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은 적중했다. 새로 공개된 넷플릭스 두 작품 모두 평가 면에서는 정크 푸드 취급은 받겠으나 전 세계적으로 많이 볼 작품이고 순위는 높을 것이라고들 했다. 한국 드라마 ‘경성 크리처’ 시즌1과 잭 스나이더의 블록버스터급 SF영화 ‘레벨 문 파트 원’ 얘기이다. 개인적으로 볼 때 둘 다 아주 욕 먹을 작품은 아니다.
극장에서 ‘서울의 봄’과 ‘노량 : 죽음의 바다’ 둘 다를 보고 다른 영화라고는 연말 아이들 용 애니메이션 밖에 없는 처지에서 집에 들어 앉아 시간 때우기 용으로는 제격이다. 아니나 다를까. ‘레벨 문’은 글로벌 1위, ‘경성 크리처’는 6위를 차지하고 있다. 다만 팝콘이 필요하다. 집에서 해 먹는 팝콘은 맛이 없다. 그게 불만일 수는 있겠다.
그 반대로 이들 작품이 IMDB 평점이나 로튼 토마토 관객 지수에서 낮은 점수가 나오고 있는 것도 이해못할 일이 아니다. ‘경성 크리처’에 대해서는 인물의 행동 동기가 불분명 하고 과장돼 있다는 둥, 에피소드가 초반 이후 급격하게 지루하다는 둥의 반응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평가는 수사학이다. 다 하는 말들이다. 작품에 대한 선호가 엇갈릴 때 흔히 나오는 말들이기도 하다. 이 드라마는 총 10분작 중 7회가 공개된 상태이고 진작부터 이야기가 다소 늘어지는 감은 있었지만 초반 흡입력은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그러니 10회까지 마무리를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경성 크리처’의 진짜 문제는 오리지널 대본의 그 ‘오리지날리티’가 극히 낮다는 데에서 찾아진다. 옹성병원이라는 곳(병원 이름이 입에 잘 붙지 않는데 채옥 역의 한소희 직업이 토두꾼이라는 것도 입에 안 붙기는 마찬가지다. 도부꾼의 변형어일까. 드라마는 이름과 장소가 쉬워야 한다. 이런 데서 독창성을 만들려고 하면 안된다)에서 괴수가 나온다는 설정이다.
병원에 왜 괴물이 있는 것일까. 때는 1945년이다. 일제 강점기 말기이다. 그 시대성을 생각하면 괴물의 근원을 짐작할 수가 있긴 하다. 그렇다면 괴물의 실체를 좀더 세밀하게 디자인 했으면 훨씬 좋았을 뻔 했다. 아무리 그런다 한들 ‘경성 크리처’는 ‘킹덤’의 아류라는 느낌에서 벗어 나기가 힘들다. 개인적으로는 박해일 김혜수 주연의 2008년 영화 ‘모던 보이’를 ‘킹덤’ 줄거리로 합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특히 박서준이 맡은 주인공 장태산 캐릭터는 ‘모던 보이’의 주인공 캐릭터와 거의 닮은 꼴이다. 새롭지가 않다. ‘경성 크리처’의 가장 큰 문제는 이렇게 새로운 맛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캐릭터를 가져 오고, 저기서는 괴수 설정을, 또 다른 데서는 시대와 역사적 사건 등을 가지고 와서 마구마구 짜깁기한 느낌을 준다. 반면에 의상, 헤어 등은 너무 현대적이어서 인물들이 이상하게 둥둥 떠다니는 느낌을 준다.
가장 큰 문제는 괴수, 괴물, 크리처의 설정이다. 이제 한국 드라마에서 괴물이나 좀비가 좀 그만 나왔으면 좋겠다는 얘기가 많다. ‘스위트 홈’도 시즌1으로 그쳤어야 했다. 연상호의 ‘지옥’까지가 좋았을 수 있다. 툭하면 나오는 좀비와 옛날 시대 괴물들 이야기는 그만큼 한국의 드라마가 소재 빈곤에 시달리고 있음을 보여 준다. 상상력이 고갈되고 있음의 반증이다. 이럴 때는 오히려 정통의 소프 오페라가 나을 수도 있다. 액세서리가 마땅치 않으면 아예 하지 않는 것도 패션의 역설일 수 있다.
잭 스나이더의 ‘레벨 문 파트 원 : 불의 아이’가 초장부터 다소 두들겨 맞고 있는 것도 바로 그 ‘식상함’ 때문이다.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이 기이한 블록버스터는 ‘스타 워즈’에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그리고 ‘듄’을 섞어서 마구 흔든 칵테일 SF같은 느낌을 준다. 거기에 할리우드가 툭하면 사용하는 인류 메시아와 구원이라는 설정까지 비벼 넣었다. 아이작 아시모프가 창안해 낸 3원칙의 로봇 캐릭터도 잠깐 나왔다 사라지지만 파트2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임을 암시한다.
다 예상이 가능하다. 잠깐 자리를 이동했다 와도 줄거리나 인물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배두나는 뛰어난 검술을 지닌 신비한 동양계 여성 검객으로 나오는데 우주의 독재자 마더 제국의 지휘자 15명을 한번에 처치한 이력 때문에 현상금이 걸려 있고 당연히 쫓기는 신세이다. 배두나는 나름 돋보이지만 캐릭터 설정은 진부하다. 왜 아시아계는 죄 칼을 쥐고 싸우는가. 왜 중동 계통의 캐릭터는 알고 보면 다 왕자 출신인가. 예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드라마나 영화는 그런 대로 볼만은 할 수 있어도 시한부의 운명을 걷는다. 쏟아지는 작품들 속에서 길어야 2년 정도 기억될까 말까가 된다.
이제 사람들이 넷플릭스에서 보고 싶어하는 창작물들, 그렇게 내세우는 ‘넷플릭스 오리지널’들은 ‘조금 더’ 예술적이고, ‘조금 더’ 세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며, ‘조금 더’ 사유할 수 있는, 무엇보다 돈을 흥청망청 쓰기 보다는 알맞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써 가면서도 ‘조금 더’ 그럴 듯하고, ‘조금 더’ 처음 들어 본 얘기인 듯한 영화나 드라마들이다. 넷플릭스는 젊은 기업이고 대체로 30대들의 기획자가 중심인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그 연령의 한계, 곧 신선은 하지만 노련미가 떨어지는 기획의 문제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오히려 신선도가 떨어지고 있는 아이러니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조금 더 광폭의 세계관을 보여 줄 수 있는 창의적인 작품을 만들어야 할 때이다. 물론 그건 그들의 마음이다.
무엇보다 이제 괴수나 좀비는 정말 그만. 우주의 악당도 이제 그만. 현실에 발 붙이고 살기도 힘든 세상이다. 제발 지금 살고 있는 얘기를 더 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