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36·토론토 블루제이스)이 KBO리그 신인 시절(2006년) 팀 선배 구대성으로부터 배운 체인지업을 바로 실전에서 구사하고, 주 무기로 만든 일화는 익히 알려졌다. 한화 시절 대선배였던 이상군 북일고 감독은 "구대성이 류현진에게만 체인지업을 알려줬을까. 다른 투수들도 정민철의 커브, 문동환의 스플리터를 배웠을 것이다. 결국 자신의 것으로 만든 건 류현진뿐이다. 그만큼 손재주가 탁월했다"라고 치켜세웠다.
짧게 그리고 밀도 있게
한 야구인은 "류현진을 훈련을 많이 하는 선수로 보긴 어려웠다"라고 했다. 노력보다는 타고난 재능이 더 돋보였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류현진이 신인 시절 롤모델로 삼았던 '레전드 투수' 송진우 한화 이글스 전 투수코치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일반적인 훈련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선수는 아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쏟아내는 열정과 그 안에 내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은 항상 느껴졌다. 훈련 방법이 달랐던 것 같다"라고 했다.
송진우 코치는 류현진에 대한 첫인상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송 코치는 "2006년 미국(하와이) 스프링캠프에서 처음에 봤을 때는 (류현진의) 살이 조금 찐 상태였다. 러닝도 열심히 하는 편이 아니었다. 솔직히 '운동을 게을리하는 선수가 아닐까'하는 의구심도 생겼다”라고 했다.
송진우 전 코치는 이내 자신의 오판을 인정했다. 불펜 피칭에 임하는 류현진의 표정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조금 더 함께 생활한 뒤엔 자신만의 방식으로 등판을 준비하고, 좋은 성적까지 내는 류현진의 모습에 믿음이 생겼다고 한다.
한화 시절 선배이자 류현진의 멘토였던 정민철 MBC 스포츠 플러스 해설위원도 류현진 특유의 구종 습득과 등판 준비를 주시했었다.
정 위원은 "류현진은 손이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다. 그런데 새 구종을 습득한 시간에 비해 빠르게 실전에서 활용한다. 일반적인 훈련 스케줄 외 시간을 자신의 투구를 연구하는 데 많이 썼다. 머슬 메모리(muscle memory) 강화를 위해 개인 시간에 밀도 있게 훈련하던 모습을 나도 기억한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류현진은 누구보다 노력파다"라고 했다.
습득력만큼이나 탐구력도 뛰어난 선수였다고 한다. 창영초 시절 류현진을 지도한 이호영 전 코치는 "어느날 '어떤 부분이 문제였는지 아느냐'고 묻자 현진이가 '하체에 힘이 전달되지 않았고, 컨트롤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라고 답하더라. 현진이는 항상 자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스스로 대답했다"며 비범했던 까까머리 선수 류현진을 기억했다.
이 코치는 이어 "한 가지를 알려주면 스스로 궁리해서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더라. 프로에서도 투구 자세든 구종이든 자신에게 적합한 방법 궁리하고 찾았을 것"이라고 했다. 류현진에게 체인지업을 전수한 구대성도 "류현진이 던지는 체인지업은 가르쳐 준 그립과 다르다. 배운 뒤 바로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로 바꿔서 던지더라"라고 했다.
레전드 투수도 놀란 개성
연습 투구 방식도 남달랐다고 한다. 정민철 위원은 "보통 투수들은 구속이나 공의 회전을 점검한다. 그런데 류현진은 마운드가 아닌 평지에서 공을 던졌고, 홈에서 마운드까지 거리(18.44m)보다 짧은 거리에서 가볍게 던지는 연습을 주로 했다. 영점(제구)을 잡는 방식이 조금 특이했다"라고 했다.
송진우 전 코치에게 이 일화를 묻자 그도 "(류)현진이가 어느 순간부터 (선발 등판 사이) 불펜 피칭을 하지 않았지만, 등판을 준비하며 뭔가 연구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나는 현진이가 더그아웃 바로 앞에서 불펜포수도 아닌, 김준기 전력분석원을 세워 두고 가볍게 체인지업과 커브에 회전을 주는 연습을 자주 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라고 돌아봤다.
정민철 위원과 송진우 전 코치 모두 "결국 중요한 건 좋은 투구를 하는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준비했는지 마운드 위에서 증명했다"라고 웃어 보였다.
류현진은 빅리그에서도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했다. 류현진은 LA 다저스 소속으로 메이저리그(MLB) 첫 스프링캠프를 소화한 2013년 2월, 단체 러닝에서 낙오해 현지 기자들의 의구심을 샀다. 흡연도 구설수에 올랐다. 등판을 앞두고 불펜 피칭을 하지 않는 그의 루틴까지 색안경을 보는 시선이 있었다.
정작 류현진은 외부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다. 실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고, 팀 주축 선발 투수를 넘어 사이영상 후보까지 오르며 정상급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일본 리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용병' 경험을 한 정민철 위원은 "보통 외국인 선수는 현지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의 것을 깨뜨리기도 한다. 그런데 류현진은 생활부터 가치관을 유지하고 고수했다. '그저 야구장에서 잘 하면 된다'라는 마음가짐이 엿보였다"라고 전했다.
류현진의 성격을 묻는 질문에 동료와 지도자 다수가 "낙천적이고, 넉살 좋고, 털털하다"라고 답한다. 그래서일까. 독기를 품고 야구를 대하는 모습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은사' 김인식 전 국가대표팀 감독은 "류현진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철저하게 하는 선수다. 겉보기와 다르다"라고 말했다. 최근 몇 년 동안 류현진과 비시즌 훈련을 함께 한 키움 히어로즈 에이스 안우진도 "운동 전후로는 말도 많이 하고 많이 웃지만, 운동이 시작되면 표정부터 달라지더라. 운동 집중력에 감탄했다"라고 했다.
자신만의 방식을 밀고 나가는 뚝심과 남다른 집중력. 류현진의 특별한 제구력의 원천 중 한 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