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좀비’ 정찬성(36)이 맥스 할로웨이(31·미국)에게 패한 후 은퇴를 선언했다. “그만하겠다”는 인터뷰 후 글러브를 벗고 옥타곤에 얼굴을 묻었다.
UFC 페더급 랭킹 8위인 정찬성은 26일 싱가포르 인도어 스타디움에서 열린 ‘UFC 파이트 나이트: 할로웨이 vs 코리안 좀비’ 대회 페더급 매치에서 전 챔피언이자 랭킹 1위 할로웨이에게 3라운드 23초 만에 KO 패했다. 할로웨이는 종합격투기(MMA) 전적 25승 7패, 정찬성은 17승 8패를 기록했다. 할로웨이는 경기 직후 “정찬성은 전설”이라며 존중했다.
2011년 이후 단 한 차례도 연패가 없던 정찬성은 이번 패배로 12년 만에 처음으로 연패 수렁에 빠졌다. 아울러 ‘왕좌’와도 거리가 멀어졌다. 지난해 4월 페더급 챔피언 알렉산더 볼카노프스키(호주)와 타이틀전에서 완패한 정찬성은 반등 기회였던 할로웨이전에서도 지면서 사실상 대권 도전이 어렵게 됐다. 챔피언이 목표였던 정찬성은 은퇴를 선언했다.
싱가포르에서 대회가 열린 만큼, 입장 때부터 많은 팬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정찬성은 다소 진지한 표정으로 입장했다. 가던 도중 팬들의 호응을 끌어내기도 했다. 그는 UFC 하와이에 하트 이모지가 새겨진 검정 티셔츠를 입고 입장했는데, 최근 산불 피해를 본 하와이를 위로하기 위함이었다. 옥타곤에 선 정찬성은 등장 곡을 즐기다가 여느 때와 같이 크게 소리를 지르고 입장했다.
사전 기자회견에서 하와이의 인명 피해 소식을 들은 할로웨이는 눈물을 흘렸다. 굳은 표정으로 옥타곤에 들어섰다.
터치 글러브로 시작된 1라운드. 정찬성이 강한 로우킥으로 시작을 알렸지만, 할로웨이가 피했다. 정찬성은 케이지 중앙을 점유하고 카프킥으로 할로웨이의 다리를 두들겼다. 할로웨이는 신중하게 경기에 임했다. 정찬성이 초반 러시로 분위기를 잡았다. 할로웨이는 안면과 바디 쪽 펀치를 섞었다.
1라운드 중반부터 할로웨이가 날카로운 잽을 살렸다. 정찬성도 순간적으로 거리를 깨고 들어가 잽을 넣는 등 포인트를 쌓았다. 1라운드는 팽팽한 흐름 속 마무리됐다. 경기장에 모인 팬들은 “대한민국”을 외치며 정찬성에게 힘을 불어넣었다.
2라운드 초반 정찬성이 할로웨이의 스트레이트를 맞고 고꾸라졌다. 할로웨이는 쓰러진 정찬성에게 재빨리 아나콘다 초크를 걸었다. 정찬성은 버텼고, 할로웨이는 계속해서 그립을 잡았다. 끝내 탭을 받아내지 못했다. 정찬성은 테이크다운을 시도하며 일어섰고, 스탠딩 상황으로 이어졌다.
어느 정도 그로기에서 회복된 정찬성이 할로웨이와 펀치 공방을 주고받았다. 할로웨이는 활발한 스텝을 살려 안면과 바디에 주먹을 꽂았다. 2라운드 위기를 넘긴 정찬성이다.
정찬성이 3라운드 시작과 동시에 펀치 러시를 했다. ‘좀비 모드’가 발동됐지만, 얼마 가지 못했다. 난타전 속 할로웨이의 펀치가 꽂히며 정찬성이 옥타곤에 쓰러졌고, 경기는 그대로 끝났다. 경기 후 할로웨이는 정찬성을 안아주며 위로했다.
경기 후 정찬성은 “그만하겠다. 울 줄 알았는데, 눈물이 안 난다. 그만하는 이유는 나는 챔피언이 목표인 사람이다. 할로웨이를 진심으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후회 없이 준비했다. 나는 3등, 4등, 5등 하려고 격투기를 하는 게 아니다. 챔피언이 되려고 하는데, 톱랭커를 이기지 못하는 건 그만할 때가 된 것 같다”며 은퇴를 선언했다.
정찬성은 인터뷰 후 눈물을 흘리며 에디 차 코치와 진한 포옹을 나눴다. 그는 아쉬움을 삼킨 채 옥타곤을 떠났다. 정찬성은 아내 박선영 씨와 옥타곤을 빠져나가며 팬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애초 정찬성은 할로웨이와 대결을 원했다. 랭킹 상승 등 다른 요소보다 그저 존경하는 선수와 싸워보고 싶다는 이유였다. 과거 정찬성은 할로웨이와 대결을 성사하기 위해 “그는 펀치 파워가 없다”고 도발한 바 있다. 좀체 둘의 만남이 이뤄지지 않았는데, 지난 4월 할로웨이가 아놀드 앨런(미국)을 꺾은 후 정찬성을 언급하면서 대결이 추진됐다.
‘챔피언’을 꿈꾼 정찬성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할로웨이가 페더급 랭커 대부분을 정리했기 때문이었다. 할로웨이는 ‘타격 강의를 한다’는 우스갯소리를 끌어낼 정도로 압도적인 타격 실력을 자랑하며 상대 선수들을 줄줄이 제압했다.
대다수 매체, 팬은 할로웨이의 승리를 점쳤다. 당연한 결과였다. 앞서 정찬성이 챔피언인 볼카노프스키에게 무기력하게 패한 것도 한몫했다. 세인의 기대가 할로웨이에게 쏠린 만큼, 정찬성이 언더독의 반란을 일으킨다면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정찬성 역시 사전 기자회견에서 “내가 이기게 되면 세계 1위가 한국에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건 한국 선수들에게 좋은 동기부여가 될 거 같다”며 할로웨이전 필승을 다짐했다.
다시 한번 대권에 도전하는 동시에 한국 MMA 파이터들에게 동기부여가 될 수 있었지만, 할로웨이에게 패하면서 끝을 이야기했다.
▲ [라이트헤비급] 앤서니 스미스 vs 라이언 스팬 스팬이 케이지 중앙을 점유한 채 압박했다. 스미스는 카운터를 노렸다. 스미스가 로우킥과 펀치 연타로 분위기를 잡았다. 스미스는 테이크다운에 성공했지만, 스팬을 오래 눌러놓지는 못했다.
스미스가 2라운드 초반 스팬 타격에 쓰러졌다. 스팬은 일어나지 못하는 스미스 위로 올라가 엘보우를 퍼부었다. 스미스의 안면에는 피가 흘렀다. 이어진 스탠딩 상황, 스팬스는 잽 위주로 경기를 운영했다. 스팬스가 2라운드에 흐름을 뒤집었다.
수세에 몰린 스미스는 마지막 라운드를 침착하게 풀어갔다. 서두르지 않고 앞 손으로 스팬의 안면을 노렸다. 다소 지친 스팬의 펀치는 스미스의 얼굴에 좀체 닿지 않았다. 결국 경기는 판정으로 향했다. 지난 맞대결에서 웃은 스미스는 스팬을 상대로 2전 전승을 거뒀다.
▲ [페더급] 기가 치카제 vs 알렉스 카세레스 치카제가 1라운드 초반부터 카프킥으로 카세레스의 다리를 두들겼다. 카세레스는 원투를 적중하며 갚았다. 치열한 킥 공방이 오갔다. 치카제는 로우킥, 바디킥을 섞어 혼란을 줬다. 이따금 카세레스의 펀치도 치카제의 안면에 꽂혔다.
카세레스는 활발한 스텝을 살려 2라운드에 임했다. 2라운드는 펀치 공방 위주였다. 둘은 서로에게 원투를 적중했다. 카세레스는 씩 웃어 보이는 여유를 뽐내기도 했다. 치카제의 주먹이 더욱 날카로웠다. 좋은 타이밍의 펀치로 카세레스의 안면을 두들겼다.
둘은 마지막 라운드에도 쉴 새 없이 공격을 쏟아냈다. 치카제는 묵직한 한 방, 카세레스는 부지런한 공격으로 인상을 남겼다. 타격 수에서는 팽팽했지만, 심판 셋은 모두 치카제의 손을 들어줬다.
▲ [밴텀급] 나카무라 린야 vs 페르니 가르시아 린야가 1라운드 초반부터 가르시아를 압박했다. 가르시아는 옥타곤을 빙글 돌면서 경계했다. 탐색전이 이어지던 중 린야가 순간적으로 테이크다운을 시도했다. 가르시아를 끈덕지게 잡아놓은 린야가 결국 그라운드로 끌고 가는 데 성공했다. 린야는 톱 포지션에서 가르시아를 눌러놓고 간헐적인 파운딩으로 포인트를 쌓았다.
린야는 빠른 동작으로 초크 그립을 잡았다. 가르시아가 고통을 표하기도 했으나 초크로 탭을 얻어내진 못했다. 린야는 1라운드 종료 직전 엘보우 세례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2라운드 초반 화끈한 공방전이 열렸다. 가르시아는 주먹으로, 린야는 화려한 킥으로 팬들의 탄성을 끌어냈다. 2라운드 중반 린야의 기습 테이크다운이 들어갔다. 이때 가르시아가 초크를 시도했지만, 역시 린야의 탭을 받아내지 못했다.
린야가 마지막 라운드 중반에 또 한 번 테이크다운에 성공했다. 옥타곤 바닥에 깔린 가르시아는 다소 힘이 빠진 모습이었다. 린야는 계속해서 가르시아를 눌러놓고 암바를 시도하는 등 무자비하게 괴롭혔다. 가르시아가 가까스로 일어났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린야가 만장일치 판정승을 따냈다.
▲ [여성 플라이급] 에린 블랜치필드 vs 타일라 산토스 랭킹 3위 블랜치필드와 4위 산토스가 화끈한 타격전으로 팬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1라운드부터 치열한 공방이 오갔다. 기록에서 모두 블랜치필드가 근소하게 앞섰다. 블랜치필드가 타격 210회 시도 중 119회 적중했고, 산토스는 202회 중 96회를 꽂았다. 1~3라운드 모두 타격 수에서 앞선 블랜치필드가 만장일치 판정승을 거뒀다.
▲ [헤비급] 주니어 타파 vs 파커 포터 타파와 포터의 헤비급 맞대결은 순식간에 끝났다. 옥타곤 구석에 몰린 포터가 잽을 뻗는 순간 타파의 뒷손이 포터의 안면에 적중, 그대로 고꾸라졌다. 타파는 MMA 통산 전적 5승 1패, 포터는 14승 9패가 됐다.
▲ [페더급] 최승우 vs 야르노 에렌스 ‘스팅’ 최승우가 3연패 수렁에서 탈출했다. 이번 경기를 앞두고 ‘선배’ 정찬성과 합동훈련을 진행한 최승우는 ‘카프킥’ 전략으로 에렌스를 제압했다. 1라운드부터 끈덕지게 에렌스의 다리를 노렸다. 에렌스 역시 킥과 주먹을 섞어 최승우를 위협했다.
최승우가 기세를 쥔 2라운드, 에렌스의 어퍼컷이 적중했다. 최승우는 한 차례 위기를 넘긴 후 제 페이스를 되찾았다. 거듭 다리를 두들기던 최승우의 로우킥 전략이 결실을 봤다. 3라운드 도중 에렌스가 다리 통증으로 옥타곤에 쓰러졌다. 최승우는 남은 시간 에렌스를 눌러놓으며 만장일치 판정승을 거뒀다.
최승우는 지난 2021년 2월 줄리안 에로사(미국)를 상대로 승리한 후 2년 2개월 만에 승전고를 울렸다. 최근 UFC와 4경기 재계약을 맺은 터라 이번 경기 승리는 의미가 상당했다.
앞서 최승우는 본지를 통해 “세계적인 선수와 같은 공간에서 훈련한다는 것만으로 너무 큰 힘이 됐다”며 “(정찬성이)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도 계속 신경 써주셨다”며 감사를 전했다.
정찬성과 동반출전한 그의 목표는 승리였다. 최승우는 “서로 굳이 말 안 해도 당연히 (동반) 승리를 바라고 간다”며 “(승리 공식을) 당연히 알고 있다. 이번에도 느낌이 좋아서 찬성이 형이 이길 것 같다. 나만 잘해서 이기면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정찬성이 패하면서 끝내 바람은 이루지 못했다.
▲ UFC 파이트 나이트: 할로웨이 vs 코리안 좀비 결과
[페더급] 맥스 할로웨이 vs 정찬성 -맥스 할로웨이 3라운드 KO 승 [라이트헤비급] 앤서니 스미스 vs 라이언 스팬 -앤서니 스미스 2-1 판정승 [페더급] 기가 치카제 vs 알렉스 카세레스 -기가 치카제 만장일치 판정승 [밴텀급] 나카무라 린야 vs 페르니 가르시아 -나카무라 린야 만장일치 판정승 [여성 플라이급] 에린 블랜치필드 vs 타일라 산토스 -에린 블랜치필드 만장일치 판정승 [헤비급] 주니어 타파 vs 파커 포터 -주니어 타파 1라운드 1분 24초 KO 승
언더카드 결과
[헤비급] 왈도 코르테스-아코스타 vs 루카스 브레스키 -왈도 코르테스-아코스타 1라운드 3분 1초 KO 승 [밴텀급] 카자마 토시오미 vs 개릿 암필드 -개릿 암필드 1라운드 4분 16초 KO 승 [미들급] 치디 은조쿠아니 vs 미하우 올렉셰이추크 -올렉셰이추크 1라운드 4분 16초 TKO 승 [웰터급] 송커난 vs 롤란도 베도야 -송커난 만장일치 판정승 [웰터급] 빌리 고프 vs 키노시타 유사쿠 -빌리 고프 1라운드 3분 49초 TKO 승 [여성 플라이급] 리앙나 vs J.J. 올드리치 -올드리치 2라운드 4분 49초 TKO 승 [페더급] 최승우 vs 야르노 에렌스 -최승우 만장일치 판정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