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사진=대한축구협회 한국축구가 흔들리고 있다. 위르겐 클린스만(독일) 감독을 경질하자는 여론이 이젠 대한축구협회(KFA)를 향한 분노로 번지고 있다. 그간 클린스만 감독과 KFA를 향했던 분노가 쌓이고 쌓인 상황에서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졸전이 기폭제가 됐다.
그런데 상황을 수습하고 책임져야 할 정몽규 KFA 회장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아시안컵 4강에서 탈락한 대표팀의 씁쓸한 조기 귀국 현장에도 마찬가지였다. 정 회장은 대표팀의 탈락에도 현지에 남아 결승까지 관전한 뒤 홀로 귀국했다. 들끓는 여론 속 클린스만 감독 거취의 윤곽이 드러났어야 할 KFA 임원 회의마저 불참했다.
사실 과거 정 회장의 모습을 돌아보면 예상 가능한 행보이기도 했다. 이번 대회에서도 한국이 호주와 8강전에서 극적인 연장 승리로 4강에 오르자 슬그머니 훈련장을 찾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앞서 벤투호의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16강, 김은중호의 FIFA U-20 월드컵 4강 등 대표팀이 박수를 받을 만한 현장에도 꼭 빠지지 않고 중심에 섰던 정 회장이다.
반대로 이번처럼 비판 여론이 거센 상황에선 늘 자취를 감췄다. 논란이 되거나 비판을 받는 사안에 대해 정 회장이 직접 나서서 기자회견을 하거나, 인터뷰를 통해 입장을 밝혔던 사례는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심지어 1년 전 승부조작 사범 등에 대한 사면을 번복했을 때도 그랬다. 스스로 한국축구를 뒤흔들고도 사과문만 읽은 뒤 취재진 질문은 받지 않고 자리를 떠 논란에 불을 지폈다. 공교롭게도 당시 이사진이 대거 물갈이되는 과정이었다. 정 회장은 꿋꿋하게 회장 자리를 지킨 뒤 1년도 채 안 돼 논란의 중심에 다시 섰다.
숨어버린 정 회장의 모습이 더욱 씁쓸한 건, 그가 이번 사태를 수습하고 책임질 '유일한' 존재라는 걸 모두가 안다는 점이다. 4월 총선을 의식한 정치권 인사의 뜬금없는 참견이 이어질 만큼 클린스만 감독의 경질 여부는 이제 국민적인 이슈가 됐다. 정 회장이 침묵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결국 최종 결정권을 가진 그가 직접 나서서 책임지는 게 유일한 해법이다.
지난 1년의 여정을 돌아보면 클린스만 감독의 경질 여론이 번지고, 정 회장의 책임을 탓하는 건 결코 과한 게 아니다. 클린스만 감독은 부임 후 늘 재택·외유 논란의 중심에 섰고, 이러한 근무 태만 논란에 정 회장과 KFA는 아무 대응도 하지 못했다. 아시안컵 우승만이 여론을 돌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으나, 클린스만 감독은 역대 최고의 전력을 이끌고도 4강에서 탈락했다. 감독을 경질할 명분은 차고 넘친다.
클린스만 감독을 선임한 게 정 회장이다. 클린스만 감독 부임설이 돌 때부터 그의 역량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컸다. 그러나 전력강화위원들조차 감독 선임 발표 30분 전 일방적으로 통보를 받을 만큼 절차마저 무시됐다. 애초에 클린스만 감독 선임을 주도한 게 정 회장이었으니, 그 책임 역시 져야 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능력은 물론 책임감마저 없다면, 정 회장은 더 이상 한국축구를 이끌 리더의 자격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