 커브를 초구에 많이 사용했는데 지금은 자신감이 생겨서 그런지 0볼-2스트라이크에서도 떨어트린다. 젊은 타자들은 (투구 궤적을) 예측하기 어렵다. 커브를 노련하게 잘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류현진은 21일 열린 신시내티 레즈 원정 경기에 선발 등판, 5이닝 4피안타 7탈삼진 무실점 쾌투로 시즌 2승째를 따냈다. 투구 수 83개 중 커브의 비율은 19%(16개). 인상적인 장면은 5회 말 2사 후 엘리 데 라 크루스 타석이었다. 체인지업과 포심 패스트볼로 2스트라이크를 선점한 류현진은 3구째 시속 66.8마일(107.5㎞/h) 커브로 루킹 삼진을 뽑아냈다. 경기 뒤 그는 이날 커브에 대해 "100점"이라고 말했다.
송재우 위원은 "류현진의 구속이 잘 나오지 않지만, 구속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커브를 활용한 경기가 늘어나면 상대방도 경계할 것이다. 그전까지는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무기가 될 거 같다"며 "류현진은 예전에도 커터를 이렇게 활용한 적이 있다. 공 배합을 정말 잘하는 선수다. 자신만의 생존법을 찾았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