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광주 롯데 자이언츠전에 선발 등판한 양현종(36·KIA 타이거즈)은 커브를 5개 던졌다. 전체 투구 수(90개) 대비 5.6%로 비율이 높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평소 그의 투구 스타일을 고려하면 눈에 띄는 '작은 변화'였다.
야구통계전문업체 스포츠투아이에 따르면, 양현종의 지난 시즌 커브 비율은 2.5%였다. 체인지업(24.9%) 슬라이더(18.6%)와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었다. 시즌 첫 등판인 롯데전에서 커브 비율을 올린 건 '의도한 결과'였다.
양현종은 경기 뒤 "확실히 커브가 키 포인트"라며 "올 시즌 ABS(Automatic Ball-Strike System·자동 볼 판정 시스템)를 하면서 (커브가) 가장 중요한 거 같다. (이런 이유로) 다른 경기보다 커브를 더 많이 던졌다"고 말했다.
올 시즌 KBO리그는 '로봇 심판'으로 불리는 ABS가 적용 중이다. 심판(사람)이 아닌 야구장에 설치된 전용 카메라로 스트라이크와 볼을 나눈다. 투수로선 ABS 존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해졌는데 양현종이 주목한 건 커브다.
이유가 있다. ABS 체제에선 타자마다 스트라이크 존이 달라진다. 상단은 선수 신장의 56.35%, 하단은 27.64%가 적용된다. 키가 1m80㎝인 선수라면 상단은 101.43㎝, 하단은 49.75㎝, 1m90㎝는 상단과 하단이 각각 107.7㎝, 52.52㎝다. 좌우 기준은 홈 플레이트(43.18㎝)에서 좌우 2㎝ 확대 적용된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발표한 시행 세칙에 따르면 홈플레이트 중간과 끝, 두 곳에서 상하 높이 기준을 충족해야 스트라이크로 판정된다. ABS 스트라이크 기준 센서점만 통과하면 스트라이크로 판정 받기 때문에 움직임이 큰 변화구가 유리할 거라는 얘기가 나온다.
양현종은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부터 "커브가 중요할 거 같다. 커브 비율을 작년보다 높여야 살아남을 수 있을 거 같다. 곽빈(두산 베어스)이나 박세웅(롯데)처럼 커브를 제2의 구종으로 던지는 투수들이 조금 유리하지 않을까. 커브가 ABS 도입의 가장 큰 포인트"라고 강조했다.
양현종은 겨우내 커브를 가다듬어 시즌 첫 등판에서 테스트했다. 확신을 갖게 한 장면도 있었다. 3회 초 2사 2·3루에서 커브로 위기에서 탈출한 것이다. 노진혁 상대 볼카운트 1볼-2스트라이크에서 5구째 커브에 ABS 센서가 작동했다. 높은 코스로 기존 심판이라면 볼 판정에 가까워 보였지만 ABS는 달랐다.
투수마다 ABS 활용법을 파악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구장에 따라 판정이 조금씩 다르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 혼란도 작지 않다. KBO리그 통산 168승을 기록 중인 양현종은 변화를 택했다. 그는 "커브나 각이 큰 변화구를 써야 한다. 어찌됐건 올해는 ABS를 해야하기 때문에 잘 이용해야 할 거 같다"며 커브 그립을 자주 잡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