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지(17·서울시장애인체육회)는 지난해 혜성처럼 등장했다. 2022년 2월 제19회 전국장애인동계체육대회(이하 동계체전)에서 파라노르딕스키(크로스컨트리스키+바이애슬론) 부문 3관왕을 차지하며 신인상을 받은 그는 10월 처음 출전한 전국장애인체육대회(이하 하계체전)에선 수영으로 3관왕에 오르며 또 하나의 신인상을 추가했다. 장애인 스포츠 역사상 최초로 동·하계 장애인 전국체전에서 모두 신인상을 차지한 주인공이 됐다.
2023년엔 일취월장한 실력으로 체전에서 더 많은 메달을 수확했다. 2월 열린 동계체전에서 파라노르딕스키 4관왕으로 대회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된 김윤지는 11월 하계체전에서 수영 4관왕에 올랐다. 동·하계 전국체전 MVP 싹쓸이는 실패했지만, 불과 고교 2학년에 동·하계 체전을 섭렵하며 스타 탄생을 예고했다.
척수 장애를 갖고 태어나 하체를 쓸 수 없는 김윤지는 재활 차원에서 세 살에 수영을 시작했다. 여덟 살 때 본격적으로 입문, 15년 동안 물살을 갈랐다. 인생의 대부분을 수영과 함께한 셈이다. 노르딕스키는 중학교 3학년 때 시작했다. 이승복 파라노르딕스키 국가대표 감독의 권유로 입문해 재능을 펼친 그는 수영과 노르딕스키를 병행하면서 2023년 태극마크까지 달았다.
여름엔 물살을, 겨울엔 눈길을 종횡무진 중이다. 지난해 12월부터 3월까지 핀란드와 스웨덴, 미국 등을 오가며 노르딕스키 국제대회에 출전한 그는 5월 말 장애인 수영 국가대표에 발탁돼 경기도 이천 대한장애인체육회 훈련원에서 여름을 보냈다. 10월 열린 항저우 장애인아시안게임(APG)을 마친 뒤엔 11월 하계체전까지 소화했다. 지금은 강원도 평창에서 다시 파라노르딕스키 새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눈코뜰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창 학업과 운동 사이 고민해야 할 나이, 해외와 훈련원, 학교를 오가는 일정이 벅차지 않을까. 김윤지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학교 책상에 앉아본 시간이 얼마 없는 것 같다”며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는 “예전엔 공부 욕심도 있었지만 지금은 운동에 집중하고 있다”라면서 “(강행군이) 힘들다기보단 재밌다. 시간이 흐를수록 성장하는 뿌듯함을 즐긴다”라며 활짝 웃었다.
힘든 만큼 성과도 많이 거뒀다. 지난해 12월 핀란드 부오카티에서 열린 2023 FIS(국제스키연맹) 파라노르딕스키 월드컵에서 국제대회 데뷔전을 치른 김윤지는 은메달 2개와 동메달 2개를 따내며 환호했다. 수영 대표로 나선 항저우 APG에선 메달 획득에 실패했으나, 국가대표의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개인 기록을 8초 이상 단축(자유형 100m 기준)할 만큼 기량이 일취월장했다.
수영과 노르딕스키는 쓰는 근육 자체가 다르다. 수영은 이두근을, 노르딕스키는 삼두근을 쓴다. 종목을 바꿀 때마다 2주 이상의 피나는 적응 훈련을 거쳐야 한다. 그래도 김윤지는 웃었다. 그는 “수영을 하면 심폐지구력이 좋아져서 장기전인 노르딕스키에 도움이 된다. 반대로, 노르딕스키를 하면 근육이 강화돼 단기전인 수영에서 폭발적인 힘을 낼 수 있다”며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는 만큼, 장애인 스포츠 전반적으로 동·하계 스포츠를 병행하는 선수는 많지 않다. 사이클 APG 금메달리스트이자 2018 평창 동계 패럴림픽 노르딕스키 국가대표인 ‘철의 여인’ 이도연(51)이 있고, 평창 크로스컨트리 금메달리스트 신의현(43)도 하계 사이클을 병행한다. 그러나 국제대회에서 두 종목 모두 두각을 드러내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 김윤지가 차세대 주자로서 가능성과 미래를 밝히는 중이다.
김윤지의 롤모델도 바로 이들이다. 그는 "평창에서 훈련 중인데, (신)의현 삼촌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한국 동계 패럴림픽 최초 금메달리스트 아니신가. 먼저 다가와주셔서 많이 가르쳐주신다. 항상 감사하다"라고 전했다.
김윤지는 “언젠가 동·하계 패럴림픽에 모두 출전하는 것이 목표다. 멈추지 않고 먼 곳을 바라보는 선수가 되고 싶다”라며 각오를 다졌다. “언젠간 한 종목에 집중하겠지만, 지금은 시원한 눈과 물 위에서 모두 뛰는 것이 즐겁다. 더 열심히, 즐겁게 운동하겠다”라며 환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