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규 감독대행은 '새로운 FC서울'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다. 선수 시절 자신이 그랬듯, 선수들도 투쟁심 넘치는 플레이를 보여줘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는 “코치 때 불만이었던 게 선수들이 너무 얌전하게 축구를 한다는 점이었다. 나는 선수 생활할 때 누구한테도 안 진다는 자신감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라운드 위를 누비는 필드 플레이어들도 강한 자신감을 안고 투쟁심을 보여주길 바랐다.
지난 22일 감독대행으로 부임한 뒤 선수들에게 가장 강조했던 것 역시 투쟁심이었다. 김진규 대행은 선수들과 첫 미팅에서 “오늘부터 모든 선수들과 소통할 것이다. 힘든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지 이야기해달라”면서 “그동안 투쟁심이 너무 떨어져 있었다. 운동장에 나가서 싸울 준비가 안 되면 안 된다. 이번 주 울산전부터 그런 모습, 달라진 모습을 보여달라”고 강조했다.
김진규 감독대행 체제로 겨우 나흘을 준비하고 치른 27일 울산 현대전. ‘팀을 바꾸는데 시간이 부족했을 것 같다’는 질문에 “나흘간 충분히 많은 걸 바꿀 수 있었다”던 김진규 대행은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리고 실제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고스란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 경기 초반부터 거친 압박과 몸을 사리지 않는 플레이들이 눈에 띄었다. 경합 상황에서도 대부분 상대와 거칠게 맞섰다. 김진규 대행이 ‘얌전하다’고 봤던 이전 모습들과는 달랐다.
선수들은 '독기'로 가득 찼다. 7경기 만에 선발 기회를 받은 일류첸코는 전반 9분 만에 보란 듯이 골을 넣었다. 넘어지고도 끈질기게 공을 사수해 패스를 연결하거나, 전방에서 슬라이딩 태클을 선보이기도 했다. 수비지역에서 강한 압박으로 공을 빼앗은 뒤에는 지체 없이 빠른 공격으로 전환해 상대 빈틈을 파고들었다. 전반 종료 직후 서울 서포터스 석에서 울려 퍼진 응원 구호가 그 어느 때보다 컸던 건 이전 서울의 모습과 크게 달랐다는 의미였다.
리드를 잡은 뒤 수비라인이 내려오면서 결국 연속 실점을 허용하긴 했지만, 후반 추가시간 윌리안의 ‘극장골’이 터지면서 귀중한 승점 1점도 따냈다. 최근 서울은 후반 막판 실점 탓에 잇따라 결과를 놓쳤는데, 이날은 정반대로 후반 막판 뒷심을 발휘했다. 감독 사퇴 등 어수선한 분위기 속 이제 겨우 나흘을 준비한 팀이라는 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희망을 발견한 경기였다. 직전 대구FC와의 홈경기와 비교해 경기 종료 후 관중석 분위기가 극과 극으로 갈렸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무엇보다 그라운드 안에서 직접 서울 선수들과 직접 맞붙어본 울산도 '달라진 서울'을 체감했다. 멀티골을 넣은 주민규(울산)는 “서울이 강팀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김진규 감독대행으로 바뀌면서 선수들도 잘해봐야겠다는 동기부여가 생긴 것 같다”며 “상대가 초반부터 전투적으로 나오면서 우리 선수들도 당황하지 않았나 싶다. 그 전과 달라진 부분인 것 같다”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눈에 띄는 기록 중 하나는 파울 수였다. 서울은 15개, 울산은 4개였다. 이번 시즌 서울과 울산은 리그에서 파울이 가장 적은 1, 2위 팀이었는데, 김진규 대행 체제 첫 경기에서만큼은 달랐다. 이날 경기 전까지 서울의 경기당 평균 파울 수는 9개가 채 안 됐지만, 이를 훌쩍 넘겨 경기 내내 상대를 괴롭혔다. 투쟁심을 강조했던 김진규 감독대행의 주문이 그라운드 위에서 적절하게 나타났음을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였다.
다만 김진규 대행은 울산전을 마친 뒤에도 미소를 짓지는 않았다. 사뭇 달라진 경기력으로 선두 울산의 발목을 잡고도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특히 ‘10명의 김진규’를 기대했던 그는 “오늘은 김진규가 3~4명 정도밖에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선수들이 이날 그라운드 위에서 보여준 ‘투쟁심’이 아직은 성에 안 찬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선수단에 재차 경고 메시지를 전했다. 김진규 감독대행은 “투쟁심이 없고, 싸우지 않는 선수는 경기장에 쓰지 않겠다고 선수들에게 이미 얘기했다. 그런 선수들은 앞으로 경기에 출전하지 못할 것”이라며 “반대로 다음 경기엔 투쟁심을 보여주는 선수들을 투입할 준비를 하고 있다. 다음 슈퍼매치 땐 ‘김진규’가 3명 정도 더 나타나 투쟁심을 가지고 경기를 치를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강조했다. 경기장에서 강하게 상대를 지배하고 또 이기는 축구. 김진규 대행이 강조한 ‘서울다움’을 되찾기 위한 전제조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