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LG 트윈스와 KT 위즈의 한국시리즈(KS·7전 4승제) 분수령은 3차전으로 기억될 거다. KT는 4-5로 뒤진 8회 말 공격에서 황재균의 동점 적시 2루타와 박병호의 역전 투런 홈런으로 7-5 리드를 잡았다. 그때만 하더라도 다시 한번 KT의 '마법'이 통하는 듯했다. 하지만 9회 초 2사 후 LG 오지환에게 역전 스리런 홈런을 맞고 7-8로 패했다. 시리즈 전적 1승 1패에서 승패를 나눠 가진 두 팀의 분위기는 상반됐다.
KS 3차전의 승부처는 9회 말 오지환이 아닌 바로 직전 오스틴 타석이었다. 2사 1루에서 오스틴을 상대한 투수 김재윤과 포수 장성우는 초구부터 4구까지 모두 빠른 공만 던져 1볼-2스트라이크 유리한 볼카운트를 선점했다. 포스트시즌(PS)의 무게감은 정규시즌과 달라 변화구로 상대를 탐색하며 신중하게 선도할 법한데, 장성우는 빠른 공 위주의 공격적인 리드로 일관했다. 3차전에서 KT 투수들의 포심 패스트볼(직구) 비율은 58.5%, 초구는 64.3%였다. 특히 9회 말 등판한 김재윤이 오스틴의 4구째까지 총 11구 연속으로 포심만 던진 건 혀를 내두를 정도로 과감했다. 그런데 오스틴의 5구째부터 3구 연속 슬라이더를 던졌다.
4구째 스트라이크존 바깥쪽 속구가 파울이 되자 타이밍이 맞아 나간다고 판단한 걸로 보였다. 김재윤의 포심이 모두 높게 들어온 것도 떨어지는 슬라이드를 던지게 한 요인이었을 거다. 하지만 오스틴의 배트를 유인할 정도의 예리함이 없었다. 오스틴에게 던진 3구 연속 슬라이더가 최선의 수였는지 의문이 남는다. 2구 연속 변화구를 던졌을 때 타자는 '다음 공은 속구'로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장성우가 7구째 결정구로 슬라이더를 요구한 근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KT는 2점 앞선 상황이었다. 설령 오스틴에게 홈런을 맞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져도 동점이 될 뿐이다. 즉, 6구 또는 적어도 7구는 속구로 좋든 나쁘든 결과를 냈어야만 했다.
현실은 3구 연속 슬라이더로 볼넷. 이어 오지환을 상대로 한 초구는 포크볼을 던졌지만, 전혀 제구가 되지 않았다. 장성우가 마운드에 올라가며 템포를 끊어주는 타이밍은 좋았지만, 김재윤이 다음에 던질 공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스트라이크를 무조건 잡아야 하는 상황이라, 제구가 안 되는 슬라이더도 포크볼도 던질 수 없는 외통. 양 팀 선수도, 벤치도, 관중도 누구나 김재윤의 다음 공은 속구라고 예상할 수 있었다. 그 가운데 쏠린 속구에 오지환의 배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매섭게 돌았다.
7-8로 역전당한 KT는 9회 말 1사 만루 찬스를 잡았다. 중요한 장면은 배정대 타석이었다. LG는 1사 1·2루에서 고우석을 마운드에서 내리고 이정용을 올렸다. 그런데 이정용의 초구 포크볼은 홈 플레이트 앞에서 크게 튀는 폭투. 주자가 모두 진루해 1루가 비자 배정대는 자동 고의사구로 걸어 나갔다.
이정용은 앞선 두 번의 KS 등판에서 실점은 없었지만, 안정된 투구와는 거리가 있었다. 이날도 폭투를 던진 데다가 밀어내기의 위험성도 있어 스트라이크를 선행하는 투구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즉, 빠른 공을 던져야 하는 외통수에 걸렸다. 그런데 초구로 가운데 쏠린 빠른 공이 들어왔지만, 김상수는 가만히 지켜봤다. 추운 날씨에 배트도 용기도 얼어붙은 듯했다. 결국, 2구 슬라이더를 받아쳐 투수 앞 땅볼에 그쳤다. 투수-포수-1루수로 이어지는 병살타로 경기는 끝났다. 빠른 공을 노려 쳐야 할 상황에서 오지환은 거침없었고, 김상수는 망설였다. 결과적으로 이 차이가 경기 승패는 물론이고 KS 결과(LG 우승)를 좌우했다.
야구 칼럼니스트
야구 전문 칼럼니스트로 네이버에서 아마야구 등을 다루는 '야반도주'를 공동 운영하고 있다. 기무라 고이치 기자가 네이버에 연재한 '야큐리포트'를 번역했으며, 김성근·김인식 감독 등과 함께 쓴 '감독이란 무엇인가'를 비롯해 '메이저리그 가이드북', '프로야구 크로니클', '킬로미터', '포수 교본' 등 다수의 야구 서적을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