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열린 2023 KBO 시상식. 공식 행사를 마친 뒤 단상 위에서 수상자 사진 촬영이 진행됐다. 최우수선수 에릭 페디(NC 다이노스)는 옆자리 선수에게 "언젠가 네가 이 상을 탔으면 좋겠다"고 귓속말을 속삭였다.
페디는 27일 웨스틴 조선 서울에서 열린 2023 KBO 시상식에서 총 유효표 111표 중 102표를 얻어 최고 영예인 MVP를 수상했다. 두 번째로 많이 득표한 타점·홈런왕 한화 이글스 노시환(6표)을 가볍게 제쳤다. 페디는 "믿기지 않는 성적을 기록했다. 내 야구 인생에서 올해만큼 대단한 시즌은 없을 것"이라고 감격해했다.
마침 이날 신인상 수상자는 한화 이글스 문동주였다. 문동주는 올해 23경기에 출전해 118과 3분의 2이닝을 책임지며 8승 8패 평균자책점 3.72를 기록했다. 구단의 투구 이닝 관리 속에 규정 이닝(144이닝)을 채우진 못했지만, 팀 내 최다승 2위, 최다이닝 2위를 기록했다. 또한 대표팀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페디와 문동주는 올 시즌 특별한 인연이 있다.
문동주(한화 이글스)가 시즌 도중 외국인 스카우트를 통해 페디에게 "만나보고 싶다"고 요청했다. 페디는 구단의 허락을 맡은 뒤 "별문제가 없다"는 답을 받고 기꺼이 수락했다. 두 사람은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눴다. 문동주가 궁금해하는 야구 관련 다양한 이야기에 페디는 성심껏 답했다. 페디는 당시 만남 직후 "내가 알려준 (스위퍼 등) 사항을 문동주가 그라운드에서 잘 선보인다면 그만큼 리그가 성장하고, 더 재밌는 야구가 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페디와 문동주는 유니폼이 아닌 정장 차림 속에 리그 최고 선수와 신인 자격으로 시상식에서 만났다.
페디는 "문동주와 이런 자리를 함께해 좋았다. 아까 무대에서 함께 사진을 촬영하며 귓속말로 '지금 내가 들고 있는 이 상을 나중에 네가 들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문동주가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더라. 매우 뜻깊은 하루였다"고 돌아봤다.
플레이오프 탈락 후 지난 8일 미국으로 돌아간 페디는 시상식 참석을 위해 26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최근 대부분 외국인 수상자는 시상식에 불참해 영상 메시지로 소감을 대체했다. 반면 이날 시상식에 참석해 자리를 빛낸 페디는 2박 3일 일정 후 28일 곧바로 출국한다. 그는 "수상 희망을 안고 참석했다. 상을 타 행복하다"고 말했다.
페디는 올해 30경기에 등판해 20승 6패 평균자책점 2.00, 탈삼진 209개를 올렸다. 다승, 탈삼진, 평균자책점을 석권하며 선동열(4차례) 류현진(2006년) 윤석민(2011년)에 이은 역대 4번째로 투수 부문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했다. 1986년 해태 선동열(24승·탈삼진 214개) 이후 37년 만이자 역대 다섯 번째 '시즌 20승·200탈삼진'을 동시 달성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올해 처음 도입한 수비상에서도 감독과 단장, 코치가 꼽은 투수 부문 수상자(94.91점)로 뽑혔다. 이날 총 5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린 페디는 "한 시즌 이런 마무리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정말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페디는 다음달 11일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 수상도 유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