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부담이 안 됐던 것도 처음이에요. 성공도 실패도 같이할 수 있다는 편안함 때문인 거 같아요.”
영화감독 장항준과 코미디언 송은이는 32년 지기다. 장항준 감독이 89년 복학생으로, 송은이가 91학번 재학생으로 서울예대에서 처음 만나 지금까지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
각종 방송 프로그램에서 호흡을 맞춰온 장항준 감독과 송은이는 지난 25일 개봉한 영화 ‘오픈 더 도어’를 통해 감독과 제작자로 협업했다. 32년간 켜켜이 쌓아온 두 사람의 우정이 이 협업을 통해 다시 빛났다.
‘오픈 더 도어’는 미국 뉴저지 한인 세탁소 살인 사건 이후 7년, 비밀의 문을 열어버린 한 가족의 숨겨진 진실을 그린 작품이다. 최근 서울시 마포구 컨텐츠랩 비보 사옥에서 만난 장항준 감독은 “긴장이 많이 된다. 요즘 극장가 상황이 좋지 않아 관객이 대작도 찾지 않는다. 이런 환경에서 (영화가) 개봉하게 돼 걱정된다”며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관계를 유지하며 지내는 게 쉽지 않지만, 함께 일을 한다는 건 더 어려운 법이다. 장항준 감독은 “(송은이와) 32년 인연이다. 서로를 너무 잘 안다. 그리고 나도 송은이도 별로 변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더 솔직해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송은이는 “이렇게 부담이 안 됐던 것도 처음이다. 성공도 실패도 같이할 수 있다는 편안함 때문인 것 같다”며 “예능에서 (서로를) 까기도 하지만 깊은 곳에는 존중이 있다. 나도 장항준 감독에게, 장항준 감독도 나에게 리스펙이 있다”고 했다.
이를 들은 장항준 감독은 “능력도 중요하지만,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사람들을 존중하고 그들의 의견을 듣고 판단하는 등 이런 부분들이 오늘날의 송은이가 여기까지 오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다”고 덧붙였다.
컨텐츠랩 비보 대표인 송은이는 ‘오픈 더 도어’를 통해 처음으로 영화 제작에 발을 들였다. 송은이는 “첫 제작이기 때문에 내가 놓치는 부분이 생길까 우려가 있었다. 제작자로서 역할을 다 못하게 될까 걱정이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좋은 이야기가 있고 그게 우리와 결이 맞는다면 하고 싶다”며 향후 영화 투자와 제작에 대한 의지를 내비쳤다.
과거 미국 교민 사회에서 일어났던 실화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오픈 더 도어’는 총 다섯 개의 챕터를 통해 이민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새로운 챕터의 문이 열릴 때마다 시간이 역순으로 흘러간다는 점에서 참신한 재미를 안긴다.
장항준 감독의 아내이자 ‘스릴러의 대가’로 꼽히는 김은희 작가는 아직 ‘오픈 더 도어’를 보지 못했다고. 장항준 감독은 “김은희 작가는 시나리오 앞부분만 봤는데 보고 궁금해했다. 그래서 영화에 대한 기대가 큰 편이다. 그렇다고 부담스럽지는 않다”고 말했다.
‘오픈 더 도어’의 무기를 묻자 송은이는 시나리오를 꼽았다. 송은이는 “밀도감 있는 이야기 그 자체가 무기다. 요즘은 이런 밀도감 있는 이야기를 찾기 어렵다. 그런 건 OTT 한켠에서 찾아야 한다”며 “이런 게 극장을 찾게 되는 하나의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짚었다.
좋은 작품이 나와도 치솟은 티켓 가격에 극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게 쉽지 않은 요즘이다. 이에 대해 장항준 감독은 “티켓 가격이 너무 가파르게 올라 극장이 위축된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극장 쪽 이야기를 들어보면 팬데믹 동안 누적 적자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났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인들은 많은 사람이 극장을 찾지 않게 될 걸 아니까 티켓 가격이 오르지 않길 바랐다. 그러나 극장이 당장 어렵다는데 우리가 티켓 가격을 일방적으로 조정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환경이 안타까웠다”고 덧붙였다.
이에 송은이는 “개봉 회의를 하며 티켓 가격을 내리는 것을 의논하기도 했다. 제작자 입장에서 더 많은 사람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가격에 영화를 보면 좋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업계에 여러 관계가 있더라”라며 “그래서 극장을 찾는 관객에서 다른 재미를 주고자 GV 같은 이벤트를 많이 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은 ‘오픈 더 도어’의 관전포인트를 짚었다. 장항준 감독은 “우리가 살면서 몇 개 정도의 문을 지나칠지 생각해보면 최소 수만 개일 거다. 수만 개의 문에 직면하는 게 우리의 인생을 바꾸는 선택의 순간이 될 수 있다. 영화 속 인물들이 어떤 욕망으로 문을 열게 되는지 또 어떻게 파멸에 이르게 되는지 인물에 초점을 맞춰 봐달라”고 당부했다.
송은이는 “답을 주는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없는 시간을 쪼개서 극장에 오는 관객이 오랜 시간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영화인 건 틀림없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나눌 대화거리가 있는, 어떤 질문을 던지는 영화이기 때문에 보고 나면 큰 울림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