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미국 메이저리그(MLB) 최대 화두는 탬파베이 레이스였다. 개막 전만 하더라도 크게 주목받지 못한 탬파베이는 아메리칸리그(AL) 동부지구 우승으로 세간을 놀라게 했다. 돌풍의 진원지는 '불펜'이었다.
케빈 캐시 탬파베이 감독은 선발의 약점을 불펜으로 만회했다. 투구 유형, 팔 각도, 릴리스 포인트 등 불펜 투수들의 각기 다른 특징을 활용, 타자에게 혼란을 줬다. 오른손 사이드암스로 라이언 톰슨, 왼손 사이드암스로 애런 루프, 오른손 스리쿼터 존 커티스, 2m8㎝ 장신 애런 슬레저스, 파이어볼러 디에고 카스티요 등을 적극적으로 교차 투입했다. 카일 스나이더 투수 코치는 당시 "선수들 모두 잠재력을 극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KBO리그에선 탬파베이의 전술이 쉽지 않다. 워낙 선발 비중이 높고 불펜 뎁스(선수층)도 얇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LG 트윈스가 한국시리즈(KS·7전 4승제) 2차전에서 보여준 운영은 눈길을 끌기 충분했다. 이날 LG 선발 최원태가 3분의 1이닝 만에 강판당했다. 1회부터 빠르게 불펜이 가동됐는데 무려 7명의 투수가 8과 3분의 2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0-4로 뒤지던 경기를 5-4로 뒤집은 원동력이었다.
경기 뒤 포수 박동원의 얘기가 흥미로웠다. 박동원은 "(투수의 스타일이 다 다른 게) 강점이다. (타자 입장에선) 계속 새로운 투수를 만나다 보니 그렇게 쉽지 않은 상대가 된다고 생각한다"며 "더 좋았던 건 투수마다 직구(포심 패스트볼) 다음으로 잘 던지는 변화구가 다 다르다는 거다. 그래서 구종을 선택하는 게 좋았다"고 말했다. 야구통계전문업체 스포츠투아이에 따르면, KS 2차전 두 번째 투수 이정용은 오른손 정통파이면서 직구와 포크볼, 슬라이더를 섞는다. 세 번째 투수 정우영은 오른손 사이드암스로로 직구가 아닌 투심 패스트볼의 비중이 77.4%에 이른다. 두 선수는 투구 유형은 물론이고 구종 레퍼토리까지 다르다. 네 번째 투수 김진성은 직구와 포크볼이 주 무기인 베테랑.
뒤이어 나온 백승현과 유영찬은 직구와 슬라이더를 주로 던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릴리스 포인트가 다르다. 백승현이 투 피치에 가깝다면 유영찬은 포크볼 비중도 16.9%로 낮지 않다. 올해 KBO리그에 데뷔, 전력 노출이 많지 않다는 점도 유영찬의 강점이다. 8회 등판한 함덕주는 왼손 투수로 체인지업을 섞는다. 디셉션(투구 시 공을 숨기는 동작)도 뛰어나다. 마무리 투수 고우석은 힘으로 타자를 윽박지르는 파이어볼러다.
'7인 7색' 필승조가 각기 다른 모습으로 타자를 상대하니 KT 타자들이 쩔쩔맸다. 투수마다 투구 수 30개를 넘지 않는 선에서 톱니바퀴처럼 불펜 운영이 맞아떨어졌다.
염경엽 LG 감독은 불펜을 확신하지 못했다. 선발이 약한 팀 사정상 불펜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문제는 경험이었다. 염 감독은 KS 2차전에 앞서 "(불펜의) 양은 많지만, (큰 경기를) 경험한 투수가 적다"며 "첫 경기(등판)에서 실패하면 선수도 부담스럽고, 그러면 카드 하나가 사라지는 거"라고 우려했다. 2차전 불펜 릴레이를 통해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었다. 최상의 결과로 선수단 분위기는 고조됐다.
탬파베이는 월드시리즈(WS) 우승 문턱은 넘지 못했다. 29년 만에 KS 우승에 도전하는 LG는 다를까. 염경엽 감독은 KS 2차전이 끝난 뒤 "굉장히 좋은 경험 해주면서 (선수들이) 감독에게 많은 카드를 만들어줬다"고 반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