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업계의 베끼기 관행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시장에서 인기 있는 제품이나 맛, 디자인 등을 베껴 출시하는 이른바 '미투(Me Too) 상품'으로, 위험 부담과 비용을 줄이겠다는 전략이다.
법으로 규제하기 어려워 오리지널 제품을 만든 회사 입장에서는 골칫거리겠다 싶지만, 최근 다수 기업들은 경쟁사의 미투를 내심 반기고 있어 눈길을 끈다.
쏟아지는 미투 제품들
27일 업계에 따르면 하림은 최근 '불닭치면'과 '핵불닭치면'을 출시했다. 두 제품은 닭다리살과 불닭소스, 닭 육수로 반죽한 사리면 등으로 구성된 닭볶음면이다.
이 제품들이 출시되자, 업계에서는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과 '핵불닭볶음면'을 베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하림이 시장에서 인기가 있는 제품을 모방하는 형태의 '카피캣' 전략으로 라면 시장 점유율을 높이려 한다는 것이다.
앞서 불닭볶음면을 출시한 삼양식품은 일명 '불닭열풍'을 만들어냈고, 그 인기에 힘입어 매출 1조원이라는 기록을 썼다.
더욱이 하림은 맵기 2단계의 '로제불닭치면'도 내달 출시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는데, 이 역시 삼양이 2021년 출시해 판매하고 있는 '로제 불닭볶음면'을 연상시켜 논란이 됐다.
문제는 식품 업계의 미투상품 현상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해 6월 농심이 출시한 먹태깡이 소위 ‘대박’을 치자, 지난해 9월 롯데웰푸드는 ‘오잉 노가리칩 청양마요맛’을 선보였다. 먹태깡이 출시된 지 약 3개월 만이다.
뒤이어 유앤아이트레이드의 ‘먹태이토 청양마요맛’, 성일제과의 ‘먹태쌀칩 청양마요맛’, CU의 ‘헤이루 청양마요맛 새우칩’이 시중에 나왔다. 모두 먹태깡처럼 해물맛 베이스에 청양마요맛을 가미한 제품이다.
이보다 전인 2014년 8월에는 해태제과가 출시한 허니버티칩이 열풍이 일자, 유사한 제품이 마구잡이로 등장했다. 농심은 같은 해 12월 웨이브 수미칩 허니머스타드를 출시했고, 오리온에서도 허니버터칩을 견제하기 위해 '오!감자 허니밀크' '포카칩 메이플맛' 등을 내놓았다.
편의점·마트 업계에서도 다양한 허니버터 유사 제품을 내놓았다. 편의점 CU에서는 자체브랜드(PB)로 '허니샤워 팝콘', '허니버터 감자스틱'을 내놓은 것도 모자라 PB 라면 '허니 불타는 볶음면'도 선보였다.
홈플러스도 허니버터칩과 비슷한 '케틀칩 허니버터맛'을 선보인데 이어 ‘허니버터번’이라는 빵도 선보였다.
2022년에는 CU의 연세우유생크림빵이 메가 히트 상품으로 인기를 얻으며 편의점업계의 미투 제품 출시가 잇따랐다. GS25에서는 '브레디크 생크림빵', 세븐일레븐에서는 '제주우유 생크림빵' 및 '제주우유 쿠키앤크림빵, 이마트24는 '우유생크림빵빵도넛'을 각각 선보였다.
미투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미투 제품이 쏟아지는 이유는 현실적으로 법으로 제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원조 업체는 타사의 미투 제품이 ‘모방’이라며 소송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업계 특성상 원조 업체가 이 같은 소송에서 승소하는 일은 드물다.
실제로 지난 2014년 삼양식품은 법원에 팔도가 자사의 ‘불닭볶음면’을 베낀 ‘불낚볶음면’을 출시했다며 판매를 금지해 달라는 가처분신청을 냈다. 그러나 1심 법원은 두 제품의 포장이 유사한 점은 있으나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동일한 것은 아니라고 판결했다. 삼양 측은 법원 판결에 항소하지 않았다.
또 지난 2017년 법원은 CJ제일제당이 오뚜기, 동원F&B가 자사 제품 ‘컵반’을 모방했다고 낸 부정경쟁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즉석밥 용기의 뚜껑 역할이 상품의 형태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고, 기존 제품들이 갖는 통상적인 형태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판단해 이를 기각했다.
이에 최근 미투 제품을 대하는 원조 제품 기업들의 분위기도 달라지고 있다. 되레 미투 제품의 등장을 달가워하는 기색이다. 미투 제품이 나오면 원조 제품이 더 큰 화제가 되고, 전체 시장이 성장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식품의 맛은 아무리 똑같이 따라 하려고 해도 그대로 구현하기 쉽지 않다”며 “유사 제품이 나와도 소비자는 처음 접했던 오리지널 제품의 맛을 기억하고 찾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 시장을 개척한 선발 상품은 경쟁자들의 난립으로 점유율은 낮아지지만 매출 자체는 크게 늘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광동제약의 ‘옥수수수염차’, 동아제약 ‘박카스’, 오리온 ‘초코파이’ 등은 무수한 미투 상품의 공격에 시달리면서도 소비자들에게 ‘원조’로 각인돼 매출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최근 선두주자의 혁신과 그를 따라잡으려는 후발주자의 노력이 함께 산업을 성장시킨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업체들이 단순히 베끼기에 그치지 않고 서로의 특허나 핵심 아이디어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보다 차별화된 제품을 선보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