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경엽 LG 트윈스 감독은 KT 위즈와의 한국시리즈(KS·7전 4승제)에서 고정 라인업을 운영했다. '부상자가 나오지 않으면 그대로 간다'는 계획을 그대로 실행한 것이다. 왼손 타자가 극단적으로 많은 팀 상황을 고려하면 부담이 작지 않았는데 고민을 덜어준 건 4번 타자 오스틴 딘(30)이었다.
염경엽 감독은 KS 리드오프로 홍창기와 박해민을 내세웠다. 두 선수 모두 좌타자. 3번 김현수까지 포함하면 1~3번 타자가 모두 왼쪽 타석에 들어섰다. 4번 오스틴이 오른손이지만 5번 오지환과 6번 문보경이 다시 왼손 타자.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9명의 타자 중 '우타자'는 오스틴과 7번 박동원 둘 뿐이었다. 특히 1~6번 타순까지 왼손 타자가 5명이라는 걸 고려하면 오스틴의 어깨가 더욱 무거웠다. '좌편향 타선'의 중심을 잡아줘야 했다.
오스틴은 기대 이상으로 역할을 해냈다. 5차전까지 KS 타율 0.350(20타수 7안타) 1홈런 5타점 맹타를 휘둘렀다. 타격 슬럼프를 겪은 KT 오른손 중심 타자 박병호와 앤서니 알포드를 압도했다. 특히 1승 1패에서 맞이한 3차전에서 선제 스리런 홈런을 터트렸다. 천적 왼손 투수 웨스 벤자민을 만난 LG는 고전이 예상됐지만, 오스틴 덕분에 경기를 수월하게 풀어나가 최종 승리했다. 시리즈의 향방을 좌우한 전환점 중 하나였다.
윤희상 KBS N 스포츠 해설위원 "벤자민을 잡아야 하는 LG였다. 벤자민은 LG 왼손 타자에 유독 강했는데 오른손 오스틴이 벤자민의 몸쪽 공을 하나 때려낸 게 컸다. 공 하나 싸움에서 이겼다"며 "좌타자 일색인 LG 타선에서 오스틴이 보여주는 안정감과 콘택트 능력이 크다. KS에서도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LG는 최근 몇 년 동안 외국인 타자 잔혹사를 경험했다. 지난겨울에는 아브라함 알몬테의 계약이 메디컬 테스트 문제로 철회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1순위 영입 후보가 일본 프로야구(NPB)로 향하면서 스텝이 꼬이기도 했다. 대체 자원 오스틴을 향한 기대는 크지 않았다. 오스틴의 연봉은 40만 달러(5억2000만원)로 프로야구 10개 구단 외국인 타자 중 최저.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자 '복덩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았다.
정규시즌 성적이 139경기 타율 0.313(520타수 163안타) 23홈런 95타점.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이 5.10으로 KBO리그 전체 5위이자 외국인 선수 1위, 결승타는 리그 공동 1위(14개)였다. 엄청난 파이팅으로 더그아웃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지난겨울 자유계약선수(FA)로 팀을 떠난 베테랑 오른손 채은성(33·한화 이글스)의 빈자리를 채웠다는 게 중요하다.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한 뒤 염경엽 감독은 "은성이는 자기 것을 해내는 커리어(통산 139홈런)를 갖춘 선수인데 그런 선수가 하나 빠져나가는 건 크다. 오스틴이 역할을 해주면서 은성이의 자리를 채워줬다"며 "오스틴이 없었다면 은성이의 공백이 엄청나게 컸을 텐데 잘해줬다"고 만족스러워했다. 오스틴의 활약은 정규시즌에 제한하지 않았다. 가을야구에서도 유효했다. 그 결과 KS 우승을 이끈 사상 첫 외국인 타자로 이름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