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SBS 플러스·ENA ‘나는 솔로’에 별 관심이 없었다. 일단 연애 리얼리티가 너무 많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 피로감이 높았고, 무엇보다 ‘나는 솔로’가 리얼을 더욱 강조하는 연애 리얼리티라는 점이 부담을 줬다. 하지만 워낙 기자들이 이 프로그램에 대한 문의를 많이 해오는지라 평론가로서 어쩔 수 없이 16기를 처음부터 챙겨봤다. 그런데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현재까지 벌써 9회 분량이 나왔으니 말이다) 프로그램을 나도 모르게 계속 이어 끝까지 보고 있는 걸 발견했다. 이건 도대체 뭐지?
영수, 영철, 광수, 상철, 영숙, 영자, 옥순…. 이런 가명으로 한 명씩 등장하고, 이들이 함께 일정 기간을 합숙하며 중간중간 제작진이 내거는 미션을 통해 데이트를 하고 관계를 이어가는 이 과정은 과거 사라져버린 연애 리얼리티의 원조격인 ‘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짝’을 연출했던 남규홍 PD가 메가폰을 잡은 프로그램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짝’ 시절과 ‘나는 솔로’의 시절은 이러한 연애 리얼리티를 보는 감성 자체가 달라졌다. ‘짝’ 시절이 한창 리얼리티 예능이 태동하던 초창기라 출연자들과 제작진의 스트레스도 컸고 이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원성도 적지 않았지만, ‘나는 솔로’가 방영되는 지금은 이제 이러한 리얼리티 예능이 훨씬 익숙해져서인지 어느 정도는 한 발 물러나 즐기는 단계에 들어선 것 같다.
아마도 16기는 돌싱 특집이라 더더욱 그랬겠지만 출연자들 역시 적극적인 구애의 마음을 드러내고 감정 표현을 하는 편이다. 그래서 조금 관계가 익숙해지는 중반 이후로 넘어오면 가감 없이 드러내는 감정들이나 혹은 의도한 것 같진 않으나 자신도 모르게 부정적인 행동을 하는 모습들이 포착된다. 16기에서 가장 문제적 인물로 떠오른 건 영숙이다. 광수와 데이트를 하다가 갑자기 먼저 가버리는 행동을 하거나 타인의 연애를 제 생각대로 재단해 걱정한답시고 조언을 함으로써 결국 옥순과 광수의 관계에 균열을 만들기도 했다. 영철 또한 영숙과 비슷하게 타인의 관계를 예단하는 말들을 꺼내놓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질타를 받았다. 이런 행동들에 대해 네티즌은 ‘뇌피셜’이니 ‘가짜뉴스’니 하는 이야기를 꺼내 화제를 만들었는데, 이건 이 프로그램을 시청자들이 어떤 자세로 바라보고 있는가를 잘 드러낸다. 연애 리얼리티라면 남녀 간의 연애감정이 어떻게 발전해 가는가를 바라보는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지만, ‘나는 솔로’는 그것보다 인간관계에서의 처신, 태도 같은 걸 시청자들이 주목하고 있다는 뜻이다.
‘돌싱 특집’은 당연하게도 저마다 상처 하나쯤은 가진 출연자들로 채워져 있다. 영숙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산전수전, 파란만장으로 표현했는데, 그 쉽지 않았던 삶은 그가 왜 이렇게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공격적인가를 잘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계속 옥순과 경쟁하게 된 영자가 그의 험담을 늘어놓는 모습에서도 그의 상처가 숨겨져 있다. 영자는 도시에서 부유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옥순이 뭐든 자신보다 나아 보여 한없이 자신을 초라하게 느끼고 있다. 그런가 하면 미국에서 오래도록 살아 한국의 삶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상철의 경우, 첫 데이트에서 영숙이 차를 몰고 오는 와중에 시차 때문에 옆자리에서 조는 무례를 범했는데 그 날 밤 자신의 잘못을 데이트 상대에게 사과하는 모습으로 문제를 풀어내는 광경을 보여줬다. 즉 ‘돌싱 특집’은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있는 출연자들이 인간관계에 있어 쉽지만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그래서 이것이 논란으로도 비화되는데, 그럼에도 어떻게든 이를 회복하거나 해결하려는 과정을 담아낸다. 이 연애 리얼리티가 인간관계의 지침서처럼 회자되는 이유다.
물론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될 장면을 끄집어내 빌런이 탄생하게 되는 ‘연출’의 자극이 있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출연자들이 방송을 통해 비춰진 자신의 모습으로 인해 야기된 논란 속에서 하나둘 사과를 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솔로’가 시선을 잡아끄는 건, 본래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연애보다 인간관계에 대한 리얼리티를 포착해내 시청자들에게 일종의 관계의 처세나 태도에 대한 정보를 주는 지점이 아닐까 싶다. 어떤 말이나 행동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가를 보다 보면 그것이 마치 인간관계의 축소판처럼 여겨지는 면이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