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지난 2021년 3월 일본에서 열린 A매치 평가전이었다. 당시 발렌시아 소속이던 이강인은 요코하마에서 열린 한일전 친선경기에 선발 출전했지만 0-3 완패를 경험했다. 익숙하지 않은 제로톱 역할을 맡아 최전방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다 전반만 소화한 채 경기를 마쳤다. 이강인에게 생애 첫 A매치 한일전은 쓰라린 상처로 남았다.
지난해 6월 우즈베키스탄에서 개최된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아시안컵 8강전. A매치 한일전 설욕을 노리던 이강인은 또다시 0-3 완패라는 결과와 마주했다. 당시 처음 황선홍 감독의 부름을 받았던 이강인은 4-3-3 전형의 중앙 미드필더 역할을 맡았다. 수비적인 부담이 더해지면서 공격 재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또 한 번 한일전에서 무기력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나마 지난 2019년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16강전 한일전에서 1-0 승리를 거뒀지만, 이강인은 이후 두 경기 연속 한일전 0-3 완패만 경험했다. 두 경기 모두 자신의 기량을 제대로 보여줄 역할조차 맡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이강인에게 다시 한번 ‘설욕’의 기회가 찾아왔다. 무대는 7일 오후 9시(한국시간) 중국 항저우의 황룽 스포츠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AG) 남자축구 결승전이다. 금메달이 걸린 가장 중요한 경기, 앞선 두 번의 한일전 상처를 지우고 가장 값진 성과를 새길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된 것이다.
소속팀 일정으로 늦게 합류한 데다, 부상에서 회복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컨디션이 최상은 아니다. 그래도 지난달 바레인과의 조별리그 3차전부터 꾸준히 출전하며 경기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공격 포인트는 없지만, 제한적인 출전 시간 안에서도 특유의 번뜩이는 움직임으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우즈베키스탄과의 4강전에선 상대의 허를 찌르는 세트피스로 선제골의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지난해와 달리 황선홍 감독의 ‘이강인 활용법’이 달라졌다는 점도 반가운 요소다. AFC U-23 아시안컵에선 중원에 포진했다면, 이번 대회에선 전방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며 공격 기회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강인의 공격적인 재능을 극대화하는 데 전술 초점이 맞춰진 것이다. 다소 무기력하게 완패를 경험했던 앞선 두 차례 한일전과 달리 이제는 공격의 중심에 서서 직접 승리를 이끌 여건이 마련된 셈이다.
부담도 덜었다. 특히 7골을 기록 중인 정우영(슈투트가르트)을 필두로 조영욱(김천 상무) 송민규(전북 현대) 안재준(부천FC) 등 다른 공격진들의 상승세가 뚜렷하다는 점이 반갑다. 공격의 중심에 선 이강인의 번뜩이는 패스가 더욱 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직접 문전 침투나 왼발 킥력을 앞세워 상대 골문을 노릴 수도 있음은 물론이다.
결승전을 무대로 펼쳐지는 한일전에서 활짝 웃을 수 있다면, 이강인도 앞선 한일전 악몽들을 훌훌 털어낼 수 있다. 이강인의 목표 역시 오직 한일전 승리, 그리고 금메달이다. 그는 지난 우즈베키스탄과의 4강전을 마친 뒤 “다음 결승에서도 좋은 결과가 있도록 열심히 하겠다. 다음 경기도 몇 분을 뛰든 꼭 승리해서 우승하고 싶다. 최선을 다해 준비해서, 꼭 좋은 결과가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 다짐의 결실을 맺을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