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대표팀 소방수로 나섰던 황선홍 감독이 이제 임시 지휘봉을 내려놓는다. 한 차례 부침을 겪긴 했으나 우선 급한 불을 끄고 분위기 전환까지는 이뤄냈다는 평가다. 27일 귀국을 끝으로 A대표팀과 동행도 마쳤다. 이제 남은 몫은 황 감독이 아닌 새롭게 지휘봉을 잡게 될 차기 사령탑이다.
지난달 위르겐 클린스만(독일) 감독 경질 이후 A대표팀 임시 사령탑으로 부임한 황선홍 감독은 예정대로 태국과의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2연전만 마치고 감독직에서 물러난다. FIFA 랭킹 101위 태국과 전적은 1승 1무다. 이제 황 감독은 ‘본업’인 23세 이하(U-23) 대표팀으로 돌아가 다음 달 있을 2024 파리 올림픽 최종예선을 준비한다.
‘황선홍호’ A대표팀은 지난 2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경기에선 태국과 1-1로 비겨 자존심을 구겼다. 객관적인 전력의 우위, 6만명이 넘는 관중들의 일방적인 응원에도 승점 1 획득에 그쳤다. 다행히 닷새 뒤 태국 원정길에서는 3-0 완승을 거뒀다. 앞서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에서 당시 FIFA 랭킹 130위 말레이시아와 난타전 끝에 3-3으로 비기고, 87위 요르단과 2-2로 비긴 뒤 4강에선 0-2로 완패해 탈락하는 등 부진했던 A대표팀의 흐름을 가까스로 끊었다. 2차 예선 승점 10(3승 1무) 고지에 올라 최종예선 진출도 사실상 확정 단계다.
국민적인 이슈였던 손흥민(토트넘)과 이강인(파리 생제르맹)의 갈등도 결과적으로 황선홍 임시 감독 체제에서 완전히 봉합됐다. 황 감독은 이강인을 대표팀에 발탁하지 말아야 한다는 일부 여론에 맞서 정면 돌파를 택했고, 이강인은 대표팀 소집 과정에서 직접 대표팀 동료들과 팬들에게 사과했다. 여기에 태국 원정에선 손흥민과 이강인의 합작골과 함께 서로 끌어안는 감동 세리머니가 나오면서 둘의 갈등에도 완전한 마침표가 찍혔다.
선수 선발 과정이나 선수 기용 면에서도 앞선 클린스만 감독과 달랐다. 재택·외유 논란과 K리그를 등한시한다는 비판이 거셌던 클린스만 감독과 달리 황 감독과 임시 코치진은 부임 직후부터 K리그 현장 곳곳을 누비며 선수들을 살폈다. 이 과정에서 오랫동안 태극마크의 한을 풀지 못했던 K리그 최고 공격수 주민규(울산 HD)가 처음 A대표팀에 승선했고, 이명재(울산)와 정호연(광주FC)도 잇따라 A매치 데뷔 기회를 받았다. 소집된 23명 중 19명을 기용하는 등 소집 선수를 폭넓게 활용한 것도 클린스만 전 감독과는 달랐던 선택이었다.
다만 짧은 준비기간을 고려하더라도 경기력 측면에서는 두 경기 모두 전술적인 완성도가 기대에 못 미쳤다는 비판에선 자유로울 수 없었다. 특히 홈에서 거둔 태국전 1-1 무승부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졸전이자 한국축구 입장에선 굴욕적인 결과였다. 경기 초반부터 상대의 거센 압박에 흔들리는 등 뚜렷한 색채를 보여주지 못한 경기였고, 결과적으로 승리도 따내지 못하면서 팬들 앞에 고개를 숙여야 했다.
그나마 태국 원정에선 완승을 거두며 분위기를 바꾸긴 했으나, 여전히 황당한 실수가 반복되거나 수비 조직력이 흔들려 수 차례 실점 위기를 맞는 등 객관적인 전력 차와 비례해 상대를 압도했다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최종예선 진출이 확정적인 단계이긴 하지만, 홈에서 당한 무승부 여파로 다른 조 강팀들과 달리 조기에 최종예선 진출을 확정 짓지 못한 결과 역시 한국축구 입장에선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그래도 어쨌든 한국축구를 둘러싼 어수선한 분위기 속 급하게 임시 지휘봉을 잡아 큰 위기만큼은 넘겼다는 데 의미를 둘 만했다.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의 감독 선임 기준마저 오락가락하는 등 어려움을 겪을 때 고심 끝에 임시 지휘봉을 잡았고, 적어도 분위기를 우선 반전시켰다는 점에 ‘소방수’로서의 역할은 어느 정도 잘 마쳤다는 평가다.
이제 황 감독은 A대표팀 지휘봉을 내려놓고 온전히 파리 올림픽 준비에만 전념한다. 우려가 컸던 ‘황선홍 없는 황선홍호’는 다행히 2024 서아시아축구연맹(WAFF) 23세 이하(U-23) 챔피언십에서 ‘우승 결실’을 맺었다. 이제 황 감독은 28일 귀국한 U-23 대표팀 코치진과 함께 다음 달 있을 올림픽 최종예선 준비에만 집중해야 할 시기다.
황선홍호는 다음 달 카타르에서 열리는 AFC U-23 아시안컵을 통해 파리 올림픽 본선 진출에 도전한다. 4월 중순부터 조별리그가 시작돼 5월 초에 결승전이 열리는 일정이다. 이 대회에서 3위 안에 들어야 올림픽 본선 진출이 확정되고, 4위 팀은 기니와 대륙간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한다. 만약 4강 진출에 실패하면 올림픽 본선 진출은 무산된다.
황 감독은 그동안 훈련 과정과 WAFF U-23 챔피언십 등을 토대로 올림픽 최종예선에 나설 최종 엔트리를 꾸린 뒤, 내달 초 이천종합운동장에서 소집 훈련을 진행하다 결전지 카타르로 향할 예정이다. 이후 4~5월에 걸쳐 올림픽 최종예선을 치르고, 만약 올림픽 본선 진출이 확정되면 7월부터 있을 파리 올림픽 준비에만 모든 걸 쏟아부어야 한다. 추가적인 A대표팀 겸직 제안 등은 황 감독에게도 큰 부담이자 짐이 될 수밖에 없다. 황 감독도 27일 귀국길에서 “시간적으로 촉박하다. 올림픽 대표팀에 집중할 생각이다. (A대표팀 겸직까지는) 생각해 본 적 없다”고 선을 그었다.
황선홍 임시 감독 체제를 끝내고 이제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도 당초 계획대로 새로운 감독 선임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앞서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도 황 감독의 임시 사령탑 선임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6월에 있을 월드컵 2차 예선 준비에 차질이 없도록 적어도 5월 초까지는 정식 감독을 선임할 예정”이라며 “2026 북중미 월드컵을 내다보며 우리 대표팀의 경기력을 끌어올리고 국민들에게 믿음과 희망을 줄 수 있는 대표팀 정식 감독을 선임하도록 하겠다. 어떤 선입견이나 외압을 받지 않고, 투명한 절차를 거쳐 축구대표팀이 잘 운영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것”이라고 약속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