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영화 ‘발레리나’는 목적성이 분명한 작품이다. 사건과 사건을 잇는 촘촘한 개연성보다는 비주얼에 힘을 실었다. ‘발레리나’는 경호원 출신 옥주(전종서)가 소중한 친구 민희(박유림)를 죽음으로 몰아간 최프로(김지훈)를 쫓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복수라는 목표를 위해 달려 나가는 한 인물(옥주)을 잡는 데 포커스를 둔다.
‘발레리나’가 지난 6일 공개된 이후 가장 많이 들은 비판은 개연성에 대한 지적일 것이다. 옥주가 왜 그렇게 민희의 복수를 하는 데 진심인지(살인 전과를 걸 만큼), 사건이 이렇게 커지는 동안 경찰은 뭘 하고 있는지, 옥주가 얼마나 대단한 경호원이기에 그 수많은 악당들이 옥주 하나를 못 잡는 건지. 옥주의 전사를 비롯해 사건을 촉발시키는 중요한 지점인 옥주와 민희 사이의 우정엔 납득되지 않는 면들이 꽤 있다.
그럼에도 ‘발레리나’에 대한 호불호가 이렇게까지 극명할 일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발레리나’는 애초에 깊이 있게 사건을 그려내는 데 그 목적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액션이나 감각적인 비주얼 자체가 미덕인 영화도 있는 법이고, 그게 ‘발레리나’가 그레이(이 영화에 음악감독으로 참여했다)의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 같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이자 관련 장르에 환호하는 이들의 호평을 받는 이유다.
다만 그렇게 넉넉한 시선으로 보더라도 못내 고개가 갸웃거리는 부분이 있다. 민희가 국내를 떠들썩하게 했던 ‘N번방’과 소위 ‘버닝썬 사건’이라 갈음되는 클럽 내에서의 마약(물뽕) 범죄의 피해자로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단편영화 ‘몸값’ 때부터 넷플릭스로 공개된 첫 장편영화 ‘콜’에서까지 이충현 감독은 여성을 중심에 둔 이야기를 전개해왔다. ‘발레리나’ 역시 마찬가지다. 이 감독은 “여성의 성착취에 관해서 통쾌하게 때려 부수는 느낌의 복수극을 잘 보지 못 했던 것 같다”며 “그런 작품이 영화로 눈앞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즉 이충현 감독은 주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착취 범죄에 경각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좋은 의도로 영화 속에 담아내고 싶었다는 의미다.
이것이 오히려 ‘발레리나’의 패착이 됐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착취 범죄라는 것은 옥주 같은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인물 하나가 불도저처럼 쳐들어가 근절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 역사도 유구하고 피해자를 옭아매는 수법도 다양하다. 옥주 같은 친구가 없는(아마 대부분 없을 텐데) 수많은 (잠재적) 민희들이 ‘발레리나’를 보고 통쾌함을 느낄 것이라 생각했다면 그것은 대단한 착오다.
개연성을 포기했다시피 한 ‘발레리나’는 선량한 발레리나였던 한 인물이 어떻게 성착취 범죄에 휘말리게 됐는지, 왜 빠져나오지 못 하고 극단적 결말에까지 이르게 됐는지를 보여주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에서 성착취 범죄는 옥주가 복수를 위해 달려나가게끔 하는 신호탄 정도로 소비됐다는 인상을 주고, 그 부분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더불어 영화에서 사용된 BDSM(구속, 훈육, 가학, 피학) 소재 역시 그다지 적절하진 못 했다. 하나의 인격체가 다른 인격체를 지배하고 통제하는 BDSM에는 분명 성착취적인 요소가 있지만, 최소한 그 씬에 있는 사람들은 상호합의의 원칙을 지킨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같은 영화가 세계적으로 흥행하고 넷플릭스에서도 ‘모럴센스’ 같은 영화가 나온 마당에 BDSM 소재를 개연성 없이 범죄와 엮는 건 오히려 관련 분야를 더 범죄와 엮어들게 하는 무책임한 연출일 수 있다. 이 소재 역시 비주얼적인 임팩트를 위해 ‘발레리나’에서 소비됐다는 느낌이다. 지배자(최프로)가 마스크를 쓴다는 설정 역시 감독이 BDSM 분야에 대해 전혀 이해가 없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