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의 여유 만만한 자세는 자신감의 표현일까. 초조함을 감추기 위한 연막일까.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지난 25일(한국시간)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30위 말레이시아와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조별리그 E조 3차전 3-2로 앞서던 후반 추가시간, 상대에 1골을 내준 장면에서 미소를 보였다. 조 최약체로 분류되는 팀에 ‘패배 같은 무승부’를 거뒀음에도 또 웃은 것이다. 허망함에 보인 ‘실소’가 아니었다.
경기 후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그가 “흥미진진한 경기였다”고 뱉은 첫마디도 세간에 충격을 줬다. 한국 축구대표팀의 수장으로서 결과에 만족스럽지 않다는 평 대신, 경기와 관련이 없는 제3자의 입장에서 관전한 듯한 평을 내놓은 것이다.
사실상 ‘참사’를 겪은 클린스만 감독이지만, 언제나 그랬듯 겉은 여유로웠다. 하지만 축구 팬들은 ‘속이 터진다’는 반응을 보인다. 부임 직후부터 지적됐던 전술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탓이다. 말레이시아를 상대로 졸전을 펼친 후 경기력과 전술에 관한 이야기 대신 심판 탓을 한 것도 마뜩잖은 반응을 끌어내는 데 한몫했다.
매우 저조한 경기력, 초라한 성과에 관한 비판에도 클린스만 감독은 여전히 ‘스마일맨’이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듯 여전히 밝은 모습을 유지했다.
우승을 위해 긍정적인 마인드가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클린스만 감독의 발언은 공감을 사지 못할 정도로 긍정적이었다. 그는 객관적인 전력에서 비교조차 어려운 말레이시아와 비긴 후 “우리가 무패를 기록하고 있는데, 긍정적인 부분을 이어나가겠다”고 했다. 조별리그 1승 2무의 기록을 두고 ‘무패’라고 위안 삼은 것이다.
클린스만 감독의 행실을 보는 시선은 다양하다. 한국에서는 비판 여론이 형성됐지만, 중국을 비롯한 다수 외신은 말레이시아전 막판 클린스만 감독의 미소를 보고 음모론까지 제기했다. 말레이시아와 비기면서 16강전에서 ‘숙적’ 일본을 피하게 돼 클린스만 감독이 웃었다는 것이다. 일부러 말레이시아와 무승부를 거뒀다는 지적도 나온다.
받아들이는 느낌이 서로 다르지만, 클린스만 감독의 미소는 이해되지 않는다는 게 중론이다. 클린스만 감독은 16강전을 앞두고도 한결같은 여유로움을 뽐냈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와 토너먼트 첫판을 앞두고 “빨리 (숙박을) 연장하면 될 것 같다. 우리의 목표는 결승이다. 결승에 올라갈 것이기 때문에 빨리 호텔을 추가로 예약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번 대회에서 보인 대표팀의 퍼포먼스와 결과를 고려하면, 쉽사리 뱉기 어려운 말이었다.
클린스만 감독의 여유가 자신감을 대변하는 것인지, 초조함을 감추는 수단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모든 건 결국 결과로 나온다.
한국은 31일 오전 1시 카타르 도하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이 이끄는 사우디와 8강 티켓을 두고 격돌한다. 사우디는 F조 1위(2승 1무)로 토너먼트에 오른 중동의 강호다.
조별리그 3경기에서 공수 양면 모두 끈끈한 모습을 보였다. 사우디는 지난해 9월 클린스만호 출범 이후 첫 승을 안겨준 팀이다. 역대 전적에서는 18전 5승 8무 5패로 팽팽하다. 한국이 선수 개인 능력뿐만 아니라 사령탑의 전술이 그라운드에서 드러나야 꺾을 수 있는 난적으로 평가된다.
‘우승 후보’였던 클린스만호를 향한 전망이 그리 밝지 않은 가운데, 만약 사우디에 패하면 엄청난 후폭풍이 몰려올 것으로 예상된다.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본선까지 약속한 클린스만 감독의 임기가 단숨에 사라질 수 있다.
과연 클린스만 감독이 사우디와 16강전을 마치고도 여유만만하게 웃을 수 있을까. 모든 것은 그에게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