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브라질, 이탈리아 3개국 레전드들의 출전으로 화제를 모았던 ‘레전드 올스타전’이 전격 취소됐다. 불과 경기 일주일여 앞둔 시점이다. 경기 장소(고양), 티켓 가격 등이 공개됐을 당시부터 흥행에 대한 의구심이 컸던 가운데 결국 돈 문제가 얽히면서 전격 취소가 결정됐다. 지난여름 나폴리·마요르카의 내한, 코리아 투어 등 축구 관련 이벤트들이 잇따라 취소돼 망신만 이어지고 있다. 피해는 고스란히 팬들의 몫이다.
레전드매치 입장권 예매를 진행했던 인터파크 티켓은 12일 홈페이지 등을 통해 주최 측 사정으로 경기가 취소됐다고 알렸다. 입장권을 산 팬들에겐 환불을 약속했다. 이번 매치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본사를 둔 라싱시티그룹과 여행전문회사 트래블링이 기획했다. 국내 회사인 트래블링 측은 소셜미디어(SNS) 등에 관련 게시물들만 지운 채 아직 공식 입장조차 밝히지 않고 있는 상태다.
당초 레전드 올스타전은 오는 21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브라질의 호나우두, 호나우지뉴, 히바우두, 카카, 이탈리아는 파올로 말디니, 프란체스코 토티, 파비오 칸나바로, 알레산드로 델피에로 등 레전드들이 대거 출전하고, 한국에서도 안정환과 이운재, 김남일 등이 참가할 예정이었다. 한국과 브라질, 이탈리아가 각각 레전드 팀을 꾸려 한 차례씩 맞대결을 펼치는 방식의 이벤트로 추진됐다.
워낙 세계적인 선수들인 만큼 팬들의 기대 역시도 컸다. 레전드들이 입국한다는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팬들이 인천국제공항에 한데 모일 정도였다. 한국 레전드 자격으로 대회에 참가할 예정이던 안정환 역시 “죽기 전에 이런 세계적인 선수들과 함께 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며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을 정도.
그런데 경기 장소가 서울이 아닌 고양 종합운동장으로 정해진 데다, 티켓 가격도 워낙 비싸게 책정돼 팬들 사이에선 불만의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종합운동장이다 보니 시야가 좋지도 않은 데도 일반적으로 서포터스가 앉는 골대 뒤편 티켓 가격이 8만원에 달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국가대표팀 A매치과 비교해 2배 이상 비싼 수준이었다.
자연스레 경기장 입장권 예매 속도는 기대에 한참 못 미쳤다. 레전드들 보기 위해 직접 입장권을 예매한 팬들 사이에서도 정상적인 개최가 가능한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에 따르면 경비 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은 데다 라싱시티그룹이 약속했던 투자금도 받지 못했다.
결국 주최 측은 불과 9일을 앞두고 레전드 매치의 전격 취소를 결정했다. 그나마 다행히 티켓을 예매한 팬들에겐 전액 환불될 예정이지만, 이미 이동편이나 숙박 등까지 미리 예약한 팬들은 고스란히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동안 한국을 오가면서 레전드 올스타전을 준비했던 세계적인 스타들 역시 돌연 행사 취소라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
문제는 이처럼 대대적인 홍보 이후 정작 무산되는 내한 이벤트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여름엔 당시 각각 김민재와 이강인의 소속팀이던 나폴리·마요르카의 내한이 추진됐지만, 주최 컨소시엄이 대한축구협회(KFA)가 요구한 서류를 제출하지 못하는 바람에 무산된 바 있다. KFA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이른바 ‘날강두’ 사태 이후 주최 측의 재정적 능력 등 엄격한 조건들을 제시했다. KFA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면서 나폴리·마요르카 내한은 결국 무산됐다. 당시 컨소시엄은 7~8월 AS로마, 울버햄프턴, 셀틱 등이 내한하는 친선 대회까지 추진했으나 이 역시 재정적인 문제로 무산됐다.
나아가 이번 레전드 매치 취소되면서 대대적인 홍보 이후 정작 ‘없던 일’로 끝나버린 사례는 더 늘게 됐다. 정상적인 개최 능력이 없거나 개최를 확신할 수 없는 주최 측이 홍보부터 앞세우다, 정작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무산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일부 사례들은 외신들을 통해 보도까지 된 데다 당장 한국을 찾으려다 돌연 취소 통보를 받게 된 해외 구단이나 선수들에게도 망신스러운 일이다. 한껏 기대하던 팬들 역시도 허탈감과 실망감에 힘이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