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커진 웹툰의 플랫폼 규모, 메인스트림이 된 시리즈 시청 방식이 웹툰의 영상화 제작 바람에 큰 영향을 줬습니다.”
연상호 감독은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만화작가로 데뷔해 2011년 애니메이션 ‘돼지왕’으로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 최초로 칸국제영화제에 초청 받아 주목 받고, 천만 영화 ‘부산행’으로 스타 감독으로 떠올랐으며 웹툰 ‘지옥’의 작가이자 동명의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만화, 웹툰, 영화, 드라마까지. 다양한 매체를 직접 경험한 연상호 감독은 최근 일간스포츠와 인터뷰에서 웹툰을 기반으로 드라마 및 영화 제작이 어느 때보다 활발한 배경으로 웹툰 플랫폼의 성장, 영상 시청 방식의 변화를 꼽았다.
연상호 감독은 최근 최규석 작가와 공동집필한 웹툰 ‘지옥2’를 연재하고 있다. 시즌1에 이어 시즌2의 드라마 제작도 확정돼 내년 공개를 목표로 한창 촬영 중이다. ‘지옥’은 연상호 감독과 최규석 작가 특유의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담은 작품인데 최근 ‘만화계의 오스카’라 불리는 ‘아이스너 어워드' 아시아 작품상 후보에 오르는 등 국내외에서 뜨거운 호평을 받고 있다.
“작업하는 입장에서는 어쨌든 재미가 있는 것 같아요. OTT의 경우 한꺼번에 콘텐츠를 오픈하는데 웹툰은 주 1회로 1년 여간 연재해서 아무래도 시청자와 독자의 호흡이 굉장히 달라요. 그렇다 보니 반응도 무척 다르고요. 또 최규석 작가가 웹툰을 어떻게 연출하는지 보는 재미가 있고, 드라마는 배우들이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보는 색다른 재미가 있죠.”
원작을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할 경우 때로는 원작 팬들의 혹독한 평가가 뒤따른다. 연 감독은 대부분의 제작진이 부담감을 어느 정도 안고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다만 “원작 팬덤의 성격은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작품은 좀 더 열려 있다고 해야 하나. 원작의 팬덤이 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호불호가 나뉘는 작품들이 있다 보니 안티 팬덤도 있는 것 같다”고 웃었다.
연 감독은 최근 웹툰 원작의 드라마와 영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이유에 대해 “과거보다 시리즈 역할이 되게 커졌다”며 “다음을 보고 싶게 만들고, 변주가 되지만 작품을 선택할 때 한번 구축된 세계관에 대한 신뢰가 주요하게 작용한다”고 말했다.
“저는 제작도 하고 있다 보니 웹툰뿐 아니라 소설 등 원작을 많이 봐요. 볼 때마다 느끼는 건 소설은 단행본 형식이 드라마와 영화 제작에 영향을 준다는 거죠. 물론 웹소설은 장르성이 있지만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단행본 형태로 나오고 독자는 책을 펼치면 끝까지 보는 것에 목적이 있어요. 소설이 이 같이 완결성을 중요시 하는 반면, 웹툰은 플랫폼의 확대와 함께 시리즈 형식을 강조할 수밖에 없죠. 플랫폼 규모 자체가 워낙 커서 창작자들도 그 방향성 내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거든요.”
다만 연 감독은 인기 원작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와 영화도 매체가 다르기 때문에 흥행을 장담하지 못한다며 “영상화 했을 때 웹툰보다 대중적으로 인기 있을 만한 것들을 찾는다”고 말했다.
연상호 감독은 “웹툰이든 드라마 작업이든 모두 다 고통이 있긴 하다”며 “최규석 작가는 구상된 이야기를 구현해 내려 무척 애쓰는데 나는 ‘오늘 촬영일인데 비 오면 어떡하지?’ 같은 걱정을 많이 한다. 스태프들과 날씨 예측 애플리케이션을 4개 돌리고 있다”고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러면서 “모두 매체의 차이에서 오는 고충인데 이런 것들 또한 작품을 만드는 재미의 일환이지 않겠나”라고 덧붙였다. 이어 매체 특성의 차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작업 과정을 예로 들었다.
“소설의 경우 문체를 영상으로 옮기는 건 상당히 어려워요. 내레이션으로 옮긴다 해도 그 문체를 오롯이 즐길 수 있는 건 아니죠. 물론 만화도 시각 매체라서 분명히 닮은 점이 있지만 영상과 비교해 일종의 약화된 그림체거든요. 그림체 문법에 캐릭터들이 연기하는 방식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결국 배우처럼 연기하지 못해요. 예컨대 충격을 받았다는 걸 표현하기 위해 캐릭터의 검은 눈동자가 없어지거나 탈색된다면, 영상에선 좀비로 표현이 돼죠. 같은 시각 매체라 하더라도 1대1 비율로 적용되지 않는 지점들이 많고 또 다른 창작자들이 따로 채워가야 하는 거죠.”
연상호 감독은 또한 “웹툰이 스틸 이미지에 소설과 같은 문어체가 쓰이는 문어와 구어 사이의 언어라면, 실사화된 작품들은 구어”라며 이러한 차이들을 모두 아우르면서 원작과 완전히 같은 작품은 만들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영상화 작업에서는 너무 뻔한 말이지만 원작자, 그리고 다른 제작진과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창작물도 결국 불특정 다수에게 보여지기 위해 만드는 거잖아요. 외딴 섬처럼 떨어져 있는 게 아닌 이상, 어떤 창작물이든 대중과 함께 해야 해요. 창작이라는 건 자신의 생각 하나를 계속 팔 수밖에 없는데, 나름 객관적인 시점에서 변주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람들이 언제나 함께여야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