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유는 처음 받아본 것 같다. 팬분들께서 그렇게 평가해 주신 것이니 당연히 인정한다. 역시 프로는 냉정하다. 내년 마지막 경기 때는 박수받을 수 있게 노력하겠다."
이승엽 두산 베어스 감독이 1년 전 섰던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왔다.
두산은 31일부터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퓨처스(2군)리그 구장인 베어 스파크에서 마무리 훈련에 들어갔다. 지난 19일 와일드카드(WC) 결정전에서 패배로 가을야구를 마친 후 이뤄지는 첫 일정이다.
마무리 훈련은 이승엽 감독이 두산에 와 진행한 첫 일정이었다. 지난해 10월 부임한 이 감독은 정규시즌 9위에 그친 팀을 끌어올려 보기 위해 베어스파크에서 대규모 마무리 훈련을 진행했다. 어린 선수들을 눈으로 직접 보고, 주전 경쟁에 참여하도록 독려하는 차원이 컸다.
1년이 지나 다시 이천에 돌아왔다. 이 감독의 시도는 절반은 통했고 절반은 그러지 못했다. 정규시즌 5위로 가을야구 복귀까진 성공했다. 다만 이 감독이 원한 어린 선수들의 활약보다는 기존 베테랑 활약에 의존도가 높았다.
31일 이천에서 취재진과 만난 이승엽 감독은 "WC가 끝난 후 기분 전환도 해보려 했지만, 잘 되진 않는다"며 "1년 전 이천에 왔을 때는 기대감도 있고, 불안감도 있었다. 1년을 해보니 익숙해진 느낌은 없지만 5위라는 결과에 마음이 편하진 않다. 책임감이 조금 더 생긴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승엽 감독은 "팀에 새 얼굴이 나와야 경쟁도 되고 기존 선수들도 긴장감이 생겨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다"며 "기대했던 김대한, 김민혁 등 야수진이 생각만큼 올라오진 못했다. 선수들의 퍼포먼스, 경기력을 활용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당연히 감독의 책임"이라고 했다. 이어 "1년 동안 선수들의 성향, 능력치를 봤다. 올가을, 내년에 성장할 수도 있다. 예상하지 못했던 선수가 기량이 오를 수도 있다"고 젊은 선수들을 독려했다.
'이승엽 스타일'이 큰 틀에서 바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승엽 감독은 올 시즌 작전야구 중심의 '스몰볼'을 추구한다고 논란을 산 바 있다. 다만 이 감독은 선 굵은 야구를 하기엔 팀 전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팀 전력에 따라 달라질 문제다. 강공을 선택해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이 있으면 빅 볼로 바뀔 수 있다"며 "우리 팀 타격은 팀 타율 9위에 타점 최하위다. 한 점을 내기 어렵다. 필요하다면 1점 차 승부에서는 세밀한 야구도 해야 한다. 상황에 따라, 전력에 따라, 상대에 따라, 투수에 따라 달라질 문제"라고 설명했다.
아직은 선수단 구성이 먼저다. 두산은 팀 내 홈런 1위(21개) 양석환과 필승조 홍건희(22세이브 5홀드) 등이 FA(자유계약선수) 권리를 얻는다. 이 감독은 "둘 다 잡으면 좋겠다"고 웃으며 "그런 선수들을 구하긴 쉽지 않다. 팀 후배나 동료들에게도 굉장한 신임을 받는다. 구단과 이야기를 나누진 않았지만, 다 필요한 선수들"이라고 말했다.
이승엽 감독은 지난 정규시즌 마지막 홈 경기 때 홈팬들에게 야유를 들었다. WC 패배 후에는 구단 사과문까지 올려야 했다. 이 감독은 "창원에서 팬분들의 응원을 보며 이기고 싶었으나 이루지 못해 죄송했다"며 "야유는 처음 받아본 것 같다. 팬분들께서 그렇게 평가해 주신 것이니 당연히 인정한다. 역시 프로는 냉정하다는 걸 느꼈다. 내년 마지막 경기 때는 박수받을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