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에 은폐 전력까지 있는 선수를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발탁해 무능한 행정력을 드러냈던 대한축구협회(KFA)가 뒷수습마저 제대로 하지 못했다. 대회 조직위원회의 승인으로 대체선수까지 발탁하고도 이를 직접 알리지 못한 것이다. 자칫 1명이 부족한 엔트리로 대회에 나설 수도 있다는 우려를 털어낸 만큼 빠르게 소식을 알려야 했지만, 이 소식은 승인을 받은 지 사흘이 지나 그것도 대한체육회를 통해 전해졌다.
음주 이력으로 대표팀 자격을 박탈당한 이상민(성남FC) 대신 김태현(베갈타 센다이)이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명단에 새로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은 24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진행된 항저우 아시안게임 미디어데이 현장에서 알려졌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이상민의 대체 선수 발탁과 관련된 취재진 질문에 지난 21일자로 김태현으로 엔트리가 교체됐고, KFA에 이미 통보했다고 밝히면서다. 최종 엔트리가 변경된 지 사흘 만에 KFA가 아닌 대한체육회를 통해 공개된 것이다.
이상민의 대표팀 탈락 이후 엔트리 교체 가능 여부가 축구계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였다는 점을 돌아보면 황당한 상황이다. 불과 전날까지만 해도 엔트리 교체가 어려워 황선홍호가 22명이 아닌 21명으로 대회를 치러야 할 수도 있다는 우려들이 나왔는데, 정작 이미 엔트리는 지난 21일에 완료된 것이다. 이 사실을 먼저 알렸어야 할 KFA가 입을 닫고 있었으니, 축구계에선 괜한 우려의 목소리만 계속 이어진 셈이다.
자신들의 실수로 일어난 사태를 조금이나마 수습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도 그마저도 놓친 셈이 됐다. KFA가 이상민을 아시안게임 대표팀에서 제외하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황선홍호였다. 22명의 엔트리를 이미 제출한 상황에서 이상민이 빠졌고, 규정상 다른 선수를 발탁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KFA의 행정 탓에 자칫 다른 팀보다 1명이 부족한 엔트리로 대회에 나서야 하는 초유의 사태로 번질 수도 있었다.
가까스로 선수 교체가 승인돼 최악의 상황을 면한 만큼, 이 사실을 가장 먼저 팬들에게 알리는 것 역시 KFA의 몫이었다. 자신들의 실수로 대표팀을 위기로 몰고 갔던 만큼 KFA가 나서서 수습을 해야 했다. 그러나 대한체육회로부터 통보를 받고도 침묵을 이어가다 사흘이나 지나 타의로 알려진 셈이 됐다. 뒷수습마저 엉망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번 논란과 관련된 KFA의 행정을 돌아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그야말로 ‘무능’이라는 표현이 결코 과하지 않다. 시작은 지난달 14일이었다. 22명의 아시안게임 대표팀 최종 엔트리에 음주운전과 은폐 전력이 있는 이상민이 포함돼 논란이 일었다. 이상민은 충남 아산 소속이던 지난 2020년 음주 상태에서 운전하다 경찰 단속에 적발됐다. 이를 구단에 알리지 않고 3경기를 몰래 출전한 뒤 구단에 알려 은폐 논란까지 일었다. 프로축구연맹은 당시 상벌위를 통해 이상민에게 15경기 출장 정지·제재금 400만원의 징계를 내렸다.
문제는 이듬해부터 이어졌던 대표팀 발탁이었다. KFA 축구국가대표팀 운영규정 제17조 징계 및 결격사유에는 ‘음주운전 등과 관련한 행위로 500만원 이상 벌금형 선고를 받았을 땐 형이 확정된 후 3년, 500만원 미만 벌금형 선고 후엔 2년 간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고 돼 있다. 당시엔 어떠한 선고를 받았는지 공개되지 않았지만, KFA에 따르면 이상민은 500만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규정상 선고를 받은 날부터 3년, 올해 8월 4일까지는 아예 국가대표 자격이 없던 셈이다.
그런데 이상민은 2021년부터 꾸준히 황선홍호에 승선했고, 끝내 아시안게임 최종 명단까지 승선했다. 이 과정에서 KFA는 명확한 규정이 존재하는데도 이상민이 대표팀 자격이 없다는 걸 단 한 번도 걸러내지 못했다. 아시안게임 최종 명단이 발표되고 언론 보도를 통해 이슈가 되자 그제야 뒤늦게 사태를 파악했다. 무능한 행정이었다.
더 큰 논란을 일으킨 건 후속 대처였다. KFA는 지난달 18일 입장문을 통해 이상민의 아시안게임 대표팀 사실 제외 소식을 밝혔다. 대회 최종 명단을 발표한 뒤 1명을 제외하는 촌극이었다. 그러면서 “(이상민은) 2020년부터 지금까지 K리그2(2부) 소속으로 뛰며 음주운전으로 프로축구연맹 징계를 받은 사실이 있고 이후 연령별 대표팀에 선발됐다. K리그1이나 A대표팀 선수 등과 비교하면 리그 소식도 선수 관련 정보도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기에 관련 규정을 제대로 검토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요컨대 이상민이 2부에서만 뛰었던 선수라 정보를 잘 몰랐다는 게 KFA의 설명이었다. 혀를 찰 수밖에 없는 황당한 해명이었다.
아시안게임은 부상이 아닌 한 엔트리 교체가 쉽지 않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컸다. 가뜩이나 빡빡한 일정 속, KFA의 무능한 행정 탓에 자칫 1명이 부족한 선수단으로 대회에 나설 수 있다는 걱정이 계속 이어졌다. 그나마 한 달 여가 지나 천만다행으로 선수 교체가 승인된 사실이 대한체육회를 통해 알려지면서 최악의 상황까지는 면했다. 이상민이 K리그2 선수라 잘 몰랐다던 KFA가 대체 선수로 낙점한 김태현의 소속팀은 일본 2부리그에 속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