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인정하는 장군이자 전략가였던 이순신. 하지만 어찌 이순신이라고 아버지의 마음, 남편으로서의 마음이 없었을까. ‘명량’부터 10년을 이어온 김한민 감독의 신작 ‘노량: 죽음의 바다’에서는 장군으로서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이순신의 마지막을 만날 수 있다.
“왜 저렇게 싸우고자 하는 것인가. 죽고 싶거나, 아니면…”
‘노량: 죽음의 바다’에서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정재영)은 일본과 마지막 전투를 준비하는 이순신(김윤석)을 보며 이렇게 말한다. 모두가 “이제 끝난 전쟁”이라고 말하고 있는 상황. 오로지 이순신 장군만이 “완전한 항복을 받아내야 한다”며 싸움을 각오한다.
영화는 여기엔 아버지의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짚는다. 임진왜란에서 왜군에 의해 아들을 잃은 이순신 장군의 고통은 ‘노량: 죽음의 바다’ 초반부터 그려진다.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완전히 기울었던 전세를 뒤집은 용장임에도 아들을 구하지 못 했다는 죄책감은 이순신 장군을 꿈에서도 괴롭힌다.
명나라의 수군들 역시 왜군처럼 돌아갈 고향이 있다. 이만 하면 됐고 이미 이긴 전쟁이니 돌아갔으면 싶다는 마음이 드는 이유다. 진린은 전투를 고집하는 이순신에게 사적 복수의 마음이 있다고 여겨 아들을 죽인 왜군을 잡아 앞에 데려다 놓기까지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이들은 아니다”라며 외면한다.
물론 아들을 잃은 아버지로서 심적 고통이 어찌 없었으랴. 하지만 장군 이순신에겐 그보다 더 큰 명분이 있다. 무려 7년을 조선을 괴롭힌 지독했던 전쟁. 왜군을 끝까지 몰아세워 완전한 항복을 받아내는 것만이 전쟁을 올바르게 끝내는 것이라고 그는 믿는다. 이는 “이 전쟁은 의와 불의의 싸움”이라고 했던 ‘한산: 용의 출현’과 연결되기도 한다.
퇴각로 확보를 위해 명나라에 도움을 구하는 왜군들을 보면 이순신 장군의 마음이 짐작되기도 한다. 이들은 명나라에 도움을 청하면서도 “우리는 항복하러 온 것이 아니라 화친을 하러 온 것”이라고 한다. 항복은 자신의 잘못을 사죄하는 마음을 담고 있는 것이지만 화친은 그렇지 않다. 왜군이 더 이상 전쟁에서 이길 희망을 보지 못 하고 조선을 떠난다 해도 마음이 꺾이지 않았다면 언제든 비슷한 일은 반복될 수 있다. 모두 “이제 그만 하자”고 할 때 홀로 명분의 편에 서 있는 이순신 장군의 외로움이 스크린 밖에까지 느껴져 보는 내내 마음이 웅장하고 고독해지기까지 한다.
전반부가 마지막 전투를 두고 벌이는 조선, 명, 왜의 신경전과 이순신 장군의 고민을 담고 있다면, 후반 100분은 동북아시아 최대 해전이라 손꼽히는 노량해전을 실감나게 구현했다. 김한민 감독이 ‘명량’과 ‘한산: 용의 출현’에서 쌓은 노하우를 대방출한 느낌이다. 저녁 바다에서 벌어지는 전투임에도 인물의 표정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듯 선명하게 스크린에 구현된다. 뿐만 아니라 충무공의 마지막이 된 전투인 만큼 비장한 감정선도 녹아들어 있다. 절로 ‘명량’과 ‘한산: 용의 출현’, ‘노량: 죽음의 바다’까지 이어진 지난 10여년의 여정이 마음 속에 차오른다. 모두가 죽을 것을 알고 임하는 전쟁이기에 비장함이 남다르다.
무려 153분에 달하는 러닝타임. 중간중간 다소 늘어진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루하다는 인상은 없다. 최민식, 박해일에 이어 이순신 장군을 연기한 김윤석을 필두로 정재영, 허준호, 백윤식 등 노련한 배우들의 눈빛 연기가 무척 인상적이다. 12세 관람가. 오는 20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