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이유를 묻자 이정효 광주FC 감독이 웃으며 답했다. 17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과의 K리그1 2023 30라운드 원정경기를 앞두고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다. 평소에도 치밀한 분석 등으로 유명한 이 감독에게 이번 서울전은 더욱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앞서 두 차례 맞대결에서 모두 패했던 상대인 데다, 최근 안익수 감독이 물러나고 김진규 감독대행 체제가 시작되면서 서울에 새로운 변수까지 더해진 탓이었다.
이정효 감독은 “안익수 전 감독 시절 서울은 틀 안에서 선수들이 움직였다면, 김진규 감독대행은 선수들에게 자유를 많이 부여하는 모습이었다. 그런 변수까지 생각하느라 잠을 못 잤다”면서 “서울전에 대비해 수비 연습을 엄청나게 많이 했다. 실점을 최대한 줄이되,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부분인 공격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많이 준비했다”는 각오를 밝혔다.
이정효 감독은 킥오프 4분 만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절묘한 공격 패턴으로 서울 수비를 완전히 무너뜨린 덕분이다. 왼쪽 측면 풀백 두현석의 크로스를 하승운이 절묘한 뒤꿈치 패스를 통해 문전으로 연결했다. 허율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왼발 슈팅으로 연결해 서울 골망을 흔들었다. 이번 시즌 광주는 두 차례 맞대결 모두 선제 실점을 허용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번 경기만큼은 상대의 허를 찌른 공격으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이른 시간 리드를 잡은 광주는 조직적인 움직임을 앞세워 서울 공격을 번번이 막아냈다. 안정적으로 라인을 내려서다가도, 순간적인 압박을 앞세워 서울의 공격을 저지했다. 이른 시간 선제 실점을 허용한 서울이 방향을 가리지 않고 파상 공세를 펼쳤지만, 좀처럼 결실을 보지 못한 이유였다.
골문을 지킨 김경민의 선방쇼가 더해졌다. 수비 라인이 빈틈을 허용해 슈팅이 골문으로 향하더라도 김경민의 선방이 서울의 추격 의지에 번번이 찬물을 끼얹었다. 전반 추가시간엔 임상협과의 일대일 기회를 선방으로 막아냈고, 후반에도 나상호·기성용 등의 슈팅 역시 몸을 날려 막아냈다.
수비에만 집중한 것도 아니었다. 기회만 되면 곧장 빠른 역습이나 세트피스를 통해 추가골 기회를 노렸다. 서울이 한 골 뒤진 상황 속에서도 공세만을 펼칠 수 없었던 이유도 호시탐탐 서울 뒷공간을 노린 광주의 역습 의지가 자리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경기는 리드를 끝까지 지켜낸 광주의 1-0 승리로 막을 내렸다. 승리가 확정되자 이정효 감독은 두 손을 번쩍 들며 포효했다. 이번 시즌 서울전 2연패 뒤 첫 승이자, 2016년 이후 7년 만에 거두는 서울전 승리였다. 이날 승리로 광주는 승점 48(13승 9무 8패)을 기록, 4위 서울(승점 43)과 격차를 5점으로 벌리며 3위 자리를 굳게 지켰다.
구단 새 역사도 썼다. 2016년 기록했던 승점 47을 넘어 구단 1부리그 역대 최다 승점을 경신했다. 광주 창단 이래 가장 강력한 팀이 올 시즌 이정효 감독의 팀이라는 뜻이다. 이 감독은 “다른 경기는 시합 전날 푹 자는데, 오늘은 지게 되면 잠이 안 올 것 같아서 날을 샜다. 그래서 더 좋았던 것 같다. 경기력 측면에서 서울이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결과로 말했다. 선수들에게 잘했다고 칭찬해 주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