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중국 항저우 올림픽 스포츠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회식에서 도쿄 올림픽 수영 남자 200m 개인혼영 금메달리스트 왕순과 함께 마지막 점화자가 된 디지털 이미지가 성화를 점화하기 위해 달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아시안게임(이 5년 만에 문을 열었다. 아시아의 축제를 내건 개막식 속에는 엔데믹을 맞이하는 중국의 색이 한껏 묻어있었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23일 오후 9시(한국시간) 중국 저장성의 항저우 올림픽 스포츠센터 스타디움에서 개회식으로 포문을 열었다. 이날을 기점으로 10월 8일까지 이어지는 16일간의 대장정이 시작됐다.
올해로 19회 차를 맞이하는 이번 대회는 이전 대회와 달리 5년 만에 치러진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이후 대회 이름처럼 지난해 열릴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여파가 중국 본토에서 가시지 않은 탓에 1년이 연기됐다.
23일 오후 중국 항저우 올림픽 스포츠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회식에서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올해는 다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엔데믹을 선언하면서 이번 대회 역시 지난 2020 도쿄올림픽, 2021 베이징 동계올림픽 등 팬데믹 시대 열렸던 폐쇄형 대회와 달리 제한 없는 형태로 문을 열었다. 지난해 2월 열렸던 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는 전체 좌석의 50% 관중만 입장할 수 있었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제한 없이 수많은 관중이 개회식이 열리는 항저우 주경기장을 채웠다.
개회식에는 단단히 준비해 온 중국의 의지가 그대로 드러났다. 코로나19의 후유증을 가장 강하게 앓았던 중국이 팬데믹에서 벗어나 이전의 위상을 과시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줄 기회였다. 중국을 대표하는 대도시 중 하나이자 남송 시대부터 수도로 발전, 한족 문화의 중심인 항저우는 긴 역사를 자랑한다. 또 중국 최대 IT 기업 알리바바의 본진으로 IT 도시로도 국내 입지가 높다. 중국의 역사와 미래를 모두 과시하기엔 수도 베이징만큼, 혹은 그 이상의 성격이 있는 개최지였다. 중국은 이번 대회 준비에만 2248억 위안(약 41조1000억원)을 들였고, 개회식 역시 디지털을 테마로 예고했다.
23일 오후 중국 항저우 올림픽 스포츠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회식에서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중국이 선택한 개회식의 첫 주제는 '아시아에 이는 물결'(Tides Surging in Asia)이었다. 중국과 아시아, 그리고 세계 각국 간의 상호 작용을 뜻했다. 남송 시대부터 이어진 항저우의 문화와 역사를 보여줬고, 공연의 배경은 항저우 첸탄강을 상징으로 삼아 펼쳐졌다. 조수와 해일로 유명한 첸탄강의 밀물과 썰물을 통해 스포츠의 활력, 대회가 열리는 저장성의 정신, 시대 발전을 표현했다. 수백만 개의 물방울이 모여 강을 이뤘고, 그 강이 조수를 형성하는 과정을 영상으로 표현했다. 이어 배를 타고 풍류를 즐기던 옛 모습들을 재현하는 등 물의 도시였던 과거 항저우의 모습을 디지털로 그려내 관중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디지털은 계속해서 공연의 핵심이 됐다. 대회 조직위원회는 이번 대회 테마 중 하나로 저탄소, 친환경을 내걸었다. 베이징 올림픽 때 하늘을 수놓았던 불꽃놀이 대신 첨단 영상 기술을 이용한 디지털 불꽃놀이가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반투명 형태의 배너가 취재진 건너편 좌석에 가득 드리워졌고, 이는 거대한 프로젝터 화면이 돼 주경기장을 거대한 영화관으로 변신시켰다. 반투명 배너는 디지털 불꽃놀이는 물론 주요 영상과 무대 배경이 돼 공연을 더욱 입체적으로 만들었다.
공개하지 않았던 마지막 성화 주자 역시 '디지털'이었다. 중국은 지난 6월부터 1억 명 이상의 누리꾼들이 스마트폰을 흔드는 방식을 통해 봉송 릴레이에 참여했다. 개최국의 스포츠 스타들로만 채웠던 이전 국제 대회 방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였다. 중국은 성화 봉송 주자로 2012 런던 올림픽에서 2관왕에 오른 여자수영 예스원, 남자 탁구 세계랭킹 1위 판젠동,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프리스타일 스키 여자 에어리얼 우승자 쉬멍타오,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한 역도 스즈융, 배드민턴 세계챔피언 출신이자 IOC 위원인 리 링웨이, 2022 도쿄올림픽 수영 금메달리스트 왕슌이 성화를 옮겼다.
이어 왕슌이 불을 붙이기 전 그의 뒤에 거대한 디지털 주자가 왕슌과 함께 움직였고, 마침내 성화에 불을 붙이며 중국 홈 관중들의 박수 갈채를 받아냈다.
23일 오후 중국 항저우 올림픽 스포츠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회식에서 대한민국 선수단이 입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편 이번 대회 39개 종목에 총 1140명을 파견한 한국 대표팀은 알파벳 숫자에 따라 16번째로 경기장에 입장했다. 구본길(펜싱)과 김서영(수영)이 기수를 맡아 태극기를 들고 앞장섰다. 선수단장인 최윤 OK그룹 회장은 두 사람의 뒤를 따라 밝게 웃고 거침없이 손을 흔들며 선수단을 이끌었다. 이날 개회식에 참석한 한덕수 국무총리도 선수단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23일 오후 중국 항저우 올림픽 스포츠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회식에서 북한 선수단 기수 방철미(복싱)와 박명원(사격)이 인공기를 들고 입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편 코로나19를 이유로 도쿄올림픽에 불참했다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징계를 받았던 북한도 이번 대회 참가해 개회식을 함께 했다. 7번째로 입장한 북한은 남자 사격 박명원, 여자 복싱 방철미가 인공기를 들고 기수로 입장했다. 다만 이는 명백한 규정 위반이다. 북한은 앞서 2021년 10월 도핑규정 위반으로 세계반도핑기구(WADA)로부터 올림픽·패럴림픽을 제외한 국제대회에서 국기 게양 금지 처분을 받은 상태다. 북한은 17개 종목에 총 185명의 선수단을 파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