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수영 스타 조기성(27)은 지난 8월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린 장애인수영세계선수권에서 ‘깜짝’ 금메달을 땄다. 2016 리우 패럴림픽에서 한국 장애인체육 역사상 최초로 3관왕에 오른 조기성이지만 이번 메달은 의미가 남달랐다. 무려 8년만에 따낸 세계선수권 금메달이자, 주종목 자유형이 아닌 평영(50m)으로 따낸 쾌거였기 때문이다. 수많은 좌절 끝에 찾은 새로운 영법으로 도전에 나선 조기성이 다시 세계무대 정상에 올랐다.
은퇴 기로에서 조기성 일으킨 ‘대문자 T’들
조기성은 2016 리우 패럴림픽 이후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다. 2018 인도네시아 장애인아시안게임(APG)에서 은메달 3개에 그친 조기성은 2020 도쿄 패럴림픽에선 자유형 100m 5위, 자유형 200m 6위에 머물렀다. 장애가 심해지면서 기록에 영향을 미쳤다. 선천성 뇌병변장애로 하체를 쓰지 못하는 조기성은 시간이 갈수록 관절과 근육이 굳고 있다. 좌절한 조기성은 급기야 은퇴까지 고려했다.
하지만 조기성은 주변의 도움을 받고 다시 일어섰다. 특히 대회 현장에서 함께 한 심리 코치들의 조언이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조기성은 “나는 MBTI(성격유형지표)가 ‘INFP’라서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땅굴로 파고 들어가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대문자 T(극도로 이성적인 사람을 일컫는 말)’인 코치님들 조언 덕분에 현실을 깨달으면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라고 밝혔다.
그는 과거엔 일희일비하고 자신보다 승부에만 신경을 썼다. 하지만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건 내버려 둬”라는 심리 코치들의 조언을 들은 후 달라졌다. 자신에게 더 집중하기 시작했고, 상대 선수를 인정하는 여유도 생겼다.
최근 자신의 부진도 ‘과거형’으로 내버려 두는 여유도 찾았다. 그는 “예전엔 금메달을 못 따면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패럴림픽 3관왕이 APG에서 은메달만 3개 땄는데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여기서 메달 못 딴다고 3관왕 업적이 없어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도쿄 패럴림픽 노메달도 내 전부를 수식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려놓고 보니 이젠 경쟁을 즐길 수 있게 됐다”라고 웃었다.
배형근 감독의 체계적인 훈련으로 상체 의존이 아닌. 허리를 쓰는 방법까지 터득한 조기성은 자유형 기록을 조금씩 단축하면서 부활의 날갯짓을 켰다. 조기성은 "주변에 이렇게나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많다는 걸 최근에야 깨달았다. 이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을 것"이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항저우 넘어 파리로”
조기성은 오는 22일 열리는 항저우 APG에서 금메달을 노린다. 다만 변수가 생겼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조기성의 부활을 이끈 평영과 주 종목인 자유형 200m가 이번 대회에서 출전 선수 부족으로 제외된 것이다. 조기성은 자유형 50m와 100m, 배영 50m 세 종목에만 나선다. 조기성은 “주 종목이 사라져 아쉽지만, 내년 파리 패럴림픽의 전초전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하겠다”라고 다짐했다.
지난 아시안게임(AG)에서 황선우·김우민의 금빛 역영을 TV로 지켜봤다는 그는 “한국 선수들의 활약에 기분이 좋기도 하고 동기부여가 됐다. ‘나도 잘하고 싶다’는 의욕이 솟았다”라고 말했다. 조기성은 “이번 APG에서 메달은 보너스라고 생각하고 축제를 즐기려고 한다. 하지만 부담감만 내려놨을 뿐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건 변함없다. 수영 커리어를 다시 시작한다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다짐했다.
장애를 딛고 패럴림픽 3관왕 새역사를 쓴 그는 은퇴 위기를 딛고 평영이라는 새 영법에 도전해 세계 무대에서 가능성을 보였다. 이제 APG에서 또 한번의 도전에 나선다.
‘도전의 아이콘’인 그에게 ‘도전’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조기성은 "도전이라는 거창한 말보단 나는 그저 수영이 즐겁고,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답했다. 그는 “자기 일에 집중하는 것 자체가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도전이라는 게 다르게 생각하면 별 건 아니다. 모두가 도전 중이고 모두가 성공할 수 있다"라며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