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은 최근 부상자들로만 선발 11명을 꾸릴 수 있게 됐다. 징계로 인한 결장까지 합하면 수는 더 늘어난다. 더군다나 오는 1월에는 아시아, 아프리카 대륙 대항전이 열린다. 엔지 포스테코글루 감독의 시름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영국 매체 스카이스포츠는 29일(한국시간) 최근 부상을 입어 쓰러진 미드필더 로드리고 벤탄쿠르가 내년 2월까지 결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사유는 발목 인대 파열이다.
벤탄쿠르와 토트넘 입장에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다. 벤탄쿠르는 지난 26일 애스턴 빌라와의 2023~24시즌 EPL 13라운드 경기에서 289일 만에 선발 복귀전을 치렀다. 지난 2월 십자인대 부상 이후 긴 재활 터널을 지나 마침내 선발 출전했다. 하지만 전반 27분 매티 캐시로부터 강한 태클을 당해 쓰러졌다. 발목을 강하게 가격당한 장면이 고스란히 중계 화면을 통해 전해졌다. 벤탄쿠르는 재차 그라운드를 밟았지만, 결국 교체돼 임무를 마쳤다. 팀은 지오바니 로 셀소의 선제골에도 내리 2골을 내주며 역전패했다. 토트넘은 첫 10경기서 8승 2무를 기록한 뒤, 최근 3연패에 빠져 5위까지 추락했다.
경기 뒤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훌륭한 태클은 아니었다. 벤탄쿠르는 경기를 잘 시작했다고 생각했고, 덕분에 우리가 좋은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정말 창의적인 선수다. 하지만 우리가 원치 않았던 부상이고, 매우 실망스럽다”고 고개를 저었다. 결국 발목 인대 파열 진단이 나와 다시 한번 그라운드를 떠나게 됐다.
EPL 선수들의 부상 소식을 다루는 프리미어리그인저리닷컴에 따르면, 토트넘은 벤탄쿠르의 부상으로 시즌 11번째 부상자를 맞이했다. 뉴캐슬 유나이티드와 함께 공동 2위로, 브라이턴 앤 호브 알비온(부상 12회)과 함께 톱3를 구축했다.
벤탄쿠르의 부상 이탈이 뼈아픈 점은 토트넘의 12월 일정 탓이다. 토트넘은 당장 12월 4일 맨시티(원정) 8일 웨스트햄(홈) 11일 뉴캐슬(홈)으로 이어지는 3연전을 앞뒀다. 그런데 맨시티전 출전이 ‘불가능한’ 선수로만 선발 명단을 꾸릴 수 있을 정도다. 히샤를리송(사타구니) 라이언 세세뇽(햄스트링) 마노르 솔로몬(반월판) 제임스 매디슨(발목) 파페 사르(근육) 이반 페리시치(무릎) 미키 판 더 펜(햄스트링) 애슐리 필립스(발목) 크리스티안 로메로(퇴장 징계) 알피 화이트맨(발목) 등 1군 선수 11명이 맨시티전 출전이 불투명하다. 말 그대로 스쿼드가 ‘초토화’됐다.
일부 선수들은 새해엔 복귀할 것으로 전망되나, 이 역시 좋은 소식은 아니다. 당장 내년 1월에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아프리카축구연맹(CAF) 아프리카 네이션스컵(AFCON)이 열린다. 이 기간 ‘주장’ 손흥민은 아시안컵에, 이브 비수마와 사르는 AFCON으로 향할 가능성이 크다. 연이은 부상자로 3연패에 빠진 토트넘이 진정한 시험대에 올랐다는 시선이 잇따른다.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한 출발을 알렸던 토트넘인 만큼 이번 추락이 더욱 눈에 띈다. 토트넘은 개막 후 리그 10경기서 8승 2무 무패 행진을 달렸다. 최대 고비였던 아스널·리버풀을 차례로 격파했고, 극장 승리와 무승부를 쌓으며 1위 팀다운 결정력을 뽐내기도 했다.
당장 10월까지만 해도 영국 스카이스포츠, 글로벌 스포츠 매체 디 애슬레틱, 축구 통계 매체 옵타 등은 토트넘의 상승 요인으로 ▶스트라이커 손흥민 ▶이적생 활약 ▶포스테코글루 감독의 전술 등을 꼽았다.
먼저 매체가 주목한 건 손흥민의 결정력이었다. 그는 통계상으로도 뛰어난 골 결정력을 자랑한 선수 중 하나다. 옵타는 지난달 초 “지난 6번의 EPL 시즌에서 지속적으로 기대 득점(xG·득점할 확률 혹은 총합) 이상 골을 넣은 건 손흥민뿐이다. 그는 xG 대비 23골을 더 넣었다”면서 그의 탁월한 결정력을 조명했다. 영국 스카이스포츠 역시 손흥민의 전반기 활약에 대해 “손흥민의 역할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여전히 빠르지만, 30대에 접어들며 중앙으로 이동할 준비가 됐다. 양발 슈팅에 능한 손흥민 같은 선수들에게 자연스러운 진화 과정”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다만 손흥민의 활약이 더욱 빛날 수 있던 요인으로는 이적생 매디슨·판 더 펜·굴리엘모 비카리오의 합류 역시 언급된다. 매디슨은 올 시즌 부상으로 이탈하기 전까지 리그 11경기에서 3골 5도움을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토트넘은 그를 영입하기 위해 4630만 유로(약 660억원)라는 거액을 투자했는데, 전혀 아깝지 않다는 평이다. 특히 매디슨은 손흥민과도 3골을 합작하며 환상의 호흡을 보여줬다. 지난 9월 열린 아스널과의 북런던 더비에서는 손흥민의 2골을 모두 도우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하지만 지난 7일 무패 행진이 끝난 첼시와의 경기 도중 부상으로 이탈했다. 정확한 복귀 날짜는 알려지지 않았다.
로메로와 좋은 호흡을 보여준 판 더 펜 역시 같은 경기에서 햄스트링 부상 탓에 쓰러졌다. 통상 햄스트링 부상은 2~4주 정도 이탈하나, 판 더 펜의 경우 정도가 심해 2월 중 복귀로 예정돼 있다. 판 더 펜과 로메로(퇴장)가 빠지자, 토트넘은 벤 데이비스·에릭 다이어·에메르송 로얄로 중앙 수비진을 꾸렸지만 결과는 매 경기 실점으로 이어졌다.
벤탄쿠르가 빠진 중원 역시 불안 요소가 공존한다. 올리버 스킵·피에르-에밀 호이비에르는 여전히 폼을 끌어 올리지 못한 상태다. 유일하게 제 몫을 한 건 로 셀소뿐이다. 시즌 내내 4-2-3-1 전형을 내세운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새로운 변화를 가져갈 수 있을지도 관전 요소다.
한편 팀이 3연패에 빠지자, 주장 손흥민은 경기 뒤 “우리가 원한 결과가 아니었다.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득점을 만드는 게 쉽지 않았다”라고 돌아본 뒤 “준비가 덜 됐기 때문에 오프사이드가 나왔다. 팀에 도움을 주지 못해 많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며 이례적으로 사과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당시 손흥민은 3번이나 골망을 흔들었으나, 모두 오프사이드로 취소돼 아쉬움을 삼켰다.
김우중 기자 ujkim50@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