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울산 HD가 라이벌 전북 현대를 제치고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4강에 진출했다. 울산이 ACL 4강에 오르는 건 지난 2021년 이후 두 대회 만이다. 국가대표로 자리 잡은 설영우가 그야말로 천금 같은 결승골의 주인공이 됐다.
울산은 12일 오후 7시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2023~24 AFC 챔피언스리그(ACL) 8강 2차전에서 설영우의 결승골을 앞세워 전북을 1-0으로 제압했다. 앞서 1차전 원정에서 1-1로 비겼던 울산은 1·2차전 합계 2-1로 앞서 4강에 진출했다. 비가 내리는 등 쌀쌀한 날씨 속 평일 저녁에 열린 경기인데도 1만 명이 넘는 관중이 들어 찬 가운데 거둔 승리라 그 의미는 더욱 값졌다.
울산이 ACL 4강에 오른 건 역대 다섯 번째이자 두 대회 만이다. 울산은 지난 2020년 대회 정상에 오른 뒤 2021년 대회에서도 4강에 올랐으나 포항 스틸러스에 져 결승에는 오르지 못했다. 지난 2022년 대회 땐 조별리그 탈락의 아픔을 겪었다. 절치부심한 울산은 이번 대회를 통해 다시 한번 ACL 4강 무대를 밟았다.
ACL 4강 상대는 산둥 타이산(중국)과 요코하마 F.마리노스(일본)전 승리 팀이다. 앞서 1차전에선 요코하마가 2-1로 승리해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4강전은 1차전이 내달 17일, 2차전이 24일 열릴 예정이다.
이날 승리로 울산은 내년 미국에서 열리는 2025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 월드컵 출전 가능성도 높였다. FIFA 클럽 월드컵은 2025년 대회부터 4년마다 32개 팀이 참가해 열리는 방식으로 확대 개편된다. 대회 규모가 커진 만큼 참가 상금만 수십억원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AFC에 배정된 클럽 월드컵 티켓은 총 4장인데, 이미 2장은 2021년 ACL 우승팀 알힐랄(사우디아라비아)과 2022년 우승팀 우라와 레즈(일본)가 확보했다. 남은 2장은 2023~24 ACL 우승팀, 그리고 최근 4년 간 연맹 랭킹에서 클럽 월드컵 출전 확정팀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순위에 오르는 팀에 돌아간다.
연맹 랭킹에선 클럽 월드컵 출전을 확정한 알힐랄이 1위를 달리고 있고, 그 뒤를 전북과 울산이 잇고 있다. 랭킹은 경기 승리 시 3점, 무승부 시 1점, 다음 라운드 진출 시 3점을 각각 얻는 방식이다. 8강 2차전 전까지는 전북이 80점으로 2위, 울산이 72점으로 3위였다. 그러나 이날 울산이 승리와 함께 4강 진출을 확정하면서 78점이 됐다. 4강 1, 2차전 가운데 1경기만 이겨도 클럽 월드컵 진출이 확정된다.
반면 이날 승리 시 클럽 월드컵 출전이 가능했던 전북은 울산이 4강에서 무승으로 탈락하거나, ACL 우승을 바라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됐다. 만약 울산이 이번 대회 정상에 오르면 전북도 클럽 월드컵 출전권을 확보할 수 있다.
울산을 ACL 4강 무대로 이끈 건 국가대표 측면 수비수로 완전히 자리 잡은 설영우였다. 설영우는 팽팽한 균형이 이어지던 전반 추가시간 논스톱 슈팅으로 전북 골망을 세차게 흔들었다. 이날 경기장엔 황선홍 감독을 비롯해 마이클 김(김영민) 수석코치, 정조국·조용형 코치 등 대표팀 코치진도 경기장을 찾았는데, 임시 사령탑 황선홍호 체제에서도 눈도장을 찍게 됐다.
이날 울산은 ‘국가대표 공격수’ 주민규가 최전방에 나서고 루빅손과 아타루, 엄원상이 2선에 포진하는 4-2-3-1 전형을 가동했다. 이규성과 고승범이 중원에서 호흡을 맞췄고, 이명재와 김영권, 황석호, 설영우가 수비라인에 섰다. 골키퍼는 조현우. 전날 발표된 3월 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대표팀 명단에 오른 6명이 모두 선발 자리를 꿰찼다.
원정팀 전북은 티아고와 송민규가 투톱을 이루고, 문선민과 이동준이 양 측면에 서는 4-4-2 전형으로 맞섰다. 중원에는 맹성웅과 이수빈이 포진했다. 김진수와 박진섭, 홍정호, 김태환이 수비라인에 섰고, 김정훈이 골문을 지켰다. 올 시즌을 앞두고 울산에서 전북으로 이적한 김태환은 이적 후 처음으로 문수축구경기장을 찾았는데, 이날 경기장을 메운 울산 팬들은 김태환이 공을 잡기만 해도 거센 야유를 보냈다.
경기 초반 주도권은 홈팀 울산이 잡았다. 전반 5분 루빅손이 오른발 슈팅으로 포문을 열었지만 수비에 맞고 굴절됐다. 이어진 코너킥 상황에서도 문전으로 흐른 공이 문전을 지나쳤지만 울산이 마무리 짓지 못했다. 루빅손은 3분 뒤 페널티 박스 안으로 파고들다 슈팅했지만 골키퍼 선방에 막혀 아쉬움을 삼켰다.
전반 11분 울산이 결정적인 기회를 잡았다. 설영우의 측면 크로스가 아크 정면으로 향했고, 주민규와 김태환이 경합을 펼치다 김태환의 파울이 선언됐다. 가까운 거리에서 찾아온 프리킥 기회. 그러나 이명재가 찬 왼발 프리킥은 골대를 외면했다.
주도권을 내준 채 경기를 치르던 전북은 단 한 번의 역습으로 결정적인 기회를 잡았다. 전반 14분 이동준의 땅볼 크로스를 문전으로 쇄도하던 티아고가 논스톱 슈팅으로 연결했다. 티아고의 슈팅은 그러나 조현우가 동물적인 감각으로 막아냈다. 이후에도 전북은 상대 패스를 차단하는 등 빠른 역습을 통해 활로를 찾으려 애썼으나 결실을 맺진 못했다.
전반 중반 이후엔 치열한 공방전이 이어졌다. 양 팀 모두 균형을 깨트리기 위해 상대의 빈틈을 찾았다. 그러나 좀처럼 결실을 맺는 팀은 나오지 않았다. 전반 31분엔 울산에 변수가 생겼다. 고승범이 햄스트링 부상으로 빠지고 마테우스가 투입됐다. 이후 울산이 거듭 기회를 잡았다. 다만 아타루의 크로스를 엄원상이 문전에서 연결한 슈팅은 박진섭 태클에 가로막혔고, 추가시간 주민규의 논스톱 슈팅도 빗맞아 골대를 외면했다.
득점 없이 끝나는 듯 보였던 전반전은 추가시간 막판 균형이 깨졌다. 오른쪽 측면에서 공을 잡은 설영우의 크로스가 시작이었다. 이 패스는 왼쪽 측면에 포진한 루빅손에게까지 연결됐다. 루빅손이 문전으로 길게 올린 크로스는 수비 뒷공간을 파고들던 설영우에게 정확하게 연결됐다. 설영우는 문전에서 오른발 논스톱 슈팅으로 연결해 전북 골망을 세차게 흔들었다. 득점 직후 세리머니를 펼치다 어깨 통증을 호소했지만, 다행히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궁지에 몰린 전북은 후반 시작과 함께 공격에 무게를 뒀다. 그러나 울산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후반 첫 슈팅도 엄원상이 기록했다. 전북도 티아고의 슈팅으로 맞섰지만 동점골로 이어지진 못했다. 부상 변수는 전북에도 찾아왔다. 후반 11분 맹성웅이 들것에 실려 교체됐다. 대신 이영재가 중원에 포진했다.
골이 절실한 전북이 점유율을 끌어올리며 울산을 압박했다. 그러나 울산 수비가 좀처럼 빈틈을 허용하지 않았다. 후반 중반까지 결정적일 만한 동점골 기회까지는 만들지 못했다. 승부에 쐐기를 박으려던 울산은 무리하게 공격을 전개하기보다 안정적으로 경기를 풀어갔다. 양 팀 서포터스의 ‘힘을 내라 전북’과 ‘힘을 내라 울산’ 외침이 경기장을 메웠다.
단 페트레스쿠 감독은 후반 29분 승부수를 던졌다. 이수빈과 문선민을 빼고 비니시우스와 전병관을 동시에 투입했다. 이에 질세라 홍명보 감독도 루빅손과 아타루 대신 김민우와 이동경을 투입했다. 골이 절실한 전북은 공격에 더 무게를 뒀고, 울산은 밸런스를 그대로 유지하는 방향으로 교체 카드를 활용했다.
경기가 막판으로 향할수록 전북이 공세를 펼치고, 울산이 역습으로 맞받아치는 양상으로 흘렀다. 그러나 전북은 무딘 공격이 반복됐고, 울산의 역습 역시도 마지막 패스가 번번이 부정확하게 이어졌다. 각각 쐐기골과 동점골을 바라는 양 팀 팬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다시 한번 경기장을 메웠다.
전북은 후반 41분 이동준을 빼고 2m 장신 수비수 페트라섹을 투입해 전방에 배치하는 변칙 전술을 꺼냈다. 홍명보 감독은 미드필더 이규성을 빼고 센터백 임종은을 투입해 대응했다. 주민규 대신 마틴 아담을 최전방에 포진시켜 변화도 줬다.
지면 탈락인 만큼 전북은 마지막까지 공격에 무게를 뒀다. 그러나 울산의 단단한 수비 조직력은 흔들리지 않았고, 기회를 만들더라도 조현우의 벽을 끝내 넘지 못했다. 반전은 없었다. 경기는 울산의 1-0 승리로 막을 내렸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린 뒤 울산 서포터스의 ‘잘 가세요’ 노래가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전북 선수단과 팬들은 아무 답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