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이다예(30)씨는 매주 두 번씩 업무를 마치고 꼬박꼬박 주짓수 도장을 찾는다. 벌써 주짓수를 시작한지 7년이 지났고, 어느새 퍼플 벨트(화이트, 블루의 다음 단계가 퍼플)를 메고 있다.
지난 8월 무더위가 한창인 어느 날 만난 이다예씨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주짓수 도장에서 땀을 흘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앞구르기를 하며 몸을 풀고 기본 동작 훈련을 먼저 하고 스파링을 마친 후였다. 그는 “그냥 보기엔 ‘별거 없는 거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죠? 그런데 실제로 운동을 하면 30분만 해도 땀 범벅이 돼요. 운동량이 정말 많아요”라며 웃었다.
이다예씨가 주짓수를 시작한 계기는 평범했다. 매일 지나다니던 길목 건물에 ‘주짓수’ 간판이 눈에 띄었고, ‘스트레스 풀 겸 한 번 해볼까’라는 생각을 하자마자 일단 들어가 본 게 시작이었다.
그는 “처음엔 주짓수가 뭔지도 몰랐다. 이렇게 오래 계속할 줄은 몰랐다”며 “사실 운동을 시작할 때만 해도 직장 일이 너무 힘들어서 그만둘까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그런데 주짓수를 시작하고 얻은 활력과 에너지 덕분에 일에도 더 몰두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주짓수는 체구가 작고 힘이 모자라도 더 큰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실전 무술이다. 이다예씨도 체구가 작은 편인데, 그 역시 자신보다 더 작은 여성과 스파링에서 수없이 패했다고 한다. “나보다 키가 10㎝는 더 작아보이는 여자분이 초크를 걸었는데, 내가 탭을 칠 수밖에 없었어요. 오기가 생기더라구요. 그렇게 계속 도전하다 보니 1년 후엔 나도 탭을 받아냈어요.”
이다예씨가 주짓수에 재미를 붙이고 시작하게 된 것도 ‘저 사람 한 번 이겨봐야지’라는 작은 목표를 먼저 세우고 달성해 가면서였다.
주짓수는 승단을 사범이 결정한다. 보통 동호인의 경우 흰띠에서 파란띠가 되기까지 2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이다예씨는 “여자들의 경우에는 어릴 때 친구와 몸을 부딪혀 가면서 놀아본 경험도 없고, 상대를 힘과 기술로 제압한다는 점에 대해서 처음에 굉장히 어색해한다. 나도 그랬다”면서 “대부분의 여자들이 주짓수를 시작할 때 ‘상대방이 아플 것 같아서’ 기술을 제대로 연습해보길 무서워한다”고 설명했다.
이다예씨는 “그런데 막상 내가 상대 기술에 당해보면 그렇게 고통스럽지는 않다는 걸 몸으로 경험한다. ‘어? 괜찮구나?’라고 깨달은 후에 본격적으로 기술 연습도 하고, 스파링도 거리낌 없이 하게 된다. 주짓수는 체급에 상관 없이 남자들과 스파링을 하는 경우도 많은데, 처음엔 어색하고 이상하다고 생각해도 하다 보면 다 적응이 된다”며 웃었다.
훈련 과정에는 당연히 고통도 따른다. 초반에는 몸 쓰는 법을 제대로 몰라서 막무가내로 덤비다 보니 다리에 온통 멍이 들기도 했고, 파스 붙이는 건 생활이었다. 하지만 적응해 가면서 제대로 기술을 걸면 몸이 아프지 않다는 것도 체득해갔다. 다이어트를 목표로 단기적으로 하다가 그만두는 운동이 아니라, 생활의 일부가 되어 목표를 달성해 가는 과정이 그 어떤 것보다 즐겁고 진지하다고 했다.
이다예씨는 주짓수의 ‘멘털 치료 효과’가 대단하다며 연신 ‘강추’를 외쳤다. 그는 “도장에서 실컷 땀 흘리고 나면 업무로 인해 생긴 스트레스와 화를 모두 도장에 두고 갈 수 있다. 함께 수련하는 동료들은 경쟁하는 적이 아니다. 내가 상대 기술에 제대로 걸리고 나면 ‘그건 어떻게 한 거예요?’라고 묻고 배운다. 동료애가 생긴다. 운동하며 생긴 즐거움이 나를 치유해준다”고 했다. 그는 이어 “어릴 땐 서른 살의 내가 ‘격투기하는 여자’가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힘든 과정을 이겨내고 승급을 해내면서 일을 하다가 힘든 순간이 오면 ‘어, 주짓수를 하는 내가 좀 멋진데’라는 자부심으로 이겨낼 수 있게 되더라”고 했다.
이다예씨가 제일 좋아하고 잘하는 주짓수 기술은 트라이앵글(다리를 사용해서 거는 초크 기술)이다. 그는 “처음에 흰띠였을 때는 퍼플 벨트 언니들이 그렇게 멋져 보였다. 그런데 내가 퍼플 벨트를 따고 나니 이제 블랙 벨트까지는 가 보자는 새 목표가 생겼다”며 눈을 빛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