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서 점점 가족의 존재감을 느끼게 돼요.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걸 보면서 ‘아, 나는 가족주의자고 가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구나’ 하게 됐어요.”
모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3일의 휴가’로 관객들과 만나고 있는 육상효 감독을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3일의 휴가’는 세상을 떠난 엄마가 저승 백일장에서 수상, 이승으로 3일간 휴가를 오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김해숙과 신민아가 모녀로 등장, 한 명이 세상을 떠나고 난 후에야 서로에 대한 오해를 풀고 마음속으로 화해하는 과정을 그려냈다. 앞서 ‘나의 특별한 형제’로 가족에 대한 섬세한 연출을 보여줬던 육상효 감독이 또 한 번 장기를 펼쳤다.
“‘나의 특별한 형제’에선 피가 안 통한 사람들이 나누는 가족애를 그렸다면 ‘3일의 휴가’에서는 같은 핏줄인 사람들이 서로에게 갖고 있는 선의 같은 것을 담고자 했어요. 사실 영화에는 서로 상처와 오해를 주는 엄마와 딸이 나오죠. 피를 나눴다고 해서 모든 장면이 용서가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만 우리는 다시 돌아갈 수 있을 정도의 잘못을 저지르고, 또 용서를 하면서 살아가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한 거죠.”
가족애라는 보편적인 감성을 담고 있기에 영화는 많은 이들과 공감대를 자아낼 수 있을 듯하다. 언론 시사회 때 영화를 본 배우들이 기자회견에 앞서 눈물을 보였을 정도다. 육 감독은 “강기영 배우까지 엄청 울더라. 무슨 짐승 소리 같은 걸 낼 정도로 울었다”고 이야기했다.
육상효 감독 역시 시나리오를 보고 작품 연출을 결정했다. 그는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종이에 눈물을 뚝뚝 떨궜을 만큼 슬펐다”고 이야기했다. 호흡을 몇 번이나 가다듬으면서 몇 시간에 걸쳐 시나리오를 읽었다. 그는 “늦게 낳은 딸이 있어서 그런지 딸이 나오는 장면들이 많이 와닿더라”고 했다.
아이를 낳아 기르며 느낀 건 부모가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 부모 역시 사람이고, 부모라는 입장에 처음 서 보기에 어쩔 수 없이 실수를 하게 된다는 것. 그래서 ‘3일의 휴가’에서 진주(신민아)가 엄마 복자(김해숙)를 떠올리며 “엄마도 어쩔 수 없었겠다”고 하는 장면이 특히 와닿았다.
“세상 모든 엄마, 아빠에겐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선택이 있는 것 같아요. 설령 그게 자식에게 해롭거나 나쁘게 작용했더라도요. 그래서 부모를 이해하는 최고의 말은 ‘어쩔 수 없었구나’ 그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3일의 휴가’의 가장 큰 장점은 모녀, 가족이라는 이야기를 거창하게 하지 않는다는 것. 대단한 드라마가 없는, 평범한 모녀가 시종일관 러닝타임을 담백하게 채운다. 자신이 헌신했던 백반집의 식기를 보는 엄마, 엄마에게 버림받았다는 생각을 마음 한쪽에 간직하며 산 딸, 가족의 부재를 채워주는 이웃의 존재. 그런 작고 소중한 이야기들이 쌓여 말미에는 결국 눈물을 흘리게 된다.
“엄마와 딸 사이엔 오해가 쌓이게 마련이고, 서운하고 후회되는 순간도 종종 생기죠. 특수하지 않은, 평범한 모녀의 이야기로도 충분한 감정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배우들 역시 요란하지 않게, 정확한 연기를 해줬다고 생각해요. 그럴 때 있잖아요. 힘들게 일하다가도 ‘가족이 있다’는 생각만으로 위안이 되는. 가족은 모든 관계의 시작이고, 삶을 탐구하는 길은 곧 가족을 탐구하는 것에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