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꿈은 연극배우로서 무대에서 죽는 것이었어요. 제게 일상은 없었죠. 드라마를 하면서 일상이 뭔지를 알았어요.”
넷플릭스 시리즈 ‘마스크걸’의 안은숙 역으로 전 세계 시청자들과 만난 배우 이수미를 최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연극배우로 살다가 드라마라는 연기 인생 최대의 전환기를 만난 이수미. 사실 여기엔 큰 아픔이 있었다.
◇손, 다리를 쓸 수 없는 큰 부상, 무대 못 서 드라마 연기 시작
“공연을 준비하다 크게 다쳤던 적이 있어요. 손은 휴지 한 장을 못 들 정도였고, 다리 연골은 다 찢어졌죠. 그때 제가 산동네에서 살고 있었거든요. 그 몸으로 언덕길을 내려가서 버스를 갈아타고 병원을 6개월을 다녔어요.”
실비 보험이 없어 수술을 받지 못 하고 보전적 치료에 의지했다. 아이러니하게 그 즈음 이수미는 드라마 ‘사랑은 뷰티풀 인생은 원더풀’과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만났다. 간신히 작은 보폭으로 걸을 수 있게 됐을 때였다. 손목보호대를 차고 촬영장에 가서 연기할 때는 빼놓는 일을 반복했다.
무대 위에서 움직임이 많은 공연 연기와 달리 드라마 속 연기는 큰 액션이 가미된 게 아니라면 다소 불편한 몸으로도 소화가 가능했다. 이수미는 “연기를 다시 못하면 어떡하나 절망하고 있을 시기에 방송국에서 연락을 받았던 것”이라며 “그 당시 나는 절벽 위에서 눈을 가리고 있는 심정이었다”고 털어놨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왕이모로 이수미는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커리어는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1, 2를 지나 ‘한 사람만’, 그리고 넷플릭스 ‘마스크걸’로 이어졌다.
이수미는 드라마 연기를 하며 ‘일상생활’이라는 걸 다시 배웠다. 매일같이 연습실에 가서 연습하고, 다시 아침이 되면 연습실에 나가길 반복했던 삶이었다. 집은 연습실이나 무대를 가기 위해 거쳐 가는 장소로 기능했다. 대충 먹고 대충 자고 오로지 연습과 극장에서의 일에 집중했던 삶.
이수미는 “드라마 속에선 인물들이 응접실에서 이야기를 하고 식당에 앉아 밥을 먹더라”고 토로했다. 일상을 살지 않고 극장에서의 일에만 올인했던 이수미는 갑자기 세상에 처음 떨어진 느낌이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지금 내가 얻은 기회를 갖고자 애쓴다. 나는 드라마 연기도, 여기서 경험하는 일상도 처음이라 두려운데 말할 곳이 많지 않았다”며 눈물을 보였다.
◇“‘마스크걸’ 우리 삶을 담고 있는 작품”
드라마 연기를 시작한 게 배우 이수미의 연기 인생 첫 전환점이라면, ‘마스크걸’은 디딤돌이 됐다. 공개 후 3일 만에 280만 뷰를 돌파, 글로벌 시청 시간 1위를 기록한 히트작에 출연할 수 있는 건 배우에게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
이수미는 “우리 작품이 강렬한 내용을 담고 있는 건 맞지만, 사실 나약한 인간의 면면을 잘 담고 있는 작품이 아닌가 생각한다”면서 “그걸 보고 그대로 모방을 하라는 게 아니라, 작품에 자신을 비춰보고 어떻게 하면 이 각박한 세상에서 조금 더 따뜻하고 인간미 있는 면모를 찾아갈까를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이수미는 그래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로 극 말미 어린 모미가 말하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꿈을 꼽았다. 사람이 언제나 옳고 맞는 길로 갈 수만은 없는 노릇. 주인공들이 저지른 악행에 대해서는 벌을 받아야 하지만, 서툴고 방향성을 잘못 잡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면면이라 느껴지기 때문이다.
마치 교도소의 사자 같은 안은숙으로 등장, ‘마스크걸’ 중후반부에 묵직한 긴장감을 선사했던 이수미. 그는 “여전히 드라마와 같은 매체 연기에 적응하고 있는 과정”이라면서 “당분간은 매체 연기에 집중하면서, 배우로서의 치열함과 직업을 즐기는 마음가짐 모두를 기르고 싶다”고 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