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11월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첫 대회를 개최한 종합격투기 UFC(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이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했다. 서른 살이 된 종합격투기 UFC의 2023년도 다사다난했다. 올해 UFC는 총 41개 이벤트가 열렸다. 그 가운데 메인 대회라 할 수 있는 ‘넘버 시리즈’는 UFC 283부터 UFC 296까지 14차례 치러졌다.
코로나 팬더믹을 떠나보낸 UFC는 다시 글로벌 이벤트로 자리매김했다. 4개 대륙, 8개국, 21개 도시에서 대회가 개최됐다. 1년 동안 UFC에서 열린 공식 경기는 총 520경기였다. 그 가운데 라이트급(70㎏)이 77경기로 가장 많았고, 웰터급(77㎏)이 61경기로 그 뒤를 이어갔다.
‘코리안 좀비’ 정찬성이 활약한 페더급(66㎏·60경기)과 미들급(84㎏·56경기), 밴텀급(61.2㎏·55경기)도 많은 경기가 열렸다. 상대적으로 선수층이 얇은 헤비급과 라이트헤비급은 각각 35경기만 치러졌다. 여성 경기는 스트로급이 35경기로 가장 많이 열렸다. 여성 플라이급(34경기)도 그에 버금갈 정도로 경기가 펼쳐졌다.
타이틀전은 총 19번(잠정 챔피언결정전 제외) 열렸다. 그 가운데 공석인 챔피언 자리를 놓고 맞붙은 결정전은 세 번 있었다. 또한 공식 챔피언과 잠정 챔피언이 대결한 통합타이틀전도 두 차례 열렸다. 한 번은 공식 챔피언(페더급 알렉산더 볼카노프스키)이, 또 한 번은 잠정 챔피언(플라이급 브랜든 모레노)이 통합 챔피언에 등극했다.
챔피언과 도전자가 맞붙은 순수한 타이틀전은 14경기였다. 이 가운데 9번은 챔피언이 방어에 성공했다. 나머지 5번은 도전자가 새로운 챔피언에 등극했다. 가장 최근에 챔피언을 꺾고 새로운 왕좌에 오른 도전자는 지난 9월 UFC 293에서 챔피언 이스라엘 아데산야(뉴질랜드/나이지리아)를 이기고 새 미들급 챔피언에 오른 션 스트릭랜드(미국)였다.
볼카노프스키(페더급·호주), 이슬람 마카체프(라이트급·러시아), 리온 에드워즈(웰터급·영국), 장웨일리(여성 스트로급·중국)는 2023년 내내 챔피언 자리를 지켰다. 반면 여성 밴텀급과 여성 페더급 타이틀은 ‘절대강자’ 아만다 누네스(브라질)의 은퇴 선언 이후 여전히 공석으로 남아 있다.
한 해 동안 UFC에서 열린 520경기 결과를 살펴보면 KO/TKO, 서브미션 등 피니시로 끝난 경기는 261경기였다. 반면 판정으로 승부가 결정된 경기는 248경기였다. 나머지 11경기는 노콘테스트나 실격 처리됐다.
2023년 UFC에서 열린 최고의 경기를 꼽는다면 올해 2월 22일(이하 한국시간) UFC 284 대회에서 열린 마카체프 대 볼카노프스키의 라이트급 타이틀전을 빼놓을 수 없다. 이는 필자는 물론 대부분 격투기 전문매체의 의견이 일치한다.
형식상 마카체프가 챔피언, 볼카노프스키가 도전자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챔피언 대 챔피언’의 대결로 많은 관심을 모았다. 경기 전에는 페더급 챔피언이지만 한 체급 아래인 볼카노프스키가 불리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경기는 치열한 접전으로 펼쳐졌다. 심지어 마지막 라운드에선 볼카노프스키가 마카체프를 쓰러뜨린 뒤 파운딩 펀치를 퍼붓기까지 했다.
결과는 4라운드까지 근소하게 우세한 경기를 펼쳤던 마카체프의 심판전원일치 판정승이었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한 라운드만 더 있었다면 볼카노프스키가 역전 KO승을 거뒀을 것이라 평가했다. 팬들은 체격적인 불리함을 딛고 마카체프를 벼랑 끝으로 몰아붙인 볼카노프스키의 용기와 저력에 박수를 보냈다.
이후 두 선수는 10월 22일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UFC 294’ 대회에서 다시 맞붙었다. 원래 마카체프의 상대였던 도전자 찰스 올리베이라(브라질)가 부상을 당하자 볼카노프스키가 경기 12일 전 대체 선수로 나서기로 했다. 하지만 경기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볼카노프스키는 첫 대결만큼 강하지 못했다. 마카체프는 볼카노프스키를 1라운드에 KO로 누르고 우월함을 확실히 증명했다.
2023년 UFC 최고의 이변 주인공은 스트릭랜드였다. 스트릭랜드는 9월 11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UFC 293’ 대회에서 미들급 절대강자였던 챔피언 아데산야를 판정승으로 누르고 새 챔피언에 등극했다. 경기 전 스트릭랜드의 승리를 점쳤던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관심은 아데산야와 알렉스 페레이라(브라질)의 3차전에 더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언더독’ 스트릭랜드는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특유의 우직함과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아데산야를 궁지에 몰아넣었고, 결국 인생 역전에 성공했다.
UFC 역사상 가장 위대한 파이터이자 늘 논란이 끊이지 않는 존 존스(미국)의 컴백도 2023년 큰 사건이었다. UFC 데뷔 후 사실상 무적 행진을 이어온 존스는 올해 3월 5일 ‘UFC 285: 존스 vs 간’ 대회에서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했다.
3년의 옥타곤 공백, 헤비급 데뷔전이라는 핸디캡도 존스에게는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헤비급 최고의 타격가로 인정받는 시릴 간(프랑스)을 불과 1라운드 2분 4초 만에 길로틴 초크 서브미션으로 꺾고 챔피언 벨트를 허리에 감았다. 왜 존스가 ‘GOAT(The Greatest Of All Time, 역사상 최고 선수)’로 불리는지 그 이유를 잘 보여준 경기였다.
올해를 끝으로 아쉽게 UFC와 작별한 선수들도 있었다. 대표적인 주인공은 ‘코리안 좀비’ 정찬성이었다. 정찬성은 지난 8월 26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UFC 파이트나이트’에서 자신이 그토록 싸우고 싶어했던 맥스 할로웨이(미국)와 대결했지만 결과는 3라운드 KO패였다.
경기 후 정찬성은 “챔피언이 되려고 했는데 톱랭커를 이기지 못하니 그만할 때가 된 것 같다”며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한때 옥타곤을 지배했던 정찬성은 아내와 함께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그가 가장 사랑했던 무대를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