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e스포츠 대회인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이 10일 막이 올랐다. 올해로 13회째인 ‘2023 롤드컵’은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한 달 간 진행된다. 특히 e스포츠종주국인 한국에서 5년 만에 열리는 3번째 롤드컵으로, 볼거리에 즐길 거리까지 더해져 역대 최대 규모로 진행된다.
롤드컵 대중 속으로
10일 라이엇게임즈에 따르면 2023 롤드컵은 이날 개막해 내달 19일까지 진행된다. 서울 종로구 롤파크에서 예선 성격의 플레이인 스테이지를 시작으로 서울 화곡동 KBS 아레나에서 16강을 진행한 후 부산으로 내려가 8·4강을 치르고, 다시 서울로 올라와 결승전을 벌인다.
눈에 띄는 점은 규모 면에서 역대 최대 오프라인 대회라는 것이다. 기존 대회는 경기장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이번에는 서울시와 한국관광공사와 손잡고 경기장 외 서울 곳곳에서 다채로운 부대행사가 펼쳐진다.
특히 오는 11월 16일부터 19일까지 광화문 광장이 롤드컵 축제의 장으로 변신한다. 라이엇게임즈는 서울시로부터 e스포츠 대회로는 처음으로 광화문 광장 사용 허가를 받았다. 이곳에는 팬들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이 마련되고, 내달 18일 저녁에는 전야 콘서트 ‘라이엇 뮤직 페스티벌’이 진행되며, 결승전 당일인 11월 19일에는 뷰잉 파티가 열린다.
이달 20일에는 광진구 뚝섬한강공원 수변무대 일대에서 드론쇼가 펼쳐진다. 이날 오후 8시부터 10분 간 롤드컵 개최 사실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참가팀과 선수들을 응원하는 메시지도 전한다.
내달 30일까지 서울 중구의 한국관광공사 홍보관인 하이커 그라운드에서는 ‘월즈 플레이그라운드’ 행사가 열린다. e스포츠 체험 부스와 팀·팬들이 만나는 장소인 팀 앤드 팬 존이 마련된다. 롤드컵 다큐멘터리를 시청할 수 있고, 경기 티켓을 획득할 수 있는 스탬프 이벤트에 참여할 수도 있다.
이같은 다양한 오프라인 행사는 경기장에서만 진행되던 이전 롤드컵과는 다른 모습이다. 특히 광화문 광장과 같은 열린 공간에서 경기를 관람하고 자연스럽게 응원전이 펼쳐질 수 있도록 해 평소 e스포츠에 관심이 없던 일반 대중의 참여도 기대된다.
이정훈 LCK 사무총장은 “경기장 주변에만 국한되지 않고 유동인구가 지나는 곳에서 팬들과 함께 할 수 있게 됐다는 것 자체가 e스포츠 위상의 발전, 그리고 대중적인 인식이 많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에서 열리는 롤드컵을 통해 e스포츠를 잘 몰랐던 분들께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e스포츠를 즐기고 좋아하는지 알려드리고 싶다”고 했다.
안방 치욕 더는 없다
이번 롤드컵은 우승컵(소환사의 컵) 경쟁도 흥미롭다. '리그 오브 레전드(LoL)' e스포츠의 한국 리그인 LCK 팀들이 5년 전인 2018년 한국에서 열린 롤드컵에서 중국 리그 LPL 팀에 우승을 내준 치욕을 설욕할지 관심사다.
당시 KT 롤스터와 아프리카 프릭스, 젠지가 LCK 대표로 출전했는데, 젠지가 16강에서 1승5패를 당하며 조기에 탈락했다. KT와 아프리카는 8강에 진출했지만 KT가 LPL 팀인 인빅터스 게이밍에게 2-3으로 패했고, 아프리카는 북미 LCS 팀인 클라우드나인에게 0-3으로 완패하면서 LCK 모든 팀이 4강 진출에 실패했다. 대신 중국의 인빅터스 게이밍이 인천문학경기장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LCK 4개 팀(젠지·T1·KT·디플러스 기아)은 5년 전 안방에서 구긴 자존심을 이번에는 반드시 세우겠다는 각오다. 한국은 역대 롤드컵 우승이 7번으로 가장 많고, 작년 대회에서도 LCK의 DRX가 왕좌에 올라 우승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팀들의 기세도 좋다. 젠지는 자타가 공인하는 올해 LCK 최강팀이다. 2022년 서머에서 LCK 첫 우승을 차지한 젠지는 2023년 스프링과 서머 모두 최종 왕좌에 오르며 3회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현재 구성원들의 팀워크가 최상으로 평가되면서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힌다.
T1은 국제 대회에서 더욱 강해지는 글로벌 전통 강호다. 2017년 이후 롤드컵 우승을 못하고 있지만 국제 대회 최악의 성적이 4강일 정도로 저력을 갖고 있다. 경력이 쌓일수록 안정감을 더하고 있는 '페이커' 이상혁을 중심으로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톱 라이너 '제우스' 최우제와 서포터 '케리아' 류민석의 활약이 주목된다.
KT는 올해 서머 정규 리그에서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주며 1위를 차지했다. 2018년 롤드컵 8강에서 탈락한 이후 5년 만에 다시 한국에서 열리는 롤드컵 무대에서 특유의 속도감을 되살릴 준비를 하고 있다.
디플러스는 LCK 역사상 처음으로 롤드컵 5연속 진출을 달성한 팀이다. 2019년 ‘담원 게이밍’이라는 이름을 달고 처음으로 롤드컵 무대에 섰으며 2020년 우승을 차지했다. 2021년 준우승, 2022년 4강에 올랐던 디플러스는 올해 또 한 번 정상에 도전한다.
e스포츠계 관계자는 “이번 롤드컵은 항저우 아시안게임 LoL 종목에서 한국이 금메달을 딴 직후 열리는 만큼 분위기가 좋다”며 “선수들이 안방에서 편안하게 경기한다면 충분히 우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LCK 팀들은 오는 19일부터 KBS 아레나에서 열리는 스위스 스테이지(16강)부터 경기에 나선다.
LCK 팀들이 우승하기 위해서는 LPL 팀들을 반드시 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 중 경계 대상 1호는 징동 게이밍이다.
작년에 미국에서 열린 ‘2022 롤드컵’에서 4강에 올랐던 징동 게이밍은 원거리 딜러 ‘룰러’ 박재혁을 영입하면서 전력을 보강해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올해 LPL 스프링과 서머를 모두 제패했고, 각 지역의 스프링 상위 팀들이 모이는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에서도 우승하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징동 게이밍이 이번 정상에 오르면 지역 대회와 국제 대회를 싹쓸이하는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다. 징동 게이밍의 유니폼을 입고 롤드컵에 나서는 정글러 ‘카나비’ 서진혁과 박재혁은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까지 획득하며 기세가 한껏 올라 있다.
또 다른 e스포츠계 관계자는 “이번 롤드컵은 한국과 중국의 자존심 경쟁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북미(LCS)의 C9과 유럽(EMEA) G2 e스포츠 정도가 변수를 만들어낼 수 있으나 한국과 중국이 워낙 강해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롤드컵 역사 바꿀 신기록 예고
이번 대회에서는 롤드컵의 새 역사를 쓸 기록들이 쏟아지는 것을 보는 재미도 쏠쏠할 전망이다.
이상혁의 행보 하나 하나가 역사다. 이상혁은 이번까지 8회로 롤드컵에 가장 많이 출전한 4명의 선수 중 한 명이다. 2013년 처음 출전하자마자 우승컵을 거머쥐었고, 2015년과 2016년 2년 연속 우승하는 초유의 기록을 세웠다. 또 115경기(세트 기준)를 치러 83승32패를 기록했으며 400킬 고지도 올랐다. 경기 수, 최다 승, 최다 킬 등 누적 데이터 부문에서 대부분 1위에 이름을 올린 이상혁은 이번 롤드컵에서 기존 기록을 다시 갈아치울 것으로 기대된다.
이상혁과 함께 최다(8회) 출전하는 디플러스의 ‘데프트’ 김혁규는 통산 100전 이상 달성하는 경우 붙은 ‘센츄리 클럽’ 가입 1순위다. 현재까지 이상혁이 유일하다.
김혁규는 작년 롤드컵까지 96경기를 소화했고, 이번 롤드컵의 스위스 스테이지 도중에 센츄리 클럽 가입이 유력시 된다.
박재혁도 센츄리 클럽 후보다. 2016년과 2017년 롤드컵 결승전에 연속 진출했고, 2017년 우승을 차지한 박재혁은 지금까지 80경기를 치렀다. 징동 게이밍이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고 있는 상황에서 토너먼트 스테이지까지 진출할 경우 박재혁도 이상혁, 김혁규와 함께 롤드컵 100전 이상 소화한 선수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