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 국가대표선수촌=정시종 기자 capa@edaily.co.kr /2023.08.21.
항저우 아시안게임(AG)에 나서는 이예찬(28·성남시청)의 마음가짐은 어느 때보다 단단하다. 목표를 이루겠다는 일념으로 지금껏 구슬땀을 흘린 그는 ‘정상’을 바라보고 있다.
이예찬은 남자 복싱 57㎏급 한국 대표로 AG에 나선다. 두 번째 AG에 나서는 이예찬은 최근 진천선수촌에서 본지와 만나 “내 목표는 결승까지 가는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오래도록 태극마크를 달고 활약한 이예찬은 중학교 2학년 때 글러브를 꼈다. 대회에 나가서 메달을 따면 장학금을 준다는 소식에 본격적으로 복싱에 입문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탓이다.
시작부터 화려하진 않았다. ‘노력파’를 자처한 이예찬은 “(복싱에) 재능 있다기보다 정말 열심히 했다. 나는 한 번 하면 끝까지 하는 스타일이다. 끈기가 있다”며 “처음에는 예선 탈락만 했다. 내가 자존심이 세서 이러면 안 되겠다 싶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제대로 마음을 먹었고, 그때부터 메달을 따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는 자존심과 끈기가 ‘국가대표 이예찬’을 만들었다고 자부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복싱국가대표 이예찬.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정시종 기자 capa@edaily.co.kr /2023.08.21. 탄탄대로를 걸을 것만 같던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이예찬은 “스무 살 때 인천 AG 최종 선발전에 나갔는데, 결핵성 늑막염이 생겨서 포기했다. 그해 가을에 어머니도 돌아가셔서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정말 힘들었다”고 돌아봤다. 오히려 이때 아픔이 또 한 번 마음을 단단히 먹는 계기가 됐다.
첫 메이저 대회 출전 기회를 놓친 이예찬이지만, 금세 재기했다. 기어이 2018 자카르타·팔렘방 AG 출전권을 손에 넣었다. 물론 수준이 높아진 아시아 복싱의 벽을 체감했다. 당시 56㎏급으로 대회에 나선 이예찬은 16강에서 쓴잔을 들었다. 그는 “자카르타·팔렘방 대회가 첫 메이저 대회여서 아무것도 몰랐고, 긴장도 너무 많이 했다. 실력 발휘를 잘 못 했다”고 회고했다.
아웃복싱과 인파이터 스타일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이예찬은 경량급답게 빼어난 스킬이 눈에 띈다. 최근에는 파워까지 좋아졌다는 평가다. 2020년부터 군 복무를 한 게 도움이 됐다. 이예찬은 “국군체육부대는 일반 부대와 달리 종일 운동만 한다. 오히려 안에서 규칙적인 생활을 해서 더 좋아졌다. 기본기하고 코어 운동에 더 신경 썼고, 체력을 끌어올리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복싱국가대표 이예찬.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정시종 기자 capa@edaily.co.kr /2023.08.21. 그런 그에게도 약점은 있다. 스스로 ‘멘털이 약하다’고 할 정도다. 다만 그에게는 최고의 ‘멘털 코치’가 있다. 바로 지난해 결혼한 아내다. 이예찬은 “멘털이 흔들릴 때마다 아내가 항상 잡아줬다. ‘넌 할 수 있다’는 말을 늘 하며 자존감을 높여준다”며 “아내가 복싱협회 직원이다. 무엇보다 복싱을 잘 알아서 좋다”고 감사를 표했다.
든든한 파트너를 등에 업은 이예찬은 “저번 대회보다 자신 있다. 이번 대회는 죽기 살기로 해서 목표인 결승까지 꼭 갈 것”이라며 “매번 예선에서 떨어져서 자존심이 너무 상했다. 이번에는 외국 선수들을 이겨보려고 한다”며 칼을 갈았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복싱국가대표 이예찬.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정시종 기자 capa@edaily.co.kr /2023.08.21. 복싱은 지금껏 국제 무대에서 메달을 휩쓸며 ‘효자 종목’으로 통했다. 하지만 2014년 인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에서 금메달은 각각 하나뿐이었다. 남자 복싱은 지난 대회에서 8강에 간 선수도 없었다.
구겨진 자존심을 세운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나선다. 이예찬은 “매 순간 경기에 집중할 것이다. 내가 잘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 남자 복싱이 잘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라며 “매번 피를 흘려가면서 운동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복싱의 인기가 떨어졌지만, 응원해 주시면 꼭 멋진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힘줘 말했다.
여느 운동선수가 그렇듯, 이예찬은 몸 상태가 성치 않다. 목과 허리디스크 진단을 받았다. 아시안게임을 앞둔 현재도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지만, “참고 견디며 운동한다”며 ‘금빛 펀치’를 향한 굳은 의지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